이란 땅에서 울려 퍼지는 Happy Birthday
오늘은 이스파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을 느긋이 먹고 자얀데 강 건너 왕크(Vank) 교회당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그만 하차지점을 지나쳐 버렸다. 다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서, '방크', '방크'해도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 그제사 이란에서는' v'를 'w'로 발음한다는 말이 생각나 '왕크!', '왕크!' 했더니 옆자리의 한 신사가 두 정거장쯤 가서 자기를 따라 내리란다. 말은 안 통하지만 왕크교회 입구까지 우리를 친절히 인도해 준다. 왕크교회는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조금 걸어 올라가니 관광객들의 무리가 보여 쉽게 찾을 수 있다.
교회건물은 종탑이 따로 세워져 있고 돔 위에 초승달대신 십자가가 있을 뿐이지 보통 모스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놀라운 것은 교회당 천정과 벽들이 온통 기독교 성화들로 도배질되어 있는 교회 내부이다. 성화야 서양교회에서는 지천이지만, 장소가 사람의 형상을 금하는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 이란 땅 아닌가? 성화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뛰어난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성화들 같아 보일 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성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란에 어떻게 이런 교회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사바스 왕조의 아바스 1세가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긴 후 이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당시 유태인 못지않게 상업과 교역에 능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자얀데 강 남쪽 졸탄지역으로 이주시키는데 그때 지은 아르메니아교회들 중 하나가 왕크교회이다. 아바스 1세는 부를 얻는 대가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것인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교회의 기능보다는 단순한 관광지로 전락(?)한 듯한 모양새다.
교회 자체보다도 교회마당 한 귀퉁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시계모양 돌출물 하나가 더 우리의 시선을 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연대표'에는 연도별로 학살상황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아르메니아라는 나라는 우리 모두에게 생소하다. 어디쯤 붙어 있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유대인 못지않게 핍박과 인종 대학살을 당해 온 슬픈 역사를 가진 이슬람국가들 사이에 낀 기독교 나라라는 정도.
대학살 연대표를 자세히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중에서도 1915년 신생 튀르키예에 의하여 저질러졌던 대학살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에 비교될 만큼 엄청난 학살사건이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르메니아에서는 학살자 수를 150만이라고 하고 튀르키예에서는 30만 정도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튀르키예는 학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강제이주과정에서 아사한 것일 뿐이라고. 그런 답답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이런 표식을 하고 있나 보다. 이 표지판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종교 때문에 이렇게 서로 증오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면 왜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할까? 하는.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왕크교회를 나오니 교회 앞 길은 의외로 깔끔하고 고급식당과 커피숖들이 즐비하다. 마치 서울의 가로수 길 같다. 지금까지 보아온 이스파한의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여기가 이스파한의 강남인가? 호텔 여직원도 이 근처 한 식당을 최고의 맛집이라며 강추하던데?
우리는 <Toranj>라는 이 식당을 어렵사리 찾았지만 점심식사 시간은 1시부터란다. 할 수 없이 저녁에 다시 오기로 하고 다시 이맘광장으로 향한다. 어제 못 본 자메모스크를 보기 위해.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문이 닫혀 있다. 무슨 종교행사인지 한 달에 며칠씩 이렇게 문을 닫는단다. 아! 우째야 되노? 한국에서 이것 보러 일부러 왔는데. 이틀씩이나 허탕치고 황당한 체 입구에서 멍하니 서 있는데 자전거를 탄 10대 학생 둘이 다가오더니 자메모스크 뒷마당을 자기들이 안내해 주겠단다.
마땅히 할 일도 없어 따라가긴 하는데 우리를 완전 영어회화연습 파트너로 삼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무슨 말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20여분 동안 다소 누추한(?) 뒷모습만 보고 이 위대한 샤의 모스크 내부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내내 실망스럽기만 할 뿐.
우리는 이맘광장에서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Toranj 식당으로 간다. 식당은 주택가 골목 안 깊숙한 곳에 있는데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위치이다. 7시쯤 식당문을 들어서니 식당종업원 왈 식당은 8시부터 문을 연단다. 이런 xx먹을... 점심 때도 허탕 쳤는데. 욱하지만 할 수 없이 종업원이 안내하는 중정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릴 수밖에.
사실 이곳까지 굳이 두 번씩이나 찾아온 이유는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만은 이스파한 최고의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서이다. 식당 중정은 넓지는 않지만 이곳이 물 좋은 곳(?)인지 자유분방해 보이는 젊은 청춘남녀로 가득하다. 히잡을 쓰고 차도르를 둘렀지만, 수다를 떨며 시끌벅적한 게 우리 젊은이들이랑 다를 게 없다.
종업원이 와서 우리의 국적을 묻는다. 웬가 했더니 조금 있다 태극기를 우리 테이블에 꽂아준다. 아니 이런 배려까지! 태극기를 본 옆자리의 귀엽게 생긴 한 초등학생이 다가오더니 말을 건다. 영어가 제법이다. 우리와 함께 셀카를 찍어도 되냐고 묻는다. 당근이지.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애 엄마까지 와서 또 포즈를 취한다. 하는 짓이 밉지 않아 소년에게 한국 스티커 용지를 한 장 주었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스티커 위에 내 사인까지 해달란다. 와! 난생처음으로 사인까지 해주네! 우리는 오늘 완전 스타가 된 기분이다.
이란 초등학생 덕분으로 중정에서 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낸 후 우리는 비로소 식당에 자리한다. 영어가 안 통하는 현지인식당이지만 우리는 양고기 케밥과 몇 가지 요리를 시키는데 과연 호텔직원의 강추대로 맛이 일품이다. 이란에서 처음 맛보는 정통요리이고 최고의 맛집 같다. 값도 너무 얌전하다. 갑자기 해피 버스데이 가락이 울려 퍼지는데 옆자리에서 누군가 생일축하모임을 하나보다. 이란 전통악기로 처음 들어보는 해피 버스데이 연주는 마치 아내를 위한 연주 같기만 하다. 단지 한 잔의 와인이 없어 아쉬울 뿐, 아내도 나도 대만족. 오늘은 맛있는 이스파한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