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트(Qanat)가 만든 사막의 기적
우리는 야즈드에 사흘 머물 예정이지만 J호텔은 이틀 밤만 예약이 가능했다. 하루 밤 정도야 어떻게든 숙소를구할 수있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의 큰 오산이었다. 이곳 숙소들은 지금이 최고의 성수기인지 방이 없어 아우성이다. 우리 호텔의 60대 주인장은 그다지 친절한 채 하지는 않지만 투숙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준다. 우리의 난처한 사정을 알고 주변 알만한 호텔들 여러 곳에 일일이 전화해 보지만 어느 한 곳에도 빈방이 없다고 한다. 당장 오늘 밤 잘 방이 없다.
오랫동안 정치적인 문제로 서양세계와의 관계가 악화된 이후 이란은 막대한 경제적 어려움을 격어 왔다. 당연히 사회 전반적인 인프라가 열악한데 그 중에서도 관광 인프라는 특히 심하여 제대로 된 호텔은 손꼽을 정도이다.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오래 전 지어진 건물이거나 개인 집들을 개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이 유구한 역사의 나라에 년간 관광객 규모가 고작 500~600만 명(시아파 순례자 포함) 정도에 불과하다니 말이 되나.
우리는 호텔 주인장의 도움과 동네 곳곳의 호텔만 보이면 들어가서 물어보는 나의 절박한 발품팔이 덕으로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도 않은 신축 전통숙소의 방 하나를 겨우 구한다. 간판도 채 달지 못한 신축 호텔인데 마감 작업으로 어수선하고 방도 아직 페인트 냄새가 남아 있다. 하지만 찬 밥, 더운밥 가리게 됐나? 이 숙소의 방을 못 구했다면 우리는 노숙을 하거나 당장 이 도시를 떠나야 할 판인데.
우리는 얼른 짐부터 옮겨 놓은 후 계획에 없던 야즈드 근교 단체투어부터 신청한다. 투어비가 이곳 물가에 비해 싼 편은 아니지만 영어 가이드도 있고 에어컨 빵빵 나오는 소형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타고보니 반갑게도 우리의 현대차 엠블렘이 붙어 있지 않은가?
1시간쯤을 달려 먼저 찾아간 곳은 오래된 진흙마을 Kharanq, 이곳 사람들 뻥(?)으로는 이 마을의 역사가 4,000년이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고고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가이드의 말로는 1,000~1,500년은 족히 된다고 하는, 흙으로 만든 오래된 주거지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흙으로 만든 모스크 첨탑도 보이고, 정원도 있고, 더위를 피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건축기술의 면면이 엿보인다. 동굴 속에 혈거 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문명의 진일보인가!
마을 저 멀리로는 울퉁불퉁 꽤 높은 산들이 병풍을 치고 있다. 우리의 눈길을 확 끄는 것은 가까운 곳에 푸른 농경지가 꽤나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카나트(Qanat)!라는 명쾌한 답변이 온다. 카나트(Qanat)?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았지만 무식하게도 그 내용은 금시초문이다. 카나트를 이용한 관개(irrigation)로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이란 땅에도 오래전부터 농사가 가능했단다.
우리가 아는 모든 고대문명은 강을 끼고 발흥하였고 우리가 아는 고대 수로는 육상으로 물을 연결한 것만 보아왔다. 그런데 이미 3천 년 전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카나트(Qanat, 경사진 지하수로)를 맨 처음 개발하여 농사도 짓고 정원도 가꾸고 용수로도 사용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화려한 역사와 문명은 바로 이 카나트에 기반하는 것 아닌가?
주로 산허리에서 지하수가 고인 깊이까지 여러 개의 구멍을 판 후 구멍과 구멍사이에 지하수가 흘러가도록 연결한 지하수로가 바로 카나트이다. 그 원리를 지금에야 쉽게 이해되지만 3천 년 전에 구멍을 파서 지하수로를 만든다는 것은 실로 놀라울 발상일뿐더러 지난한 공사였을 게다. 비로소 야즈드의 물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이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은 지금도 잘 작동하며 이란에만 2만 개가 넘는 카나트가 있다고 한다. Kharanq 마을을 나오면서 카나트(Qanat)의 위력을 다시 실감한다. 한 노인이 콸콸 흐르는 수로에서 금방 밭에서 캔 듯한 채소를 씻고 있지 않는가?
두 번째 들린 조로아스트교의 성지 착착(Chak Chak)으로 가는 길은 꽤 깊은 산중이다. 사막 가운데로 병풍같이 높은 산들이 이어져 이곳이 사막인지 산악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이다. 이슬람 침공 당시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던 사산조 군주의 딸 하나가 피신하여 이곳 산속에서 숨어 지낸 동굴이 있는 곳이 바로 착착이다.
꽤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본 굴 속은 나에게는 별로였지만 산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관만은 여기가 이란 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한마디로 장대한 아름다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이 일대는 고작(?) 해발 1,500미터 정도이지만 이란에는 4천 미터 이상되는 산이 10개나 있으며 그중 가장 높은 Damavand 화산은 무려 5,670미터의 높이를 자랑한단다. 중동지역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며 일 년 중 여덟 달 이상 만년설로 덮여 있단다. 누가 이란을 사막의 나라라고 했는가? 이란에선 늦은 봄까지 스키를 탄다는 이야기가 뻥이 아니구나!
어둠이 깔리는 초저녁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또 다른 사막도시 메이보드(Meybod)이다. 메이보드는 한 때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어 교역이 매우 활발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사파비왕조 시절 아바스 황제가 지어준 카라반 사라이(대상숙소)가 여러 곳 있는데 우리가 늦은 시각 찾은 곳은 그중의 대표적인 카라반 사라이란다. 대부분 복원된 것이라지만 충분히 그때의 모습을 연상하고도 남는다. 중정 한가운데의 카바트와 주위를 둘러싼 상가와 목욕탕과 숙소 건물들, 지금도 낙타를 탄 대상들이 불쑥 들어올 것만 같다.
그 외에도 맞은 편의 석빙고등 볼거리가 많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겉만 훑고 잠깐 멀리서 사진만 찍고 온,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한 오래된 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내일은 야즈드 근교의 유명한 성 샤르야즈드(Sharyazd)를 꼭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