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바로 여기였다.
아침에 문을 여니 반갑게도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진다. 아쉽게도 금세 그쳐 버리는데 사막에서 비를 만나다니! 오늘은 행운이 있으려나. 엘리베이터 앞에 이런 내용의 표시판이 붙어 있다. '이곳의 일 년 평균 강수량은 50mm입니다. 당신이 당신 집에서 처럼 펑펑 물을 사용하면 우리의 일 년 강수량을 다 소진하는 것입니다. '
이 글을 보고 어찌 샤워물을 펑펑 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물을 조달하는 걸까?
아침을 먹고 로비로 내려오니 택시기사 무하마드가 벌써 기다리고 있다. 이란은 워낙 택시비가 싸기도 하지만 야즈드의 몇 군데 관광명소를 버스로 다니기는 정말 어려울 같아 우리는 오전 한나절 꼭 가보고 싶은 관광지 몇 곳을 태워다 줄 택시를 20불에 예약했었다. 무하마드는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넉살이 좋고 영어 몇 마디는 충분히 알아들어 별 불편함이 없다.
처음 찾은 곳은 조로아스트교 사원 중 하나인 아테슈카데 사원. 페르시아어로 <불의 집>이란 의미인 아테슈카데사원에는 AD47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500년 이상 꺼지지 않는 불의 방이 있다. 실제 조로아스트교가 불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닌데도 이 불과 관련해서인지 중국에서는 <배화교>로 불리기도 한다.
흔히 우리에게 페르시아어인 <자라투스트라>로 더 잘 알려진 조로아스터는 바로 이곳 출신이다.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는 최초의 계시종교이고 선과 악을 구별한 종교이기도 하다. 니체는 그를 초인으로 추앙하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유명한 책을 썼지만 나에게는 동명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로 더 친숙하다. 기원전 6~7세기부터 시작되어 페르시아가 이슬람에 잠식당하기 전까지 조로아스터교는 천여 년간 페르시아에서 성세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잊힌 종교로 이란 내에서도 신도가 겨우 4만 5천 명(세계 신도 15만) 정도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라투스트라를 만나려면 이 사원이 아니라 조로아스트교 조장(鳥葬)으로 유명한 <침묵의 탑>으로 가야 한다. 야즈드 시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두 개의 높다란 탑은 멀리서도 유독 눈에 띈다. 왼쪽 좀 더 높은 탑은 남자를 조장하던 곳, 오른쪽 조금 낮은 탑은 여자를 조장하던 곳이란다. 무하마드는 남자 탑보다는 여자 탑에 오르기를 권한다. 여자 탑 쪽에는 계단도 있고 오르는 사람들의 행열이 꽤 길다.
탑 아래에는 흙으로 만든 여러 채의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조로아스트교 사원들이란다. 조장 전 이곳에서 장례의식을 행하던 곳인가? 사원에서 탑을 올려보다 보니 폰카로도 꽤 좋은 앵글이 잡힌다. 무릎이 안 좋은 아내는 그늘에 쉬겠다고 해서 나 혼자 빨리 계단을 올라본다. 산 정상의 침묵의 탑 안으로 들어서니 가운데 둥그렇게 깊이 파인 구덩이가 보인다. 아마 그곳에 시신을 안치했나 보다.
죽으면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고 생각했던 조로아스트 교도는 영혼이 떠난 불결한 시체를 빨리 없애야 하는데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것이 가장 깨끗하고 좋은 시체처리 방법이라 생각한 듯하다.
오전 중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Baghe Dolat Abad. 우리가 좋아하는 페르시아정원(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스파한에서 페르시아정원 중 하나인 체헬소툰궁 정원을 이미 보았지만 이 정원은 입구부터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오래된 황토색 성벽을 지나자 부채꼴 모양의 야자수나무와 녹색마당이 눈앞에 시원히 펼쳐지고 진녹색 뜰에는 석류나무, 오렌지 나무, 포도나무 등의 과실수들이 여기저기 심겨 있다. 18세기 Zand 왕조 Khan의 거처로 지어진 건물들을 마주 보고 기다란 분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높다란 소나무들과 사이프러스가 하늘을 찌르고, 곳곳에는 이름 모르는 꽃나무들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이야 말로 사막 속의 낙원, 페르시아정원의 전형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낙원의 모든 것이 이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정원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수백 년 전에 멀리서 물을 끌어와 이처럼 거대한 정원을 일구고 가꾼 옛사람들의 지혜와 기술에 또 한 번 놀란다.
우리는 이 지상낙원에 취해 여기저기 정원을 거닌다. 커다란 나무 아래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에 쫑긋 귀 기울이고, 자녀들과 페르시아 전통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부모도 보이고 청춘남녀들이 다정히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도 보인다. 지금 이 순간만은 이곳은 모두에게 낙원이다. 모두가 유유자적, 웃음과 감탄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바람탑(33m)이 돋보이는 8 각형 건물 안은 밖과는 달리 정말 시원하다. 이 건물은 8 각형으로 지어져 어디에서나 정원을 잘 조망할 수 있을뿐더러 벽마다 화려한 색깔의 스탠그라스가 실내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야즈드의 상징 바람탑이 궁금했었는데 이곳에서 그 구조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Wind Catcher>, 이름 그대로 높은 탑에서 바람을 잡아 아래로 내려 보내 집 전체에 시원한 바람이 통하게 하는 Cooling System이다. 천연 에어컨인 셈이다.
사막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지혜를 옅보며 우리는 이 파라다이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더 여기저기를 배회하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무하마드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벌써 12가 된 것이다.
숙소에 들어와 좀 쉰 후 본격적으로 야즈드 골목산책을 나선다. 여전히 자매 모스크는 닫혀 있지만 다행히 뒷마당을 잠시 엿볼 수는 있었다. 상가와 숙소지역을 약간 벗어난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는 인적도 차도 별로 없다. 여전히 햇볕은 따갑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제보다 훨씬 더 느긋하게 어스렁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 본다. 비로소 야즈드의 진수를 맛보는 기분이다.
세계애서 가장 오래된 사막도시, 무려 7천 년 전부터 이 사막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단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지은 흙집들과 중간중간 햇볕을 피해 쉬어갈 그늘이 있는 골목길, 바람탑(Wind catcher)과 카나트(Qanat, 수로), 물 저장소,
비록 때약볕 아래이지만 우리는 천년의 도시를 걷고 있다. 인간의 위대한 지혜가 담긴 slow city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던 한 소녀가 우리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동생까지 와서. 참 순진무구하다. 같이 사진을 찍은 후 한국서 가져온 스티커 한 장씩을 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
Lonely Planet에서 이란의 가장 큰 볼거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이제 정말 실감 난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 보인 나라가 또 있던가? 이란 말고. 아직 이란에서 사람에 실망해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