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여행 - 로마 제국의 찬란한 흔적 제라쉬

동방의 폼페이 제라쉬

by 남쪽나라

요르단에서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제라쉬(Jerash). 이슬람식 이름으로 <황금의 강>이란 뜻이다. 제라쉬는 신약성서(마가 5장 1절)에 <거라사>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는 오래된 도시인데 요르단강 양안에 걸친 그리스의 10개의 성읍(Decapolis) 중 하나였다. 제라쉬는 한 때 인구가 2만 명에 이르는 번성한 도시였지만 8세기 초엽 지진으로 인해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200여 년 전 독일의 한 탐험가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했다. 이제 까지 겨우 25% 정도만 발굴되었을 뿐이란다. 그래서 흔히 동방의 폼페이로 불리기도 한다.


20170417_102102.jpg?type=w2 하드리아누스 문

암만의 북부터미널에서 제라쉬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시장바닥 같은 유적지 입구를 지나니 거대한 아치문 하나가 먼저 사람을 압도한다. 이름하여 하드리아누스 문. 로마제국 오현제 중의 하나로도 유명한 하드리아누스황제는 20년 재임기간 중 로마에 머물기보다는 여러 차례 속주를 순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아치문은 AD129년 하드리아누스황제의 이곳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붉은 색조의 아치는 장대하면서도 우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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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문을 들어서니 곳곳에서 히잡을 쓴 10대 소녀들이 웃고 떠들고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야단들이다. 오늘따라 단체소풍이라도 온 건가? 히잡만 썼지 우리네 중2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데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이는 표정들이다. 복잡한 남문을 지나서 오른편에 널따란 전차경기장도 보이고 조금 더 가니 타원형의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름하여 포럼(Forum). 로마시대의 시민광장이다.


20170417_115557.jpg?type=w2 로마시대 포럼(시민광장)

원래는 훨씬 더 많은 기둥들이 서 있었지만 지금은 달랑 56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원형광장에 서니 아내는 소녀들에게 인기(?) 짱이다. 소녀들이 여러 차례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고들 한다. 다들 참 예쁘고 맹랑들 하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도 안 오지? 나도 아직 꽃보다 할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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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룸을 지나서부터는 중앙로(Cardo)가 북쪽으로 곧게 펼쳐진다. 무려 길이가 800미터. 돌로 된 울퉁불퉁한 포장도로 양 옆으로 셀 수 없는 기다란 열주들이 도열하는데 <천 개의 기둥의 도시>라는 제라쉬의 별명이 이래서 생겼나 보다. 중앙로 중간중간에는 시장터(Agora)도 보이고 분수대도 있고 뭔지 모르는 건축물들도 많다.

20170417_105945.jpg?type=w2 <천 개의 기둥의 도시> 제라쉬의 열주들

다행스럽게도 소란스럽던 소녀들의 무리는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로마보다 훨씬 더 로마다운 열주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로마제국의 위대함과 영화를 다시 한번 회상한다.


20170417_111127.jpg?type=w2 다마스쿠스로 가는 북문

북문에 이르니 사방은 이상하리 만큼 고요에 빠지고, 길섶에는 무성한 잡초와 이름 모르는 꽃들이 피어 있다. 너희들은 틀림없이 2천 년 전에도 여기에 똑같이 자리했겠지? 우리는 천년의 세월을 가슴에 품으며 잠시 따가운 햇살을 피하여 서늘한 그늘을 찾는다.


20170417_112859.jpg?type=w2 북쪽 원형극장(North Theater)

다마스쿠스(성서의 이름 다마섹)로 향하는 북문 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니

원형극장(North theater) 하나가 보인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객석은 물론 무대나 출입구까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보기 드문 로마건축물이다.


20170417_113647.jpg?type=w2 아르테미스 신전

북쪽극장을 지나 언덕을 좀 더 오르니 거대한 석주들이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아르테미스는 다산의 여신, 아마도 그 시대 제라쉬의 수호신이었나 보다.


20170417_115427.jpg?type=w2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제라쉬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제라쉬는 실로 광대하다. 언덕과 언덕 사이 풀섶 사잇길을 유적들을 내려다보며 걷는 기분은 색다르다. 평지 위에 다닥다닥 밀집된 폼페이유적지를 걷는 답답한 기분과는 또 다르다. 비슷한 유적지를 거닐지만 시원스럽고 탁 터인 기분이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은.


20170417_120931.jpg?type=w2 제우스 신전의 기둥

언덕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거대한 제우스 신전이 서 있다. 천 개의 기둥 도시답게 제우스신전의 육중한 기둥들이 태양과 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하늘을 찌르고 있다.


20170417_120413.jpg?type=w2 남쪽 원형극장

제우스신전 옆에는 꽤나 큰 규모의 또 하나의 원형극장(South theater)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요란스럽던 소녀들의 무리들이 다 이 원형극장에 몰려들 있다. 일부는 마당까지 내려와 춤을 추고 또 다른 무리들은 객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신명이 나있다. 오늘 무슨 신나는 소풍날인가 보다. 우리들에겐 로마시대의 이 위대한 유적보다는 요르단소녀들의 유쾌한 야외놀이가 더 볼거리이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적지 않은 편견들이 부끄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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