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색 붉은 도시

세계 7대 경이의 하나, 인디아나존스의 무대

by 남쪽나라

요르단관광청은 공식 홈페이지에 영국시인 존 윌리암 버건의 시 한 귀절을 빌려 페트라(Petra)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A rose-red city half as old as time'(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색 붉은 도시)>.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암만에서 페트라(Petra)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하루에 단 한편, 그것도 새벽 6시 Jett버스뿐이다. Jett버스를 못 타면 택시로 가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제 제라쉬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갈아타고 버스표를 사기 위해 세븐 서클에 있는 Jett버스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인터넷이나 전화로는 예약이 안된다 해서. 운 좋게 마지막 자리 2개가 남아 있어 오늘 아침 새벽같이 호텔을 나와 버스를 탄다. 예약한 와디 무사의 민박집에 짐을 던져 놓고 점심용 샌드위치와 물만 챙긴 후 곧장 페트라입구로 향한다.


외국인의 페트라입장료는 50디날, 한화로 무려 85,000원이다. 우리는 그나마 Jordan Pass를 구입해 오긴 했지만 한마디로 욕 나온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이 가난한 나라에서 어쩌랴? 조상 덕분에 관광수입으로 겨우 먹고사는데 이 정도 바가지쯤은 감수해야지. 페트라 입장료 수입으로 요르단 세수의 20%를 채운다니 알만도 하다.


20170418_115923.jpg?type=w2 페트라 입구 시크 길

그런데 비싼 입장료 생각은 시크(Siq, 협곡))에 들어서자마자 싹 사라져 버린다. 장장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시크(협곡)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싸가지 없이 마차들이 수시로 달려 오가는 것만 없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시크(Siq)는 수억 년 전 급류에 의하여 만들어진 뱀처럼 구불구불한 협곡이다. 걷다 보면 하늘을 가리는 높다란 사암 바위틈사이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좁은 데는 폭이 3~5미터나 될까?


20170418_122214.jpg?type=w2 알 카즈네

페트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시크(Siq)를 걷다가 문득 협곡 사이로 삐쭉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알 카즈네(Al-Khazneh)를 보는 순간이다. 숨 막히는 듯한 장관(Breathtaking Grandeur)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나아가면서 우리는 가급적 오래 이 숨 막히는 순간을 만끽하려 한다.


드디어 알 카즈네 앞 광장, 고대동방의 전통과 헬레니즘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붉은 사암절벽을 깎아 만든,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경이(Wonder) 앞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탄과 찬사뿐이다. 낙타와 당나귀들도 한층 광장의 분위기를 돋운다.


페트라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 바위 색깔이 마법처럼 붉은 장미색으로 바뀐다고 해서 <장미 도시(Rose city)>라고 불리기도 하고,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로 불리기도 한다.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황제가 이곳을 다녀 간 기념으로 붙여졌다고 하는데 하드리아누스황제 역시 이 앞에서 우리들처럼 감탄사를 연발했겠지. 그리고 이 경이로운 도시는 내 것이다라고 선언이라도 한 건가?(하드리아누스황제의 발길 안 닿은 곳이 없다. 그리스를 특히 사랑하여 그리스는 물론이고 시칠리아의 에트나화산 정상까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20170418_122505.jpg?type=w2 알 카즈네 전경

알 카즈네 앞에서 누군들 인디아나 존스가 되어보기를 마다하랴? 나도 어깨 힘주고 폼 한번 잡아 본다.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 인들이 기원전 7세기경부터 이곳에 정착하며 건설한 사막의 대상도시이다. 그들은 1세기 전후로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대상교역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형성하는데 번영기 때는 인구가 무려 3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신전 어느 곳에 그 당시의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해서 '보물'이란 뜻의 알 카즈네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왕의 무덤이라 한다.


그러나 2세기 초 페트라는 로마제국에 병합되고, 7세기에는 아랍에 정복되었다가 12세기에 잠시 십자군의 요새로 사용된 후 역사의 무대에서 잊혀 버렸다. 오직 베두인족만이 알고 비밀스럽게 감추어 둔 것을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부르크하르트(Burkhart)에 의해 다시 발견되는데 지금껏 발굴된 유적은 전체의 4분지 1 정도에 불과하단다.


20170418_133132.jpg?type=w2 붉은 사암을 깎아서 만든 원형극장

알 카즈네를 지나 큰길에는 수직으로 깎아 만든 거대한 파사드(facade) 벽들이 버티고 있고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붉은색 원형극장도 보인다. 큰길 양 쪽으로는 거대한 바위 속 무덤들도 보이는데 왼편은 평민들 무덤이고 오른편은 왕가의 무덤이다.


20170418_133727.jpg?type=w2 평민들 무덤
20170418_154206.jpg?type=w2 왕가의 무덤

낙타와 당나귀, 마차들이 쉬임 없이 오가는 큰길의 어느 지점부터는 로마시대 건설한 열주대로가 이어진다. 열주대로 오른편에는 대 신전의 흔적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로마식 건물들과 열주들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단지 로마가 한 때 이곳을 지배했다는 흔적일 뿐 아무런 영감도 자아내지 못한다.


20170418_135659.jpg?type=w2 로마시대의 열주로
20170418_140111.jpg?type=w2 로마시대 유적들

열주대로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높다란 바위 산 밑에서 멈춘다. 바위산 중턱에는 박물관이 있지만 우리는 실내박물관을 굳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이 박물관 아닌가? 우리는 산 중턱 형형색색의 바위층 앞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히는데, 주위엔 몇 그루의 나무도 있고 우물터도 있어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이다. 혹시 이 근처가 옛날 오아시스라도 있던 자리인가?


그늘이라곤 거의 없는 페트라유적지를 때약볕 아래 몇 시간씩 돌아다니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젊은 사람들은 더위도 아랑 곳 하지 않고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르기도 하고 수도원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이다. 더 이상 욕심은 무리이다. 우리가 오늘 하루 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때로는 휴식도 여행이다. 마구 돌아다니는 것만 여행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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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이 사막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사진이나 TV로도 이 아름다운 경관을 다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자리에 직접 서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 때문일 게다. 감동은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안다. 위대한 자연 앞에, 위대한 문명 앞에 직접 서서, 보고 만지고 느낄 때에 비로소 전해지는 짜릿한 감동.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돈과 땀을 투자하나 보다.


두 노친네는 한낮의 뙈약볕아래 왕복 10km의 길을 걷는데도 그다지 피곤해하지 않는다. 이 눈부신 사막의 경이에 감동 먹어서일까? 우리는 해가 질 무렵까지 또 다른 색깔의 장밋빛 도시를 즐기며 아주 천천히 숙소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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