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바라보며
우리가 굳이 홍해의 아카바(Aqaba)로 간 것은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사무소가 있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순전히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기억 때문이다. 로렌스가 아랍군대를 규합하여 아카바로 돌진하면서 외치는 소리 Aqaba! Aqaba! 그 장면은 영화를 본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와디럼(Wadi-rum)에서 아카바까지는 자동차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우리는 이 정도 거리라면 버스가 자주 다닐 거라고 생각하며 별로 서두르지 않고 알리가 태워다 주는 차편으로 9시경 방문자센터로 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아카바행 버스는 아침 7시 단 한편 뿐,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두 개나 들고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고 어젯밤 캠프에서 만났던 젊은 스페인 부부가 자기들도 아카바로 간다며 렌터카로 테워주겠단다. 이를 땐 호의를 사양할 이유가 없다. 덕분에 우리는 호텔 앞까지 참 편하게 도착했다.
아카바는 홍해에 면한 요르단의 유일한 해상관문이자 자유경제구역이다. 해안의 길이는 고작 12 킬로미터애 불과하다. 그것도 1965년 사막의 일부를 떼어 주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교환한 항구이다. 배 아프게도 사우디에 건네준 사막에서는 그 이후 석유가 펑펑 나왔다. 하지만 요르단 사람들에게는 아카바는 석유 이상으로 값어치 있는 항구란다. 홍해의 평균 수온은 20도 정도여서 언제나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카바는 해양휴양지로 유명하다. 특히 스쿠버다이빙의 천국이라나.
세상엔 흑해도 있고 황해도 있고 여러가지 이름의 바다들이 있으니 홍해라는 이름도 이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홍해를 유달리 기억하는 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 이야기 때문일 게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는 유대인을 이끌고 홍해의 물을 가르고 가나안으로 대탈출한다는 바로 그 성서의 이야기. 그런데 왜 하필 홍해(Red sea)로 이름지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역시 성서적 해석으로 모세의 군대를 추적하던 이집트 군대가 수없이 물에 빠져 죽었을 때 기적을 알리는 전조로 바다가 붉게 물들었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바다를 붉은 바다로 부르기로 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설은 홍해의 독특한 물빛 때문이란다. 만 끝에 가까워지면 바닷말 때문에 알투르만이 피바다처럼 빨갛게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믿거나 말거나.
호텔에서 소개해준 한 식당(Sami)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해변으로 나갔더니 후덥지근하고 무척 덥다. 해변은 조용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다. 시아스타 시간이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홍해에 발도 담그고 수영까지 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하고 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탈의시설도 없고 아이들 말고는 수영하는 사람도 없다. 차마 두 노인네가 이슬람 땅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항구의 맞은편은 이집트 땅이고 오른쪽은 이스라엘의 유명한 고급 휴양지 아이랏트(Eilat)이다. 이 좁은 홍해 모퉁이에 3개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다. 건조한 사막을 쏘다니다가 갑자기 후덥지근한 바닷가로 와서 그런가? 돌아다니기도 너무 덥고 재미(?)도 없고 해서 일단 호텔로 돌아와 쉬기로 한다.
해질 무렵에 다시 나가니 한 낮과는 달리 해변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맞은편 이스라엘의 아일랏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별다른 위락거리가 없는 아랍국가에서는 해변가 공원이 유일한 저녁 나들이 장소인가 보다. 귀하고 귀한 요르단의 유일한 바닷가 비치라면 이야기가 더 달라진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해변은 리조트에서 다 차지하고 일반시민들의 휴식공간은 길지 않은 퍼블릭 비치가 전부이니 와글와글 할 수밖에.
우리는 해변에서 좀 거닐다가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손자들 선물이나 살까 하고 주변상가들을 둘러보는데, 밤 9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상점들은 문전성시이다. 다들 더운 오후에는 문을 닫고 8시가 넘어서야 슬슬 다시 문을 연다. 그렇지만 초저녁 잠이 많은 우리는 10시도 안 된 시간에 호텔로 철수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