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 - 도보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첫날부터 깨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

by 남쪽나라

기차나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 본 경험은 여러 차례 있다. 그런데 도보로 국경을 넘는 일은 난생처음이라 꽤나 긴장된다. 더구나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입국 아닌가?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로 요르단 측 출국사무소에 내리니 아침부터 벌써 줄이 길다. 이거 야단 났네! 투덜거리며 긴 줄 뒤에 섰더니 누가 우리더러 바로가란다. 알고 보니 이 줄은 매일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일하러 가는 요르단 노동자들의 행렬이다. 손에 든 비닐봉지에 달랑 아랍 빵 몇 조각이 든 걸 보니 점심도시락인가 보다.


요르단 출국사무소는 별문제 없이 통과하지만 이스라엘 측 입국사무소에서는 예상대로다. 직원은 우리 여권에 이란 비자가 있는 것을 보고 이란은 왜 갔는지, 어디 어디 갔는지, 여행기간은? 등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다음 검색대에서는 가방을 다 열게 하고 물건을 일일이 꺼내본 후 X레이검사대를 여러 차례 거치며 반복해서 정밀검색한다. 이해는 하지만 욕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국경 출입국관리소를 별 탈 없이 통과한 후 이번에는 이스라엘 택시를 타고 아일랏(Eilat)의 에기드(Egged)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국경 통과시간은 고작 30분 정도.


20170421_101219.jpg?type=w2 이스라엘 아이랏 시내

아일랏은 홍해를 접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휴양도시이다.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길가엔 야자수나무가 무성하다. 돈 많은 유태인들이나 부자들이 주로 오는 휴양지라 우리 같은 사람은 바닷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에기드버스 정거장은 생각보다 작다. 우리나라의 시골버스 대합실 같다.


20170421_112950.jpg?type=w2 아일랏 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
20170421_113048.jpg?type=w2 시외버스 터미널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약했던 탓에 대합실에서 무료하게 몇 시간을 기다리는데 뜻밖에 어리둥절한 일이 벌어진다. 멀쩡한 젊은 녀석 두 명이 우리 앞에 나타나더니 One Sekel! One Sekel! 한다. 돈 달라는 이야기 같은데 구걸하는 게 아니라 마치 협박처럼 들린다. 그 옆에는 3주 동안 중동국가에서 히잡 쓰고 몸을 다 가린 정숙한(?) 여인네들만 보아온 우리의 눈을 갑자기 휘둥거려지게 하는 핫팬츠에 배꼽을 드러낸 거의 반라의 젊은 여자도 같이 있다.


아니, 여기 이스라엘 맞아? 이스라엘에도 건달패가 있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해 왔던 이스라엘의 이미지가 확 깨지는 느낌이다.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며 온갖 핍박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생존해 온 도도함과 자긍심, 신생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기까지 그들이 바친 희생과 조국애. 이스라엘은 왠지 다른 세속국가와는 다를 거라는 우리들의 환상(?)이 너무 나이브한 걸까?


그뿐 아니다. 생수 한 병에 10 세켈(4천 원), 샌드위치 하나에 20 세켈(8천 원), 이스라엘의 살인적인 물가에 입이 딱 벌어지고 벌써부터 움츠려 들기 시작한다.


20170421_132508.jpg?type=w2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나무 숲
20170421_160949.jpg?type=w2 사해

예루살렘행 444번 버스에 막상 탑승하니 앉은 승객보다 입석 승객이 더 많다. 우리가 예약한 1시 버스가 막차라서 그런 모양이다. 에기드버스는 우리식 고속버스가 이니라 시외버스인 셈이다. 중간중간 내리고 태우며 또 웬만한 도시를 다 들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스라엘은 워낙 사막지대라 보이는 것도 별로 없다. 가끔 보이는 것은 촘촘히 심은 야자나무 단지와 사해 정도.


예루살렘 중앙터미널에 도착하니 오늘 해질 시간부터 유태인의 안식일(Sabbath)이 시작되어 트램도 버스도 다 다니지 않는다. 제기랄! 하필 안식일 날(토요일)이냐! 택시 몇 대가 호객을 하고 있는데 요금이 한마디로 운전수 마음대로이다. 중동여행에서 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자주 타는데 제일 귀찮고 피곤한 일이 택시값 흥정이다. 여차하면 바가지라 미리 대략의 가격을 알거나 몇 마디 숫자라도 말할 줄 알아야 그나마 바가지를 덜 쓴다.


그런데 이 첨단과학의 선진국(?) 이스라엘 땅에서도 또 흥정을 해야 하나? 우리는 40 세켈에 겨우 흥정하여 미리 예약한 한인민박집에 무사히 (?) 도착한다. 택시비로 40 세켈을 지불했다 하니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L선교사님 왈 '흥정 고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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