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식 화끈한 환영식- 구엘공원의 소매치기

과잉관광(Overtourism)의 도시 바르셀로나

by 남쪽나라


시차와 피로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쉽지 않았지만 부지런히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고 우리는 지하철로 성가족성당에 9시쯤에 도착한다. 아침부터 입구는 인산인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은 가우디의 대표작이자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물 아닌가? 착공한 지 10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아직도 성당은 공사 중이다. 옥수수모양의 첨탑들 위로 아직도 타워크레인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니 언제 끝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려나? 아름답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기이한 모양의 외부를 찬찬이 둘러보고 안으로 입장한다.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사 와 줄 설 필요가 없어 다행이다.


1527389400636.jpeg?type=w773 성가족 성당의 첨탑

성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우선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전통적인 교회양식과 전혀 다름에 또 놀란다. 나무줄기를 형상화했다는 기다란 기둥들과 야자수 나뭇잎과 해바라기모양의 천정, 꽃과 동물들의 문양과 스텐글라스 창을 통하여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원색들, 한마디로 더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가우디는 분명 이 성당 안에 태초의 낙원을 재현하려 했나 보다.


1527389407688.jpeg?type=w773 성 가족 성당의 내부
1527389416224.jpeg?type=w773 그네처럼 공중에 걸려 있는 예수의 십자가

그런데 워낙 사진이나 영상으로 봐 와서 그런지 감동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무덤덤하다. 여러 번 와 본 성당처럼. 왠지 이곳에선 예수님은 없고 오직 가우디만 있는 느낌이다. 예수님은 저 높이 매달린 천정의 한 장식일 뿐 가우디가 바로 신이다. 모두가 가우디만을 찬양한다. 그의 천재성을, 그의 위대함을. 유럽의 그 어떤 대단한 성당을 가봐도 성당의 아름다움에, 경건함에 감탄들 하지만 그 성당을 지은 건축가를 기억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 성당을 제외하면.


분명 위대한 건축물임에 틀림없지만 과연 이 성당건물이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명예와 허영심을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드는 것은 나의 불경함(?)때문인가? 중세도 아닌 1882년에 착공하여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 성당을 짓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가우디를 팔아 설마 부자 도시 바르셀로나의 관광 수입을 늘리기 위한 속셈은 아니겠지?


20180420_114053.jpg?type=w773 고딕지구의 대성당

성가족 성당을 1시간 정도 돌아보고 나와 고딕지구로 이동한다. 고딕지구에 있는 대성당과 왕의 궁전을 찾아 나서는데 대성당 앞도 역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요즈음의 바르셀로나의 인기를 실감한다. 우리는 성당 안을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근처에 있다는 보케리아시장을 찾는데 여기도 역시 사람들이 밀려다닌다. 와! 대단하네! '보케리아시장에서 없으면 아무 데서도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시장이라는데 이 정도면 시장이 아니라 그냥 관광명소 중 하나일 게다.


20180420_115808.jpg?type=w773 보케리아시장 입구

우리는 시장 안 쪽에 자리한 어느 해산물 좌판가게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기로 하는데 옆자리 테이블에 놓인 꼴뚜기 튀김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음식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인도 옷차림의 젊은 여성이 먹어보라고 접시를 내민다. 고맙게 한 점 시식을 했더니 아예 우리더러 다 먹으라고 통째로 준다. 그녀 입맛에 안 맞아서인가? 아니면 돈이 많아서 우리한테 친절을 베푸는 건가? 한 접시에 20여 유로나 하던데.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시킨 해산물 접시에 공짜 꼴뚜기까지 배불리 먹고 24번 버스를 타고 어제 헛걸음한 구엘공원으로 다시 향했다.


1527389467585.jpeg?type=w773 구엘공원 내 가우디가 설계한 회랑

전체 공원의 규모는 엄청 크지만 가우디의 열렬한 후원자이던 구엘의 이름을 딴 가우디의 작품이 있는 구엘공원(Parc Guell)은 그중의 일부인 듯 찾기도 힘들고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공원은 곳곳이 보수작업을 하느라고 파헤쳐 저 어수선하다.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파도를 형상화한 요상한 모양의 돌회랑을 따라가니 드디어 가우디의 구엘공원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그리스신전을 본뜬 하이포스타일 홀을 향해 올라가면 중간쯤 유명한 가우디의 도마뱀 분수대가 위치해 있다. 분수대 주변은 역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도 사람들 틈에 썩여 사진 한 장을 겨우 찍고 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꽤 넓은 가우디의 작품 타일벤치광장이 나온다. 아무런 그늘도 없는 오후의 뙤약볕 아래 밴치는 온통 중국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막상 우리는 가우디의 타일벤치가 정작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한다.


20180420_142131.jpg?type=w773 도마뱀 분수대
20180420_142352.jpg?type=w773 가우디가 설계한 동화 속 같은 집들

그나마 타일광장에 서니 바르셀로나 시내가 다 보이고 바로 눈앞에 동화에나 나올 듯한 아름다운 곡선스타일의 가우디 건물 두 채가 서 있다. 한 때 가우디가 거처했고 지금은 가우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건축에 문외한인 우리로서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건축가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가우디가 없었다면 바르셀로나는 그저 그런 심심한 도시의 하나일 뿐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뙤약볕 아래 더 이상 머물기를 포기하고 다소 피곤한 발걸음으로 정문을 나와 24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막상 버스가 도착하니 줄이고 뭐고 없이 서로 밀면서 탄다.


버스에 올라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려는데 아까부터 버스정거장에서 어정거리던 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 둘이 통로를 막고 있다. 분명 안쪽에 자리가 있는데도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버티고 틈을 열어주지 않는다. 뒤에서 사람들은 계속 올라타고 아내와 나는 겨우 그들 틈사이를 비비고 들어가 각각 떨어진 채 자리를 잡아 앉긴 했는데 내릴 때쯤 아내의 표정이 이상하다. 심각 그 이상이다. 아내 왈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뭐라꼬? 언제? 얼마나? 나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도 아내는 너무 놀랐는지 꿀 먹은 벙어리 표정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적지 않은 000유로.

아까 그놈들의 소행이구나. 버스 통로를 둘이서 양쪽에서 막고 있을 때 뭔가 이상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이야기는 누차 들었지만 남의 일인 줄 알았지 막상 우리가 이렇게 당할 줄이야! 그 돈은 큰 아들이 '맛있는 것 사서 드세요!' 하면서 엄마에게 쥐어 준 여행 용돈인데 맛있는 것 제대로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털린 것이다.

우리는 씩씩거리며 숙소로 들어와서 동네 정육점과 와인 가게부터 찾는다. 그런데 또 시에스타시간이라 6시가 지났는데도 문 연 가게가 거의 없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산 스테이크용 고기와 와인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계속 '나쁜 스페인 놈들(소매치기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서 원정 온 사람들이라지만 그걸 어떻게 알지?)' 욕을 하다가 둘이서 와인 한 병을 다 비운다. 물론 거의 나 혼자 다 마셨지만. 누군가 여행은 예측불가성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설마 이런 사고도 즐기라는 건 아니겠지? 엄청 속 상하고 김새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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