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말고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볼거리들

21세기에 아직도 시아스타를 즐기는 나라

by 남쪽나라


오늘은 딱이 가야 할 곳을 정해 놓은 곳도 없어 아침을 먹고 늑장을 부리다가 머리도 식힐 겸 몬주익(Montjuic)을 가보기로 한다. <유대인의 산>이란 이름의 몬주익은 황영조선수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높이가 고작 해발 213미터에 불과하지만. 지하철 L2선을 타고 종점인 Paral-lel역까지 가서 후니쿨라를 바꿔 타고 역사를 나오니 그 앞에 몬주익 성으로 향하는 150번 버스 정거장이 있다.


몬주익 언덕은 올림픽 주 경기장, 갤러리,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복합시설을 갖춘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바쁜 일도 없어 천천히 걸어 올라가도 좋지만 아내가 무릎이 좋지않고 해서 버스를 타기로 한다.


20180421_121609.jpg?type=w773 성 안의 대포

사람들의 줄이 기다랗게 이어진 몬주익 성 안으로 들어서니 한 때 군사요새 아니랄까 성 안팎에는 아직도 커다란 대포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 자체는 별 볼거리가 없지만 언덕 꼭대기에 있어 전망만은 단연 최고! 성 위에 서니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다.


1527389487870.jpeg?type=w773 바르셀로나 항구
1527389496000.jpeg?type=w773 바르셀로나 시가지 전경

한쪽으로 커다란 크루즈선이 정박한 바다도 보이고 다른 쪽으론 저 멀리 성가족성당이 한가운데 우뚝 선 시가지도 한눈에 펼쳐진다. 그리고 성 아래로는 프라다나스 가로수와 꽃들과 숲으로 싸인 몬주익 언덕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 저기 어느 언덕길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황영조선수가 죽을힘을 다하여 내달렸겠지?


20180421_121400.jpg?type=w773 몬주익 언덕 도보길

무성한 프라타나스 가로수를 보니 로마의 자니콜로 언덕이 생각난다. 너무 분위기가 비슷하다. 시내를 바라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가우디 말고 도대체 이 도시에는 무슨 특별한 매력이 있길래 이처럼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 걸까?


사실 바르셀로나는 일찍이 로마시대 이전부터 지중해의 융성한 항구도시였다. 이슬람의 스페인정복 후 스페인은 문화적으로 유럽과 단절되고 고립주의적 지방분권왕국으로 나누어져 때론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면서 이슬람과 융화되어 갔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안달루시아지방보다는 프랑스에 가까워 이슬람의 영향을 훨씬 덜 받았다. 그래서 누군가 바르셀로나는 <로마의 토대 위에 이슬람의 색깔보다 프랑스의 색깔을 입힌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자존심도 대단하다. 스페인어를 쪼끔 공부했다고 촐랑대는(?) 나를 무색게 할 정도로
그들은 지금도 공공장소의 표지판을 카탈루냐어로 고집하고, 스페인의 다른 지역을 훨씬 능가하는 부를 바탕으로 지금도 그들은 스페인이기를 거부하고 카탈루냐공화국 독립을 꿈꾸고 있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사람 절반 이상을 먹여 살린다는 우스개 말도 있지만, 가우디 말고도 바르셀로나에는 볼거리가 많은 듯하다. 건축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들과 세련된 도시분위기, 중세 유적들,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들. 더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와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일 년 중 비 오는 날이 고작 65일 정도란다), 그리고 인접한 바다와 산들. 모든 것을 고루 갖추었다 할 수 있겠다.


20180421_135214.jpg?type=w773 카탈루나 광장

우리는 내려올 때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카탈루냐 광장까지 와서 람블라스거리를 걸어 본다. 바르셀로나의 명동답게 토요일의 람브라스는 역시 인산인해이다.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파도처럼 밀려다닌다. 그리고 각종 재미있는 볼거리도 풍성하긴 한데


20180421_140044.jpg?type=w773 람블라스 거리
20180421_142454.jpg?type=w773 람블라스 거리의 주말 풍경

이 복잡한 거리에 서니 바르셀로나를 천천히 걷고 호흡하며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도시라는 말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같이 나이 든 세대에게는. 점심 때라 우리는 람브라스 골목길의 어느 자그마한 식당을 찾아 제법 우아하게 <오늘의 메뉴>를 즐겨 본다. 음료수, primo, secondo, 후식까지 포함해도 크게 부담이 안되는 가격이다. 맛은 그저 평범하지만 그런대로 분위기는 만족스럽다.


우리는 오늘 오후에는 일찍 귀가하여 쉬기로 한다. 숙소가 있는 Maragall역 주변은 중산층이 주로 사는 꽤 오래된 도심 중 하나같다. 높은 현대식 건물은 안 보이고 2~3층 높이의 정감 있는 꽤 오래된 유럽식 주택지역이다. 지하철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는 자그마한 상점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몇 개는 우리의 단골(?) 가게가 되었다. 야채와 과일을 파는 가게의 젊은 주인은 'Hola!' 정도만 겨우 말할 줄 아는 우리에게 양파 한 개, 오이 한 개씩을 사도 웃는 얼굴로 저울에 달아준다. 물론 가격도 싸고 신선하다. 나는 이런 동네를 좋아한다. 한 두번만 만나도 누구나 금세 친구와 이웃이 될 수 있는.


어젯밤 동네 와인가게에 들렀을 때는 주인의 몇 마디 영어와 나의 몇 마디 스페인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확인해 주었다. 그가 설명을 하고 적극 추천해 준 5유로짜리 와인은 한국에서 몇만 원 하는 와인보다 훨씬 좋았다.


이런 동네라면 한 달쯤 살아보고 싶기도 한데 역시 오늘도 시아스타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밤을 성대한(?) 저녁으로 즐겨 보려는데 오늘도 가는 길에 가게들은 굳게 닫혀있다. 야채가게도 와인가게도. 눈이 팽팽 돌아가는 21세기에 아직도 느긋이 시아스타를 즐기는 나라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장보기를 포기하고 한국서 가져온 간편식으로 한국식 만찬을 준비해 민박집의 널찍한 식탁을 독차지하고 사흘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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