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외에 뭐가 있지?
스페인에 가기 전 바르셀로나에 대한 나의 기억은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과 기이한 모습을 한 가우디의 성가족교회 정도뿐이었다. 가우디가 먹여 살리는 도시(?), 가우디를 빼면 도대체 뭐가 있길래 요즈음 바르셀로나가 핫 여행지가 된 걸까? 나의 궁금증에 더해 아내까지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하니 우리의 스페인 땅의 첫 발은 당연히 바르셀로나이다.
인천공항에는 언제부터인가 자동 체크인 기계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지만 기계치인 데다 어쩌다 한 번 해외에 나가는 우리 같은 아날로그세대는 카운터에서 직접 항공사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체크인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러나 오늘은 일부러 사용법을 배우기도 할 겸 난생처음 자동 Check-in기 앞에 서 본다. 지시대로 몇 번을 따라 하는 데도 중간에 진행이 되지 않는다. 역시 내가 기계치라서 그런가? 아니면 기계가 고장인가? 다른 사람은 잘도 하는데. 더 이상 반복하기를 포기하고 툴툴거리면서 카운터로 간다.
그런데 대박!! 손에 쥐어주는 표를 보니 비즈니스석 아닌가! 우리처럼 가난한 여행자는 어쩌다 국적항공기를 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공짜로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다니! 이유야 굳이 알 필요 없다. 출발부터 입이 쩍 벌어지고 횡재한 기분이다. 바르셀로나까지 10여 시간 동안 정말 편하고 좋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돈 벌려고 아우성인가 보다.
야! 이제 이코노미를 어떻게 타지? 하며 늦은 시간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려 민박집주인이 친절히 알려준 대로 지하철을 타고 민박집에 겨우 도착한다. 그런데 방은 답답할 정도로 작고 화장실 세면대는 물도 잘 안 빠지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사진에서 봤을 때는 엄청 멋있는 집이었는데.
우리는 이번 스페인 여행 숙소는 대부분 AirBNB로 예약했다. 유럽의 호텔비가 엄청 비싸기도 하지만 장기간 여행하는 우리에겐 음식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민박집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별로 편하지 않은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우리는 가우디의 도시에 왔으니 가우디부터 보기로 한다. 사실 가우디 말고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아침밥 먹고 먼저 찾아간 곳은 구엘공원.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묻고 물어 숙소 근처에서 D40 버스와 24번 버스를 번갈아 타고 구엘공원까지 가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아뿔싸! 입장권이 벌서 다 팔리고 없단다. 우리는 공원정도는 가서 줄 서, 표만 사면 될 줄 알고 예약을 해야 하는 줄 미처 몰랐다. 이런! 바보같이 여행 첫날부터 헛발질이네.
할 수 없이 다음날 오후 표를 산 후 24번 버스를 다시 타고 시내로 향한다. 한 20여 분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번화한 시가지에 접어든다. 잘 다듬어진 넓은 도로엔 양 옆으로 가로수가 멋지게 그늘을 이루고 있고 아름답고 개성 있는 집들이 즐비하다. 파리나 런던처럼 비슷한 집들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같이 특색 있고 개성 있는 집들의 연속이다. 이래서 바르셀로나를 건축박물관이라 하는 건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 많은 건물 중에서도 단연 우리의 시선을 확 끄는 건물 하나가 보인다. 우리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한다.
이상하게 생긴 그 건물 앞에 가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있다. 가우디를 잘 모르는 나도 금방 가우디의 집인지 알겠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의 최고번화가인 그라시아 거리이고, 이 건물은 가우디의 유명한 연립주택 Casa Mila이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19.95유로. 둘이 40유로다. 나야 당연히 돈 아까와 겉만 본 걸로도 만족인데 아내가 기어이 들어가 보고 싶어 한다. 긴 줄을 한참 서고 검색대까지 거쳐 안으로 들어간다.
먼저 지붕으로 올라가니 과연 가우디 다운 희한한 지붕이 나타난다. 버섯 모양 같기도 하고 고깔 아이스크림 모양 같기도 한 기묘한 형상의 굴뚝과 환기통들 사이로 사람들은 재미있는 듯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지붕 말고도 볼거리는 많았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살펴본 건물 안도 100여 년 전에 지은 건물로는 굉장히 파격적이다. 건물 안팎이 온통 곡선으로 이루어진 실용적이라기보다 장식에 치중한 건물 같다. 한마디로 튀는 집이다.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약간은 괴이한 집 같다.
Casa Mila를 나와 우리가 찾은 곳은 바로 근처의 Casa Batllo. Casa Batllo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태라스와 기둥이 해골을 연상시킨다 해서 <해골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이 건물 앞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양측의 다른 건물들과도 묘한 콘트라스를 이루어 눈에 확 띈다. 그러나 입장료도 아깝고 왠지 Casa Mila와 비슷할 것만 같아 입장은 포기한다.
그런데 다음 날 우연히 지나다가 다시 본 Casa Batllo는 오늘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해골 같다는 테라스에 온통 빨간 장미꽃이 덮여 있어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우디의 건물은 가끔 이런 식으로도 사람들을 놀래주는가 보다.
아침부터 헤매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간신히 찾은 큰 길가의 한 대중식당에 들어가 파에야를 시켰는데 난생처음 먹어본 빠에야는 비싸기만 하고 소문만큼은 별로다. 이곳이 번화가 관광지라서 그런가? 우리는 첫날이라 피곤하기도 해서 숙소엘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쉰 후 6시경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음악당 <Palau de Musica Cataluna>에서 8시에 예약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보기 위해, 아니 실은 오페라보다는 음악당을 구경하기 위해.
Palau de Musica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와서 아쉽게도 입장이 안된단다. 우리는 좀 일찍 와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음악당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 Palau de musica Cataluna 음악당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재돼 있는데 이 극장 내부를 보는 투어프로그램만 따로 있어 입장료가 무려 20유로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싼 입장료 내고 극장투어만 하느니 50유로 내고 이왕이면 오페라 <라 트라비아라>를 제대로 보기로 한 것이다
건축박물관답게 바르셀로나에 와보니 가우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바르셀로나의 예술부흥운동(Modernisme)에서 가우디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위대한 건축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 건물을 지은 Montaner이다.
음악당 외부도 대단하지만 소문대로 내부는 입이 짝 벌어질 정도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 단언컨대 이 보다 더 아름다운 극장은 없을 것이다. 음악당 규모는 그다지 커질 않다. 그만큼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소리가 잘 들리게 마련이다. 특이하게도 오케스트라가 무대 밑에 숨은 것이 아니라 무대 후면에 자리하고 있는데도 오페라 감상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움직임과 표정을 전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성악가들의 노래, 연출이 다들 수준급이다. 워낙 유명한 오페라지만 별다른 실수나 거슬림이 없는 좋은 공연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에서 수준급의 오페라공연을 보는, 이 감격적이어야 하는 순간에 나는 무엄(?)하게도 쏟아지는 졸음을 끝내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리아'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부르는데도 나는 비몽사몽을 헤맨다. 끝까지 졸지 않고 집중해서 보았다는 아내가 내게 던진 위로(?) 한 마디가 그나마 천만다행 아닌가? "코는 골지 않던데요." 이른 아침 구엘공원의 헛걸음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당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마무리한 스페인에서의 잊지 못할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