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1)-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도시

스페인 속에 꽃핀 화려한 이슬람문화

by 남쪽나라


내가 한 때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 <그라나다(Granada)>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많은 유명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호세 카레라스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가 바르셀로나 출신이면서 나와 동년배라서 그런가?


그라나다! 꿈에 그리던 땅이여!

그대를 위해 불러질 때 나의 노래는 집시의 노래가 된다네.
나의 노래는 그대에게 바칠 우수의 꽃.
그라나다! 해 질 녘이면 투우의 피로 붉게 물드는 땅이여!
반항적인 꿈이 어린 무어인의 매력적인 눈을 가진 여인이여!
온통 꽃으로 뒤덮인 집시소녀여!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사과처럼 달콤한 그대의 연지빛 입술에 입 맞추네.
그라나다! 주옥같은 가락으로 노래하는 여인이여!
장미꽃 한 다발 밖엔 그대에게 줄 것이 없네.
검은 성모 마리아에게 어울릴 그런 부드러운 향기의 장미꽃 밖에.
그대의 대지는 피와 태양의 어여쁜 여인들로 가득하네.

얼마나 정열적이고 멋진 노래인가! 그런데 이 노래는 1932년 그라나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멕시코의 '아구스틴 라라'라는 사람이 상상 속에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지금은 유튜브다 사진이다 넘쳐 나지만 그런 것이 없던 시절, 스페인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도 언제부터인가 그라나다만은 가슴속에 품어 왔다. 언젠가 한 번 꼭 가보리라 염원하며.


오늘 마침내 그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그라나다행 아침 7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미리 싸놓은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민박집을 나선다. 지하철역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다행이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엘리베이터도 에스칼레이터도 안 보인다. 깊숙하고 가파른 계단을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내려가다가는 새벽부터 허리 다 나갈 것 같아 난감하기만 하고. 이럴 때는 주저하지 말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상수(?)이다. 손짓발짓해도 통하지만 몇 마디 현지어를 익혀두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지나가는 젊은이를 붙잡고 달달 외워 둔 스페인어 한마디를 던져본다. Disculpe, Puede ayudarme, por favor?(미안하지만 나 좀 도와줄래요?) 내 유창한(?) 스페인어가 통했는지 흔쾌히 우리 캐리어를 들어준다. 또 다른 계단이 나오자 이번에는 'Puede'만 말해도 다른 청년이 알아듣고 도와준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나의 넉살(?)에 아내는 신기한 듯이 뒤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어쨌든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공항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는데 비행기 출발시간이 한 시간도 안 남았다. Check-in 카운터에 'last call'이 번쩍번쩍거리고 있다. 식겁하면서 겨우 비행기에 올라 그라나다공항에 내리니 너무 이르다. 공항 바에서 아침식사까지 하고도 시간이 일러 택시 대신 공항버스를 타기로 한다. 미리 예약한 민박집주인 Antonio가 말해준 지점에 내려 주소를 들고 물어도 다들 모른단다. 걸어서 5분이라는데. (우리는 해외여행 시 로밍을 해 가거나 현지 유심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구글맵도 사용할 줄 모른다. 스마트폰에 머리를 숙이고 다니기보다는 지도 한 장 들고 주위를 살피며 길을 찾아가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 아닌가? 하면서)

이런 상황은 나도 익숙해져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근방의 사람을 붙잡고 무조건 'Puede'를 외치며 전화 좀 걸어 달라고 당당히(?) 요청한다. 그리하여 Antonio와 통화하는 데 성공하여 안토니오가 우리를 마중 나와준다. 민박집은 아파트인데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훨씬 고급스럽고 깨끗하다. 약간 배가 나온 인상 좋은 50대의 안토니오는 짧은 영어로 아주 친절히 지도를 꺼내 대성당과 알함브라 가는 길을 상세히 알려주고 궁금한 것들을 시원스레이 답해 준다.

우리는 짐을 풀고 조금 쉬었다가 안토니오가 준 지도를 들고 여유만만하게 대성당으로 향한다. 걸어서 Go! 하며. 걸어서 10~15분 거리라는데 그 정도야 거리도 아니지. 그런데 이상하다. 15분이 지났는데도 대성당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보이는 것은 그저 평범한 상점들과 주택가 거리들. 전혀 대성당이 있을 만한 구시가가 아니다. 알고 보니 지도의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한참이나 우회한 끝에 10분이면 간다는 거리를 우리는 30~40분은 족히 걸었다. 그라나다는 오늘 완전 여름 날씨다. 기온이 31도 C에 이르고 습도까지 높다. 아내는 뙤약볕 아래 점점 피로한 기색을 보이며 짜증스러워한다.


20180423_120017.jpg?type=w773 마침내 찾은 대성당이 보이는 골목

숙소를 나올 때의 그 여유는 다 어디 가고 나는 전전긍긍 겨우 대성당을 찾긴 했는데 이번에는 또 버스정거장을 잘못 찾아 엉뚱한 정거장에서 기다리다가 또 10~20분을 허비한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20180423_105224.jpg?type=w773 그라나다 중심가의 이사벨여왕과 콜럼버스 동상

존 그레이의 재미있는 책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을 보면 원시시대부터 낯선 곳에서 사냥을 해야 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집안일을 하는 여자보다 훨씬 길 찾기에 익숙한 DNA를 타고난다고 한다. 지금에야 네비도 있고 길 찾기 앱도 지천이라 그런 말이 무색하지만, 한동안 나는 길 찾기에서만은 내가 아내보다 우수하다(?)는 걸 과시해 왔고 아내도 그 점만은 흔쾌히 인정했다.


특히 해외에 나오면 나는 자랑스럽게(?) '나를 따르라' 하고 지도를 들고 늘 앞서 걸었고 여태까지 나의 길 찾기 실력을 의심받은 적이 기억컨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70이 넘으니 나의 총기(?)도 사라졌나? 새벽부터 존경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눈빛은 어디 가고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나를 원망(?)하는 기운으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내가 꿈꾸어 오던 도시 그라나다에의 입성은 이렇게 힘들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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