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궁전 알함브라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어로 석류라는 뜻이다. 이란이 원산지인 석류의 학명은 Punica Granatum, 영어로는 pomegranate이다. 언젠가 내가 터키 어느 시골마을에서 커다란 석류 하나를 즉석에서 통째로 짜주는 석류주스를 처음 맛보았을 때 달콤 쌉쌀한 그 황홀한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너무 맛있어 이걸 터키어로 무엇이라 하는가 물었더니, 시골 아낙은 수줍은 듯 pomo granade! pomo granade!라고 외쳤다.
Granada라는 지명은 지형이 석류를 닮았다고 해서 부친 이름이다. 그렇지만 그라나다를 이름이 좋아서, 노래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그라나다를 오는 목적은 나처럼 단 한 가지, 알함브라를 보기 위함일 게다. 알함브라(Alhambra),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다. 지구상에 알함브라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인 궁전이 또 있을까? 동서고금에 멋있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들이야 수없이 많지만 낭만적이라고 하는 궁전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알함브라!
"그라나다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진주가 박힌 최고의 보석"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은 없다"(멕시코의 비평가 프란시스코 데 이카사)
"지상의 모든 열락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곳, 그림자조차도 황금빛으로 채색되는 곳"
"천국의 낙원을 보기 위해 굳이 죽을 필요가 없다. 알함브라가 곧 낙원이니까"
"알함브라는 정복하고 지배하고 사라져 간 용감하며 지적이며 품위 있는 사람들에 의해 남겨진
우아하고 외로운 기념물"(워싱톤 어빙)
알람브라에 대한 찬사는 넘치고 넘쳐난다. 알함브라를 전설로 만든 것은 사실 워싱톤 어빙의 힘이 크다. 워싱톤 어빙은 그의 책 <알함브라 이야기(1832)>를 통하여 몇백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힌 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알함브라의 아름다움과 그에 얽힌 전설들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 때 도둑들과 밀수꾼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알함브라는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전설과 설화를 품은 가장 낭만적인 궁전으로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
전설에는 또 전설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안달루시아를 수백 년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들 대부분이 13세기 중반 가톨릭세력에 의하여 붕괴되고 그중 한 세력만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가톨릭 세력에 의해 여기저기 쫓겨 헤매던 나시르왕조의 창시자 아부 알라흐마르가 계곡과 강, 그리고 네바다 산맥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라나다에 이르렀을 때 "여기에, 빛나는 횃불의 이 땅에 궁전을 세워라. 그리고 알함브라라고 불러라"라는 알라신의 계시를 듣고 짓기 시작한 것이 알함브라란다(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책 <묻힌 거울>).
알함브라에 관한 최고의 전설은 무엇보다도, 알함브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그라나다왕국의 마지막 왕 보압딜에 관한 전설이다.
1492년 1월 알함브라궁의 열쇠를 이사벨과 페르난도 가톨릭국왕에게 넘겨주고 떠나면서 어느 언덕에서 그라나다를 돌아보며 보압딜이 흘렸다는 한탄의 눈물과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 " 왕국을 빼앗긴 건 좋은데 알함브라를 잃은 것이 너무 한탄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유약한(?) 왕 보압딜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했다는 말 "네가 남자답게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
그런데 보압딜에 관한 이런 전설들이 정말 다 사실일까? 서양의 역사가들은 그를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누이와 자식을 죽인 잔인한 인간이며, 우유부단하며 방탕하며 나약한 인간이라고 그리고 있다. 최근의 영국의 BBC방송(우리가 몰랐던 스페인)조차도 '나시르의 그라나다왕국은 부패하고 방탕하고 무능력한 보잘것없는 왕국이었으며, 알함브라는 과장된 무대장치였다. 단지 예술로 자신의 약점을 웅장함 속에 감추려 했다'라고 폄하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나시르왕국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역부족을 잘 알고 가톨릭왕국과 싸우기보다는 봉신이 되기로 한 조공 국가였다(부끄럽지만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중세시대 스페인에는 봉건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조공과 약탈이 가장 큰 국가의 재정수입이었다. 가톨릭 왕국은 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왕국을 단칼에 쳐서 잡아먹어버리기보다는 오랫동안 살려두면서 매년 손쉽게 조공을 받아 챙기는 편한 장사를 택한 것이다.
스페인의 리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를 최종 마무리하기 위해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왕은 마지막 남은 그라나다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10년 동안 전쟁을 벌이는데 보압딜은 그들의 운명이 풍전등화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저항해도 이길 수 없을 것임을. 그래서 그는 8개월 여를 버티다가 비밀협상 끝에 마침내 왕국을 넘겨준 것이다. 왕을 비롯한 정신들과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가톨릭왕의 약속을 믿고. 물론 그동안 나시르왕국 내의 권력찬탈과 내분도 나라가 망한 큰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떤 나라인들 망할 때 구실 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그라나다왕국의 멸망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 아닌가? 워싱턴 어빙은 그의 책 <그라나다 정복연대기(1829>'에서 보압딜에 관한 이러한 전설들은 순전히 <그라나다 내전>이란 책에 의존하는 것인데 그 신빙성에 관해서는 의문이 간다고 말한다.
비슷한 사건이 그라나다왕국이 망하기 수십 년 전 1453년에 비잔틴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서양세계를 경악시킨 오스만 터키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사건이다. 1년여의 포위 속에서 항복하면 살려준다는 메흐메트 2세의 수차레 공언에도 불구하고 허울뿐인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마지막 전투에서 황제복을 입은 체 말을 타고 적진에 용감히 뛰어든다. 당근 시체도 찾지 못한 채 그는 장렬히(?) 전사한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은 패자로서 기억되는 대신 서양역사에서 동정받는 용감한 영웅으로 남는다. 그 이후에 무참히 살육되고 파괴되고 노예로 끌려간 수많은 백성들의 절규는 망각된 채.
콘스탄티노플 역시 함락 수십 년 전부터 오스만세력 앞에 풍전등화였다. 언제 무너지냐는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동일한 상황에 각각 다르게 대응한 보압딜과 콘스탄티누스 11세 중 과연 누가 더 현명한 군주였을까?
뒷 이야기 하나: 보압딜과 그의 정신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알함브라를 떠난 이후 산악지대에 주거지가 주어졌으나 1493년 10월 보압딜은 가족과 정신들을 포함 1310명을 대동하고 모로코의 Fez로 건너간다. 그 이후 그곳 왕을 위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설도 있으나 Fez에 궁전을 짓고 살다가 1533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