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페인을 찾은 첫 번째 이유
알함브라궁을 둘러보고 나온 느낌은 역시 명불허전! 그 명성과 소문과 찬사들이 모두 허언이 아니구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찬사가 달리 더 있을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여태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건축물이다'라는 말 외에는. 아무리 사진기술과 녹음기술이 발달되었다 해도 절대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생생한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듯이 알함브라를 직접 보지 않고서는 결코 말하지 말자. 아름다움과 세련됨의 극치. 우리에겐 나스르궁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렇게 보였다. 그전에 애써 공부(?) 했던 알함브라궁에 대한 잡다한 사전 지식들은 궁전을 돌아보면서 새하얗게 잊혔다.
마주치는 건물마다 온통 화려하게 장식된 치장벽토 세공들, 그 속엔 아라베스크 무늬와 기하적인 디자인, 그리고 캘리그래피 등 신비함과 모호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슬람 예술의 모든 것들이 다 세겨져 있다. 추상과 환상이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이다.
방마다 천정은 각양각색, 우리나라 단청처럼 심플하게 채색된 것도 있고 아라베스크 스타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삼나무 목재 천정도 보인다. 나스르궁 내부는 돌이나 대리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목재와 치장벽토로만 장식되어 있는데 아무리 옛날이지만 장인들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갔을까?
모카라베 양식의 화려한 석회동굴 종유석이 주렁주렁 달린 방도 있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옮겨다 놓은 듯한 방도 있다. 굳이 그 방의 이름이 '대사의 방'인지, '두 자매의 방'인지, '아벤세라헤스'의 방인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의 탄성과 카메라 샤터 소리만 없다면 우리는 분명 타임머신을 타고 8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와 있는 것만 같다.
몇몇 방들을 지나니 이번에는 그 유명한 아랴야내스 중정(Patio de Arrayanes)이 나온다. 중정의 한가운데 자리한 연못 위에 코마레스탑이 투영된 사진은 알함브라궁의 상징이렸다. 가장자리에 큼직한 대리석 수반이 자리하고 연못으로 물을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우리는 모서리 의자에 나란히 앉아 그 옛날 나스르왕과 왕비의 포즈로 물 위에 비치는 코마레스탑 그림자를 한동안 쫓아본다. 헤네랄리페의 어설퍼 보이던 수로의 중정(Patio de Acequia)과는 다른, 비로소 무어인들의 정원(Moorish garden) 다운 중정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만난 또 하나의 정원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 유대인들이 기증했다는 12마리의 사자들(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한단다)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물의 향연, 바로 알람브라궁의 진수이며 상징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원이라 할 만한 나무나 꽃도 없다. 대신 물이 있다. 사자상들의 입에서, 마당을 십자로 가르는 수로에서, 그리고 자그마한 수반들에서 새소리 보다 더 아름다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기분 좋은 신선함과 혼을 빼앗길 정도의 우아한 아름다움.
물은 아람브라의 혼이다. 물 없는 알함브라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중정은 말하려는 건가? 그리고 왕의 여자들만 살던 주위의 건물들은 왜 이리 아름다운 걸까?
왕들이 후궁을 거느리고 이 아름다운 무데하르양식의 회랑을 거닐 때면 바로 이곳이야 말로 그들이 꿈꾸던 쾌락의 낙원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가톨릭 건물들이 장엄하고 음울할 정도로 엄숙한데 비해 무어인들의 건축물은 매우 경쾌하고 우아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발흥한 그들의 조상들은 오로지 코란과 사막의 정신으로 질풍노도처럼 주위의 광대한 땅들을 정복해 나갔다. 정복자들의 후손들도 한동안 정복지에서 번영하는 제국을 건설하고 자신감에 넘쳐 그들의 우아함과 세련됨을 아름다운 건축물로 표현했다.
사막이 아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수많은 세월이 더 지나자 그들의 후후손들은 신앙심도 약화되고 초기의 사막정신과 강인함을 잃어버린 채 선조들이 정복하고 일구어 놓은 땅에서 온갖 쾌락과 사치와 방탕에 빠져들고, 때로는 그 쾌락을 점점 더 화려한 예술로 반영했다. 메카에서 멀어질 수록 이슬람 건축과 예술은 더 화려해지고 쾌락주의에 빠지게 되는데 이 알함브라궁도 이런 이슬람 말기의 쾌락주의의 산물인가?
'나스르왕국은 부패하고 사치스럽고 나약하고 방탕한 보잘것없는 왕국이었다. 알람브라는 과대한 무대장치이며, 그들은 그들의 나약함을 예술 뒤에 숨겼다'라는 BBC방송(우리가 몰랐던 스페인)의 해설은 어쩌면 적확히 알함브라의 실체를 지적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정신없이 나스르궁에서 혼을 빼앗긴 체 돌아다니다가 어빙이 머물렀다는 방도 지나고 크고 작은 정원들도 지나 2시간 만에 밖으로 나온다. 환상 속을 걷다가 속세로 다시 나온 느낌이다.
시간이 어느새 7시에 가깝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 본 카를로스궁은 왜 이리 초라(?)한고? 그라나다정복 후 알함브라궁전의 기를 확 꺽고 가톨릭왕국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지었다는 이 궁은 무의미하게 돌덩어리를 쌓아 놓은 형세이다. 알함브라를 납작하게 하기는커녕 더 돋보이게 하는, 없었으면 더 좋았을 건물 같다.
나오는 길가에 알카사바 요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 너무 무리한 아내의 컨디션을 감안하여 입장을 포기한다. 알함브라를 등지고 나오니 출구는 바로 정의의 문. 말발굽 모양의 이중 아치가 눈에 익은데 우리를 잘 가라고 배웅이라도 해주는 듯 작은 쪽문만 살짝 열어 준다. 어빙의 아람브라 이야기 속에 전설과 얽히어 수 없이 등장하던 문이다. 이 문을 통해서 나스르왕국의 비운의 왕 보압딜이 왕국을 넘겨주고 떠났고, 가톨릭왕 이사벨과 페르디난도가 1492년 1월 보무당당 입성하여 마침내 리콩키스타를 종결짓던 문이다.
문을 나서니 둘 다 엄청 피곤하다. 특히 아내는 무척 힘들어한다. 새벽부터 비행장을 오갔고 새 숙소를 찾아다니고 또 장시간 걷다 보니 거의 반 그로키 상태. 숙소로 늦은 시간에 돌아오니 오늘따라 일요일이라 근처의 슈퍼들이 다 일찍 문을 닫았다. 근 한 시간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중국인 가게에서 겨우 산 맥주 한 잔으로 오늘 하루의 피로를 푼다. 알함브라가 선물한 감동도 컸지만 여행의 피로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렇지! 우리도 이제 이팔청춘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