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1) - 안달루시아의 꽃

동방의 등불이었던 영광의 도시

by 남쪽나라

아침에 눈을 뜨니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비가 올 기세이다. 아내는 너무 피곤해해서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나 혼자 대성당까지 걷는데 안토니오가 가르쳐준 길로 걸으니 정말 딱 10분 정도 거리이다. 오늘 오후 3시 코로도바로 떠날 예정이어서 오전 중에 어제 보지 못한 대성당과 니콜라이성당 전망대로 향한다. 누에보 광장 근처에서 C1버스를 타니 알바이신지구의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전망대 입구에 내려준다.


니콜라이성당은 한창 보수 중이지만 전망대에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된다. 여기가 알함브라와 네바다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그런지 네바다산맥은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알함브라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잘 보인다. 전망대 바로 옆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모스크가 하나 있다. 미나렛도 없고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 모스크 같아 보이질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아름다운 무어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이 정원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의 전경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알바이신지구를 걸어 보고 싶지만 비도 부슬부슬 오고, 시간 여유도 없어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좁은 일방통행 길을 돌아 다시 대성당 앞에 내린다. 대성당에 들어가 보려니 사람들의 줄도 길고 입장료를 내야 한다. 어제 아름다운 알함브라를 취할 만큼 보았는데 우중충한 대성당 내부(이사벨여왕 부부 묘가 있다)를 굳이 돈 내고 볼 필요가 있을까?


점심을 푸짐하게 차려먹고 정말 오고 싶었던 도시 그라나다를 행복감을 가득 안고 떠난다.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까지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코르도바는 생각보다 넓은 도시 같다. 우리가 예약한 민박집은 역사지구 안에 있어 택시가 집 앞까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골목길들이 좁다.


20180424_090736.jpg?type=w773 코르도바 구시가의 골목

옅은 오렌지색은 코르도바의 색갈이다. 오렌지 색깔로 꾸며진 집들은 골목길의 정취를 한층 더 돋운다.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고 품위 있는 옛 도시의 아우라를 마구 풍긴다. 이런 골목길에 위치한 민박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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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_184246.jpg?type=w773 민박집 내부

작지만 이름 모르는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중정과 타일로 멋스럽게 꾸며진 벽들과 계단, 벽에 걸린 그림들과 여기저기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는 장식품들이 주인의 예사롭지 않은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작은 낙원에라도 들어온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이런 집에 꼭 한번 자보고 싶었는데 정말 숙소가 마음에 든다. 젊은 여주인 에스더는 영어도 곧잘 하고 아주 싹싹하다. 문간에 유모차가 있어 물었더니 갓난아기를 포함해 아이가 셋이란다. 어린아이 셋을 키우면서 이런 집을 가꾸고 민박 손님까지 맞이하다니 대단하다.


1524714960757.jpeg?type=w773 중정의 흔들의자

우리는 잠시 남의 집 중정 흔들의자에 앉아 꽃이 만발한 작은 낙원에서 오후의 따사한 햇살을 즐기며 향기로운 꽃냄새에 취하기도 하고, 새장의 앵무새 소리에 놀라워하며 엄청 행복해한다. 수십 년간 아파트에만 갇혀 살며 집안에서 꽃냄새 맡고 , 새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던가?


안달루시아의 꽃이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도시 코르도바, 한 때 인구 50만을 자랑하며 바그다드,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동방의 등불이었던 영광의 도시, 그들은 일찍 이곳에 대학과 도서관을 세우고 이슬람문화를 만개시켜 몽매한(?) 유럽으로 전파하는 통로의 구실을 했던 자부심을 아직도 안고 있다.


지금도 회자되는 미국의 명배우 오손 웰스가 그의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 말하는 유명한 명대사 '보르자 치하 30년 동안 이탈리아에선 전쟁과 살인, 테러와 유혈사태가 만연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배출했고,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스위스는 형제애를 자랑하고 500년 동안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렸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만들었지? - 뻐꾸기시계! '를 빗대어 스페인에 대해서 누군가 비슷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안달루시아(Andalucia)에서 무어인들은 관개와 잘된 오아시스, 쾌락의 정원, 찬란한 건축물, 훌륭한 도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기독교 스페인은 무엇을 만들었지? - 아무것도!'

그라나다가 쇠락해 가는 나스르왕가의 애절한 몸부림이자 분수에 맞지 않은 허영이라면, 코르도바는 스페인 이슬람 최융성기의 빛나는 기념물이다. 이슬람의 에너지와 힘, 그리고 관용을 보여주는 도시이다. 나는 사실 그라나다 못지않게 코르도바를 와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지금 편안하고 안락한 우리만의 작은 낙원 흔들의자에 앉아 내가 꿈꾸던 코르도바를 그려 본다. 과연 어떤 코로도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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