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3) - 코로도바의 또 다른 볼거리들

코르도바에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들

by 남쪽나라

1. 알카사르 - 기독교 왕들의 성채

아침 일찍 서둘러 짐을 싸서 문밖에 놓아두고 알카사르로 향한다. 사실 알카사르는 별로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민박집 안주인 에스더가 꼭 가봐야 한다고 강추하는 바람에 메디나 아사하라궁을 가기 전에 잠깐 들러보기로 한 것이다. 과달키비르 강변에 위치한 알카사르는 메스키타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이다. 우리가 첫 입장객인가? 메스키타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알카사르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메스키타엔 이른 아침인데도 긴 행열이 이어져 있던데...

정원에서 보는 사자탑과 성채

사자탑을 중심으로 알카사르의 오래된 건물들은 겉으론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지난 역사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로마시대 건물 위에 성채가 세워졌고 비시코트를 거쳐 이슬람시대에는 안달루스왕국의 요새와 칼리프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알카사르(Alcazar)는 성채라는 뜻이다. 알카사르는 스페엔 도처에 있는데 코르도바 알카사르의 정식 명칭은 기독교왕들의 성채(Alcazar de los Reyes Christianos). 1,236년 알폰소 11세에 의해 가톨릭왕국의 손으로 넘어온 이후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코르도바 알카사르(Alcazar)의 매력은 실은 건물보다는 건물이 품고 있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 있는 것 같다.


왕의 정원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자리한 왕의 정원은 기다란 연못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잘 손질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마치 정신들이 정원 뒤의 가톨릭 부부왕 조각을 향해 도열해 있는 모양새다.


가톨릭 부부왕을 알현하는 콜럼버스의 조각상

왕의 정원 끝에 위치한 콜럼버스가 이사벨, 페르난도 가톨릭 부부왕을 알현하는 조각상은 왜 그리 심심한가?

내가 여태 유럽에서 보아 온 수많은 조각상들 중 가장 멋대가리(?) 없는 포즈로 서 있다. 잘 가꾸어진 이 서양식 정원은 분명 아름답긴 한데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건물 안 귀퉁이에 곱게 숨겨진 자그마한 정원 하나가 더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무어식 정원

사방이 담으로 둘러 쌓인 채 은은한 대리석 수반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채워진 연못과 오렌지 나무가 심어진 중정은 무어식 정원 분위기이다. 우리는 이 자그마한 무어식 정원에서 잠시 알카사르의 정취에 빠져본다.


2. 라우만 3세의 아방궁 - 메디나 아사히라 궁

메디나 아사하라궁은 코르도바 북서쪽 불과 8킬로 지점에 있는데 버스로 무려 30여 분이나 걸린다. 산 밑의 박물관(Museo)에 겨우 도착하니 다시 유적지까지는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유럽인은 무료인데 우리에게는 표를 사 오란다. 뙤약볕 아래 표 사러 왔다 갔다 하느라고 짜증도 났지만 막상 아사하라 유적지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텅 비는 기분이다. 매스기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메디나 아사하라 궁터,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인 체 곳곳에 선연히 남아있는 왕궁터의 이중아치와 조각상들, 그리고 널따란 오렌지정원이 안달루스왕국의 옛 영화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장대하게 펼쳐 있다.


메시나 아사하라 궁터

안달루스왕국의 최전성기 시절인 서기 936년, 라흐만 3세가 그의 애첩 알 사하라(Al Zahra)를 위해 지었다는 이 대단한 궁전은 지은 지 100년도 안되어 동족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된다. 그 후 땅 속에 파묻힌 체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1,910년에야 비로소 발굴되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발굴작업은 계속되고 있단다.


말발굽 아치 건물들

카르타고에서 대리석과 벽옥을 실어 날러 일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25년간 지었다는 이 궁은 기둥만 자그마치 4,300개, 그 시대의 아방궁이었다. 라흐만 3세는 이 궁에서 수많은 노예와 하인, 6천 궁녀를 거느리고 그야말로 최고의 영화와 향략을 누렸다. 하지만 만년에는 누더기 옷과 허름한 지팡이로 사신을 맞이하기도 하고, 막상 죽을 때는 내 생애 통틀어 행복했던 날은 단 14일뿐이었다고 인생무상을 한탄했다고 한다. 권력과 부귀영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고금동서의 진리인가 보다.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품은 이 장대하고 화려한 궁터 밖 늘어진 고목 그늘아래서 대충 싸간 삶은 달걀 몇 개와 빵조각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같은 필부가 제왕보다 더 행복하지 않는가?


3. 코르도바 파티오(중정)의 진수 - 비아나 궁 정원

메디나 아사하라 궁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서둘러 비아나 궁(Palacio de Viana)으로 향한다. 비아나 궁을 찾는 이유는 순전히 여주인장 에스더의 추천 때문이다. 코르도바에 오기 전까지 비아나 궁에 대해서 들어 본 적조차 없다. 하지만 파티오를 좋아하는 우리로선 숙소 코 앞에 있는데 안가 볼 이유가 없지. 더구나 오늘 오후에는 입장료까지 무료라니.


비아나 궁 파티오 중 하나

택시를 타고 비아나 궁 앞에 내리니 입장 대기줄이 꼬리를 물고 있다. 우리만 공짜 좋아하는 게 아니네! 줄에 서서 철제 담안으로 잠시 훔쳐보는 중정의 꽃들이 4월의 태양아래 눈부시다. 16세기에 지어진 비아나궁은 비아나후작이 소유하고 있던 안달루시아식 전통 귀족저택이다. 하지만 이 궁의 명성은 건물 때문이 아니라 정원 때문이란다. 처음에는 하나이던 정원이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씩 둘씩 늘어나서 지금은 각각 다른 양식의 정원을 12개나 품고 있는 파티오 박물관이 되었단다.


비아나 궁의 화려한 정원

저택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깔끔히 잘 보존되어 있어 그 옛날 귀족들의 생황양식과 모습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12개의 아름다운 파티오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꽃향과 푸르름과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깔들을 무한으로 뿜어 되며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란 바로 이런 곳이구나! 과히 코르도바 파티오의 진수를 만끽하는 느낌이다. 이 스페인식 파티오들은 지금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중남미, 미국 등 과거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대부분의 국가들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정원형태의 하나가 되었다.


비아나 궁의 아랍식 정원

그런데 이 스페인식 파티오는 대체 언제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중남미와 스페인 여행 도중 파티오를 볼 때마다 늘 궁금했는데 오늘 이 비아나 궁 정원을 보면서 조금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식 파티오(중정)는 바로 이곳 코르도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이슬람의 아시아정복이 완료된 우마이야 왕조 시기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시라즈, 이스파한 등에 화려한 이슬람정원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슬람 정복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페르시아 땅에서 Paradise라고 불리는 페르시아정원을 보고 감탄하고 혹하여 그것을 본떠 정복지마다 이슬람식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 후 이슬람정원은 다마스쿠스에서 쫓겨 온 우마이야왕조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안달루시아로 옮겨져 에스파냐에서 만개된다. 바로 그 중심이 사막과는 전혀 다른 젖과 꿀이 흐르는 천혜의 땅 에스파냐 이슬람의 수도 코르도바인 것이다.


이제 스페인 여행에서 파티오는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자 빠드릴 수 없는 관심거리가 됐다. 그 파티오들의 출발점은 코르도바이고 그 진수는 바로 비아나궁의 파티오들이다. 우리는 오늘 오후 행복하게도 이 파라다이스를 거니는 즐거움을 잠시나마 한 껏 누린다. 혹시 내가 스페인에 다시 올 구실을 만든다면 그건 순전히 코르도바의 파티오를 보기 위함일 게다. 그리고 상 바실리오거리의 파티오축제가 열리는 5월 달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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