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1) - 가장 스페인스러운 도시

<스페인의 경이>라고 불리는 매력적인 도시

by 남쪽나라


세비야(Sevilla)는 바로크시대의 뉴욕이었다. 지금의 뉴욕과 같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코스모포리탄 도시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출항한 항구이자 1,519년에는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위해 출발한 역사적 항구였다. 세비야는 '세비야의 이발사', '휘가로의 결혼' 등 수많은 오페라의 무대가 되기도 한 자유 분방한 도시이기도 했다. 또한 아랍식, 무데하르식, 르네상스식 양식들이 혼재하여 가장 스페인스러움을 자랑하는 세비야는 <스페인의 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매력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제 오후 늦게 세비야에 도착하여 민박집 바깥은 나가보지도 못한 채 잠만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다. 민박집은 세비야 중심 광장에서 굉장히 가깝다. 민박집을 나서자 바로 코앞에 알카사르가 있고 광장 건너편으로는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이 히랄다탑을 끼고 아침 햇살을 받고 서 있지 않은가? 우리는 교회당보다는 레알 알카사르(Real Alcazar)를 먼저 찾는다.. 세비야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1세가 14세기에 지었다는 스페인 최고의 무데하르양식의 궁전과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image.png 레알 알카사르 입구의 사자문
세비야 대성당

사자의 문을 들어서니 꽤 넓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첫눈에 봐도 무데하르양식으로 지어진 알카사르궁임을 알겠다. 건물 입구 주변에 숨겨져 있는 듯한 자그마한 중정 안에는 부끄러운 듯 모서리에 자리한 꽃잎 모양의 작은 분수도 있고, 노란색 타일 바닥 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도 예스럽다. 알카사르궁은 비록 가톨릭왕이 지었지만 곳곳에 무데하르양식(스페인과 이슬람양식의 혼합)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건축공사 당시 동원된 장인들이 대부분 무어인들이기도 하지만 실은 이슬람이 물러간 그 시대에도 스페인은 유럽 대륙과 단절되어 무데하르양식이 보다 보편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가톨릭왕도 알함브라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무데하르식 왕궁을 짓고 싶은 욕심도 있지 않았을까?


레알 알카사르 궁 내부

궁 내부를 돌아보다 보면 알함브라와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알카사르를 <알함브라의 자매>라고 말하기도 하고, 더러는 <알함브라의 아류>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알카사르는 알함브라의 아류가 아니라 버금가는 아름다운 궁전 같다. 다만 알함브라를 이미 본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덜 할 뿐.



나중에 모로코까지 돌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석재대신 목재나 치장벽토를 사용하는 상감방식으로 화려한 장식을 하던 이러한 건축양식은 당시로는 이슬람이 정복한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반화된 건축양식이었다. 지금도 안달루시아지역 외에 마그레브지역, 이스파한 등 페르시아지역에서 이런 방식의 건축 양식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알람브라가 은은한 아이보리 톤의 단색 중심의 상감(象嵌)을 입혀 우아미를 더했다면, 알카사르는 비교적 다양한 색깔을 입혀 보다 칼라풀하다. 그중에서도 청색이 보다 두드러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칼라풀한 상감을 입힌 궁 내부

알카사르는 궁전 못지않게 화려한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알카사르의 정원은 정말 크고 대단하다. 정원 이곳저곳에 산재한 르네상스식 건물들은 카를로스 5세 때 지은 것인데 무데하르 양식에 르네상스까지 더해져 <스페인의 경이>가 만들어진 것인가?


르네상스 양식의 정원

정원 양식은 스페인 왕들의 취향에 맞추어 꾸며진 서양식 정원에 가깝다. 하지만 하늘을 찌르는 야자수 나무들과 오렌지 나무 정원의 향취는 이곳이 한 때 아랍인들이 수백 년간 지배하던 이슬람의 땅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고 이층 건물로 올라가 눈 아래로 정원을 조망해 보기도 한다. 왕들이나 거닐던 이 아름다운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하면서 몇 시간을 여유롭게 여기저기 거닐어본다.


우리 부부는 야행성 체질이 아니어서 여행 중에 여간해서는 밤에는 잘 다니지 않는 편이지만, 세비야에서만은 예외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대부분의 이곳 현지인들도 시에스타가 끝나는 해질 무렵부터 거리를 매우기 시작한다. 오늘이 무슨 종교기념일인지 성모상을 모신 긴 행렬이 밤늦게 대성당까지 행진하고 있다. 우리도 행렬을 따라가 보니 늦은 시간인데도 대성당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저녁은 행사관계로 저녁시간에 무료입장이란다. 오래된 이슬람 모스크를 허물고 100여 년에 걸쳐 지어진 세비야 대성당은 그 오랜 역사와 압도적 크기로 유럽의 3대 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제단

1.5톤의 황금으로 만든 화려한 제단이 사람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예배실이 무려 80개나 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밤이라서 그런지 약간은 어둡고 침침하지만 수백 개의 집채만 한 기둥들과 높고 화려한 아치식 천장이 사람을 압도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를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을 거라는 한결같은 나의 잘못된 믿음(?)때문인지 나의 감동은 성당의 크기와 명성에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콜럼버스의 관

무엇보다 이 성당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콜럼버스의 관이다. 관 속의 유해가 진짜 콜럼버스의 것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의 복장을 한 4명의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이처럼 둘러 맨 것은 죽어도 스페인 당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 때문이란다.


이사벨 여왕의 사망 이후 이 위대한(?) 발견자는 찬밥 신세가 되어 홀대받다가, 55세의 나이로 1,506년 외롭게 죽는다. '나의 시신을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그의 한 맺힌(?) 유언에 따라 몇십 년 후 그의 유해는 도미니카로 옮겨지고 다시 쿠바로 이장되었다가 1,898년 쿠바 독립 이후 비로소 스페인으로 돌아와 세비야에 안치되게 된다(지금도 도미니카는 진짜 유해는 도미니카에 있으며 세비야의 것은 가짜라고 주장), 실제 그가 위대한 탐험가였던지, 탐욕스러운 장사꾼이었던지 간에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으로 에스파냐에 엄청난 부와 영광을 안겨준 역사를 바꾼 인물임은 틀림없지 않은가? 위대한 스페인제국이 그를 홀대하여 시신조차 식민지 국가에 빼앗긴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를 늦게나마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1,402년 이슬람사원을 헐고 그 자리에 '보는 사람마다 정신 나갔다고 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자'라는 에스파냐인들의 '허세' 속에 무리하게 지어져 '미친 역사(役事)'라는 비판을 받는 화려한 대성당에 그의 관이 안치된다면 대성당의 명성과 홍보효과는 끝내 줄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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