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메라케시 2) - 마라케시의 심장 엘프나 광장

마라케시가 자랑하는 3대 건축물

by 남쪽나라


천년 고도(古都) 답게 마라케시의 메디나(medina)도 페스 못지않은 골목길 천국이다. 아침식사 후 메디나 골목길을 빠져나와 마라케시의 심장 제마 엘프나(Djemaa el Fna) 광장부터 찾는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인데, 아직 광장은 잠이 덜 깬 듯 한산하기 그지없다.


20180503_105656.jpg?type=w773 지미 엘프나 광장

코브라뱀도, 원숭이도, 약장수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설설 판을 벌리려는 참이다. 광장에 그 흔한 관광안내소 한 군데 없고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어 보인다. 광장은 아직 한산하지만 건너편의 널따란 공원의 벤치에는 아침부터 현지인들로 가득해 앉을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공원 벤치에는 노인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노인보다 청장년들이 오히려 더 많다. 공원의 벤치가 마치 그들이 출근하는 직장인 양 아무 말없이 엉덩이를 고정한 체 다들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20180503_110638.jpg?type=w773 광장 건너편의 공원 일대

벤치 한 곳에 중년의 서양 여인이 한 사람 보이길래 말을 걸었더니, 다행히도 아일랜드에서 온 사람이라 영어가 통한다. 이곳에 온 지 이틀 째라 해서 근처의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니, 고맙게도 지도까지 꺼내서 3군데를 추천해 준다. 엘 바디궁전, 사 디언 묘, 엘 바히아 궁전. 우리는 엘프나 광장 외에는 특별히 아는 곳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 일단 택시를 타기로 한다. 이번에는 어제 호텔 직원 이심이 가르쳐 준 택시 타는 요령을 시도해 본다. 먼저 행선지를 말하고 얼마냐고 물으면 외국인에게는 열에 아홉은 바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 엘 바디까지 10디럼 오케이?(el badi, Ashra(10), waakha(OK)?)' 했더니 두말없이 타란다. 이 동양 노친네들, 몇 마디 아랍어를 하는 걸 보니 바가지 씌우지는 못하겠네 하는 표정이다.


20180503_114834.jpg?type=w773 El Badi 궁전
20180503_114849.jpg?type=w773

먼저 찾아간 곳은 El Badi 궁전, 16세기에 어느 술탄이 전쟁 승리기념으로 지은 호화 궁전이라고 한다. 한 때 전설이 될 정도의 초호화궁전이었다지만, 지금은 황토색 골격만 남은 체 폐허가 되어 군데군데 복원작업 중이다.


20180503_120126.jpg


폭이 130미터에 이르는 중앙 정원에 기다랗게 파인 연못과 오렌지나무가 심어진 성큰가든(Sunken Garden)은 한 때 이 궁이 누리던 호화스러운 영화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20180503_120043.jpg?type=w773


옥상에 올라가니 메디나를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다. 메디나 가옥 옥상마다 설치된 무수한 접시 안테나만 없으면 메디나는 500년 전의 모습 그대로일 것만 같다. 지하에는 사진전시관도 있고, 건너편 건물에는 따로 돈을 내고 들어가는 작은 박물관도 있는데 나무로 된 높다란 술탄의 옥좌가 이색적이다. 올라가기 꽤 힘들어 보이는데, 술탄 노릇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뼈대만 남은 궁전이지만 항토색갈이 풍기는 아우라는 온화하고 따뜻하다. 혼잡스러운 메디나와는 달리 호젓하고 조용해서 황성 옛터를 걷는 기분이랄까? 자꾸 황성옛터 노래가 귀에서 뱅뱅 돈다.


20180503_130507.jpg?type=w773 Saadian 왕조의 무덤 입구

엘 바디를 나와 찾은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 디언(Saadian) 왕조의 무덤. 복잡한 시장바닥을 지나 물어서 찾아가는데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간신히 찾은 이 호화 무덤의 입구는 사람이 한 두 명 지나기도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문을 통과하여야 들어갈 수 있다. 일부러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의도적으로 숨긴 듯한 느낌이다.

20180503_131127.jpg?type=w773 Saadian 왕조의 영묘
Resized_20180503_131209_4415.jpeg?type=w773


16세기에 지어진 사 디언왕조의 무덤인 이곳은 입구가 봉쇄되어 수세기 동안 잊혀 있다가, 20세기에 발굴된 것이란다. 아침부터 영묘의 입구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다. 20분 정도를 기다려서 작은 영묘 안을 겨우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줄 선 사람이 하도 많아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나와야만 한다. 12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진 영묘에는 몇 개의 아름다운 대리석 관이 안치되어 있고, 대리석 기둥의 상부에는 화려한 plaster 세공장식이, 벽과 바닥에는 zellij라는 유명한 모로코 모자익 타일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왕의 무덤은 동서고금 다 비슷하구나. 죽어서도 호화궁실을 그대로 품고 가니.


Resized_20180503_131328_7394.jpeg?type=w773


20180503_125936.jpg?type=w773


궁실뿐이 아니구나. 아름다운 정원도 같이 있네. 하얀 장미와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5월의 태양아래 눈부시다. 왕들이 죽어서 가고자 하는 천국을 미리 보여주려는 것인가?


20180503_144333.jpg?type=w773 Bahia 궁전 입구
Resized_20180503_151555_9497.jpeg?type=w773 Bahia 궁전

사 디언 묘당을 나와 길가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Bahia 궁전. 궁전의 입구는 별로지만 막상 궁 안으로 들어가니 별세계이다. 마치 숨겨놓은 보석을 보는 것처럼.


Resized_20180503_145037_7774.jpeg?type=w773


그동안 보아왔던 무데하르 양식의 총집합이랄까? 이 궁전은 19세기말 어느 술탄의 고관이 애첩의 이름을 따서 지은 개인 궁전인데, 그동안의 이슬람과 모로코 스타일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품 중의 하나란다.

돈도 많네. 왕도 아닌 신하가 어떻게 이런 대단한 건물을 지었지?


20180503_145621.jpg?type=w773 Bahia 궁의 후정

19세기말 건물답게 넓은 후정은 깔끔한 타일바닥과 흰 기둥의 파란색 회랑으로 둘러싸여 현대적인 감각도 물씬 풍긴다.


20180503_150134.jpg?type=w773 아름다운 아랍식 정원
Resized_20180503_145910_1387.jpeg?type=w773


무엇보다 이 궁의 또 하나 볼거리는 역시 정원. 8000평방미터에 달하는 넓은 정원은 jellij 타일과 초록색 수목이 어울려 단아하면서도 품격 있다.


20180503_145915.jpg?type=w773


정원 거닐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큰 즐거움이다. 더구나 이처럼 아름다운 이슬람정원에서라면 낙원을 거니는 기분 아닐까? 여행객들은 감탄사와 함께 낙원을 거니는 행운을 만끽하고 있다. 우리는 운 좋게도 마라케시 관광의 진수 세 곳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었다. 페스에서는 많은 곳들이 종교시설이라 제대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마라케시에서는 주요 볼거리들에 쉽게 입장할 수 있어 여행객을 더욱 즐겁게 한다.


우리는 잠시 숙소로 돌아와 시에스타를 즐긴 후 6시 반쯤 다시 엘프나 광장을 찾는다. 오후의 광장은 소문대로 인산인해이다. 여기저기 구경꾼들이 몇 겹 씩 담을 치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하지만, 뜨겁고, 역동적이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는 마라케시의 중심광장 엘프나.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저 우리나라의 1,960~70년대 옛 시골장터 분위기 정도다. 약장사도, 땅꾼도, 재주 부리는 원숭이도, 야바위꾼들도 똑같이 다 있었지. 우리의 시골장터는 정겨웠지만 엘프나는 무척 사납다.


20180503_191335.jpg?type=w773 뱀을 들고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는 땅꾼

어느 땅꾼의 춤추는 코브라 뱀을 멀리서 보다가 살짝 사진을 찍는데, 언제 봤는지 젤라바를 입은 땅꾼이 한 손에 뱀을 든 체 무서운 눈으로 우리를 향해 온다. 우리는 순간 선 채로 얼어붙어 버린다.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며 돈을 내란다. 호주머니에 잡히는 돈을 다 건네주고 우리는 혼비백산 줄행낭을 쳐야만 했다.


야시장 거리음식도 도저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음식점 호객꾼들의 표정과 눈길도 왠지 사납게만 느껴질 뿐이다. 가장 아프리카적이라고 하는 마라케시의 매력이 이런 건가? 우리는 외식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와 낮에 시장바닥에서 사 온 아랍식 포크와 스푼으로 다행히 오늘 저녁은 문명인(?) 다운 식사를 한다.







이전 18화(모로코) 메라카시 - 적황색의 베르베르인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