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관광투어는 실망스럽지
카파도키아행 비행기가 카이세리(Kayseri) 공항에 가까워지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튀르키예인이 비행기 창 밖을 내다보며 우리한테 계속 '에르지스'인지 "에시스"인지 뭐라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통 못 알아듣겠다. 뭔가 해서 우리도 창밖을 내려다보니 거기 하얀 눈을 인 거대한 산들이 이어져 있다. 꽤나 크고 높은 산들이다. 옆자리 튀르키예인이 우리더러 보라고 한 산은 튀르키예인들이 자랑하는 에르지예스(Erciyes)화산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백두산 같이 에르지예스( Erciyes)는 튀르키예인들이 자랑하는 영산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의 자부심답게 에르지예스(Erciyes)대학도 있고 에르지예스(Erciyes)생수도 있더라.
사실 카파도키아는 바로 이 에르지예스산에서 기원한다. 수백만 년 전 해발 3,917m의 에르지우스화산의 대 폭발로 인근 수백 킬로미터 지역에 마그마를 뿌리며 생겨났다. 그것이 굳어져 만들어진 용암은 경도가 비교적 낮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깎기고 닳아져 기기묘묘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을 만들어 냈다. 카파도키아는 어떤 특정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형성된 250평방 킬로미터의 거대한 지역전체의 이름이란다. 카파도키아는 한 때 페르시아의 땅이었다. 그래서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아름다운 말이 있는 곳'이라나.
카이세리공항에 내려 숙소가 있는 괴레메까지 가는 풍경은 말 그대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모래도 산도 아닌 마치 달표면 같은 누런 색깔의 황량한 구릉들. 여기가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아나톨리아(동방이란 뜻) 중원임을 말해준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까운 다운타운을 둘러보는데 오후 3시 무렵의 다운타운은 적막강산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괴레메 마을 맞아? 그늘 밑에서 마작(?)인지 카드놀이인지를 하는 노인네 몇몇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우리가 잘 못 왔나? 그 많다는 관광객들은 다 어디 갔지? 마치 어느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아무도 없는 황량한 어느 시골 기차역에 내린 기분이다.
한 두 바뀌 주위를 둘러보다가 호텔직원 웰리가 추천해 주는 현지식당 <올드 카파도키아> 앞에 서성거리니, 아주 상냥해 보이는 한 젊은 식당여종업원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달리 별로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야외탁자에 앉아 어중간한 점심을 시킨다. 맛이야 그저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조금 전 여자종업원 아이쉐이에게 몇 마디 튀르키예어로 말을 걸었더니 반갑다고 난리다. Memnun oldum(nice to meet you)하더니 우리 손을 잡고 인사를 하며 자기도 아는 한국말이 있다면서 몇 마디를 제법 잘 구사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배웠다나! 우리는 금세 이름을 부르는 친구사이가 된다.
나의 여행수칙 1.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영어 안 통한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최소 일주일은 투자하여 그 나라의 기본 인사말과 숫자를 외워라. 한국 식당에서 영어 할 줄 아는 종업원 봤나? 인터넷에 공짜 사이트가 널리고 널려 있다. 그대가 구글 번역기를 돌리는 순간 인간미는 사라진다. 숫자 외기는 매우 유용하다. 택시나 물건을 흥정할 때 절대 속지 않는다. 게다가 현지어 몇 마디 하면 현지인들의 태도가 확 달라지며 때로는 덤으로 더 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젯밤 이스탄불 <KONYALI>라는 전통식당에서 처음으로 자그마한 고추절임(pickled pepper)을 먹어 봤는데 느끼한 외국음식을 먹을 때 같이 먹으니 정말 개운하고 좋았다. 물론 약간 맵기도 했지만 우리가 누군가? 고추 잘 먹는 한국 사람 아닌가? 아이쉐이에게 고추절임을 시켰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갖다 주긴 하는데 우리가 거의 한 접시를 다 비우자 우리 부부를 보고 기절초풍한다. 아니 이 매운 고추 한 접시를 다 먹다니!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이후 남은 우리 여행에서 이 고추절임은 필수품이자 밥 잘 먹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특히 이란여행 중에는 식당에 이 피클이 없는 경우도 많아 아예 병째로 사들고 다니기도 했다. 아마 이 고추절임이 없었다면 우리 체중이 몇 킬로는 빠졌으리라! 아! 고마운 고추여! 우리는 아이쉐이와의 즐거운 점심을 먹고 6시경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자고 누웠는데 그대로 다음날 아침까지 꿈나라로. 맥주 한 잔과 긴 이동시간이 보약이고 수면제인가 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 먼저 레드 투어를 할 것인가 그린투어를 할 것인가부터 결정해야 했다. 카파도키아는 하도 유명한 관광지이고 이리저리 주워들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우리 부부는 사실 가이드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별생각 없이 막연히 카파도키아엘 왔다. 그냥 둘이서 버스 타고 돌아다니면 되겠지 하고. 그런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다. 카파도키아는 엄청 넓은 지역인 데데다 관광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다 다니는 지역도 아니다. 리플릿을 살펴보니 투어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레드투어, 그린투어, 발룬 투어, 로즈벨리투어 등등 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 우리는 애초에 발룬 투어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결국 그린 투어와 레드투어 중 하나를 선택키로 하는데 그린투어는 걷는 코스가 많다기에 아내의 무릎 컨디션을 감안해서 레드 투어로 낙점한다.
아침을 먹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니 승합버스가 픽업 온다. 몇 군데 호텔을 도니 빈자리 없이 자리가 꽉 채워진다. 튀르키예인이 절반은 되는지, 가이드는 튀르키예어 먼저 다음에 영어로 말하는데 똑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니 약간 짜증 나기도.
맨 먼저 들린 곳은 러브 밸리. 허허벌판에 바람이 너무 불어 사진 찍기 조차 힘들 정도이다. 평지에서 푹 꺼진 계곡아래 이런 진기한 형상들이 있네. 왜 러브 밸리라고 하는지 알듯 말 듯. 다음 들른 곳은 괴레메 야외박물관. 어제 시내에 사람들이 왜 텅텅 비었는지를 이제야 알겠다. 관광객들은 아침 일찍부터 다 이런 곳으로 몰리고 노인들만 동네를 지키는 것이다.
오래전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까지 숨어 들어와 사암인 바위를 파고 집을 짓고 교회를 만들고 학교를 짓고 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실 이곳 카파도키아는 4세기까지는 로마의 영토였고, 11세기까지는 비잔틴의 땅이었다. 카파도키아가 단지 기기묘묘한 자연의 경이뿐이라면 한결 그 감격은 덜 할 것이다. 자연의 경이 위에 위대한 인간의 흔적이 덧 입혀졌기 때문에 더욱 볼만한 곳이 아닐까?
TV에서 말고 내가 처음 카파도키아의 모습을 접한 것은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영화 <메데아, Medea(1967년. 파졸리니 감독)>에서 이다. 다소 섬뜩한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가 출연한 유일무이한 영화이다. 그 숫한 오페라 출연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영상물(전곡실황) 하나도 남기지 않은 그녀가 영화에 출연하다니! 이탈리아의 천재기인 감독 파졸리니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는 한 때 이 영상물을 구하려고 아마존을 뒤지고 야단법석을 뜬 적이 있는데 결국 자막도 없이 유튜브에서 보고 말았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촬영지가 바로 카파도키아였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로케이션이라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기만 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그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야외박물관의 교회 건물에는 잘 보존된 비잔틴시대의 벽화들이 남아있어 그 당시의 로마시대 기독교박해를 피해 이곳까지 숨어 들어온 당시 사람들의 신앙심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지만 사실 그 감동은 기대만큼은 덜하다. 몇 해 전 이곳과 비슷한 이탈리아 남부의 암혈도시 마테라를 이미 보았기 때문인가?
가이드는 또다시 저 멀리 에르지예스(Erciyes)화산이 보이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버섯 바위 등을 구경시켜 준 후 어느 잘 차려진 식당(주로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듯한)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무표정한 채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 종업원들의 서브를 받으며 항아리 케밥을 비롯한 제법 그럴듯한 한상을 서로 마주 보며 침묵한 채 꾸역꾸역 먹은 것까지는 괜찮았다.(아! 어제 아이세이의 유쾌한 수다와 미소가 담긴 올드 카파도키아식당이여!) 하지만 점심을 먹고서부터는 슬슬 투어의 본색을 들어낸다.
무슨 카파도키아 전통 도자기 상점인지에 들러 도자기제작 쇼를 보여 준 후 도자기 매장을 한참 돌게 하더니
다음은 정부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카파도키아 전통 수제카펫공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20여 명의 관광객들에게 한 잔씩의 차를 서비스한 후 각종 카펫을 이리저리 펼쳐 보이며 아주 능숙하게 세일을 한다. 제품의 특징과 정부의 품질보증, 그 외에 세금까지 면세하며 도어 투 도어로 선박운임까지 포함된다며 무지하게 좋은 조건(?)들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조금 관심을 보이자 다른 독방으로 데려가더니 유창한 영어로 수십 가지의 카펫을 펼쳐 보이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괜찮은 것은 3000불에서 싼 것은 1500불이란다.(나중 이란에서는 이 보다 훨씬 더 좋은 카펫을 거의 반값에 팔더라) 번쩍 정신이 들어 일어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도망치듯이 올라타는데 판매직원의 표정이 묘하다. 벌레라도 씹은 기분처럼. 다 잡아 올린 대어(?)를 놓친 탓인가? 가이드 역시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한국에서 온 봉(?)을 놓친 아쉬움인가? 3천 불이면 코미션 10%만 해도 얼만가 하는.
겨우 그놈의 쇼핑매장을 빠져나오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와이너리로 데려간다. if you want 하면서. 우라질! 우리가 와인 시음하러 여기까지 온 줄 아나? 그런데 아무도 No! 하는 사람이 없더라. 돌아오는 길에 한 두 군데 더 사진 찍을 만한 장소를 들러기는 했지만 비싼 돈까지 내고 오후 시간을 대부분 쇼핑장소를 돌다가 호텔로 돌아오니 화가 난다.
그래서 오늘따라 한국음식 생각이 난다. 제법 쌀쌀한 밤공기를 마시며 찾은 한국식당에서 나는 여행 중 처음으로 라면을 시킨다. 매콤한 라면국물에 밥 한 공기뿐인데 오늘따라 와 이리 맛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