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 여행 - 재미없는 지하도시 데린쿠유

별다른 서사도 재미도 없는 지하도시 데린쿠유

by 남쪽나라

현지 관광투어에 실망한 우리는 오늘은 투어를 포기하고 데린쿠유(derinkuyu)만 다녀오기로 한다. <깊은 웅덩이>란 뜻의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가려면 일단 네브쉬르(Nevshir)까지 돌무쉬(합승) 버스로 간 후 다시 데린쿠유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숙소 직원의 말로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단다. 1960년대 초에야 우연히 발견된 이 지하도시는 천연동굴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사암을 파서 만든 인공 굴이다. 지금까지 지하 8층 정도만 발굴되었지만 지하 17~18층은 족히 된다고 한다.


mrSEEcZ_id4K7u6iY1QQ7LWzg9XunW0Y_3HK1fI-JtvM8rJX2U7u3lOkEXWYZqsfftLWlHNqzUe01GqWXseQNg.webp 데린구유 지도(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개미굴처럼 얽히고설킨 미로와 같은 지하도시이지만 수직 환풍구를 비롯해 사람이 살만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인구 2만을 수용할 정도라니 거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지하도시가 인근에 한 두 개가 아니고 발굴된 것만 40개라나! 믿거나 말거나.


이 지하도시의 역사는 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인들이 굴을 파서 혈거하다가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정주한 기록이 있고 이후 고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브쉬르까지 20여분 걸린다는 돌무쉬버스에 오르니 나이 지긋한 차장이 돌아다니며 요금을 받는다. 20리라짜리 지폐를 건네었더니 4리라를 거슬러 준다. 우리는 차비가 8리라(1인당)려니 당연히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갔는데, 올 때는 똑같은 버스에서 다른 차장이 1인당 3리라만 받고 영수증까지 때 주는 것 아닌가?


20170406_114626.jpg?type=w2 데린쿠유의 지상교회

어쩠든 네브쉬르에서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데린쿠유에 도착한다. 한산한 데린쿠유 입구에는 오래된 교회건물 하나가 서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낡고 관리가 제대로 안된 듯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한 때 이곳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데린쿠유 앞 주차장에는 한글이 적힌 대형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다. 이어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튀르키예에서 동양인이라곤 온통 중국인들만 보다가 한국 관광객을 보니 반갑다. 한국관광객들 마저 싹 빠져나가 버려 조용해진 데린쿠유 지하는 막상 들어서니 약간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가이드도 없는데 혹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영영 이곳에서 못 나오는 것 같은 불안감도.


temp_1494032165665.20125608.jpeg?type=w2 데린쿠유 내부
temp_1494032232214.-1077524378.jpeg?type=w2


입구를 지키는 직원에게 물었는데 이곳에선 화살 표시만 따라다니면 되어 가이드가 필요 없단다. 우리는 몇 차례 허리를 구부린 채 낮고 좁다란 통로를 따라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 더구나 무릎이 좋지 않은 아내가 가파른 계단 통로를 따라 허리를 구부린 체 지하 4~8층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것 같아 30여분 정도 사진 몇 장 찍고 어리바리 헤매다가 지상으로 나오고 만다. 우리에겐 이 지하도시가 별로 새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로마근교의 한 카타콤베를 아내와 함께 둘러본 적이 있다. 카타콤베는 공식적인 가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고 일체의 사진촬영도 허락되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직접 관할하고 있었는데,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를 우리는 혹시 길 잃을까 봐 가이드하시는 한국인 신부님의 설명을 들어며 긴장한 채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는 기독교 박해의 서사와 로마 시대의 역사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데린쿠유는 카타콤베보다도 훨씬 더 규모도 커고 잘 보존되어 있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인데도 공식적인 가이드도, 이렇다 할 설명도 없고 안내표시도 거의 없다. 각 자 알아서 다니라는 이야기인데 방문객의 안전에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보인다.


밖으로 나오니 해는 중천인데 텅 빈 광장은 적막강산이다. 파리만 날리는 기념품가게들의 점원들이 가끔 얼굴을 내밀 뿐. 우리는 버스를 타러 나오다가 석류주스를 기계로 직접 짜서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 잠시 다리도 쉴 겸 의자에 앉아 주스 한 잔을 시킨다. 그런데 난생처음 먹어 본 석류주스의 맛이 일품이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석류 알갱이가 씹히는 듯한 진득한 맛이 그 어떤 과일 맛과는 비교가 안된다.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는 관광지에서 히잡을 쓴 채 수줍어하는 가게 젊은 여주인에게 석류를 가리키며 튀르키예어로 뭐라 하는지 내 유창한(?) 튀르키예어로 물었더니 수줍기만 해 보이던 젊은 가게 주인이 '포모그라나시, 포모그라나시'하며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신나 하는 얼굴로 막 설명을 한다.


석류는 시다고 해서 평소 먹어본 적이 별로 없는 우리는 이후 여행 중 석류의 열열한 애호가가 된다. 어디서 든 보이기만 하면 달려가 마시곤 하는. 그리고 석류의 영어 이름이 'Pomegranate'라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된다.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라는 지명도 <석류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바로 이 석류의 이름인 포모그라나다에서 유래한단다. 알고 보니 석류는 이란이 원산지로 서구에 전해진 대표적인 이슬람과일 중 하나라나.


우리는 수줍은 듯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는 한 순박한 튀르키예여인의 미소를 뒤로 하고 돌무쉬버스를 타고 괴레뫼로 돌아온다. 잠시 숙소에서 쉬다가 올드 카파도키아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아이세이와 작별인사를 한다. 여행은 한두 번 만난 사람도 십년지기처럼 느껴지게 한다. 아이세이가 바로 그런 사람 아닌가? 비록 식당에서 손님과 종업원사이로 만났지만 우리는 그녀의 환한 미소와 유쾌한 수다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

이전 05화카파도키아 - 에르지예스 화산이 빚어낸 걸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