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는 초5이지만 평균보다 작은 키로 어린이와 주니어의 그 사이 어딘가에 키와 몸무게가 분포되어 있는 애매한 시기다. 옷도 직접 가서 입어보고 사야 하고, 상비약도 몸무게가 적지도 많지도 않아서 약국에서 파는 약들 조차 애매하다. (아이들이 알약만 선호하는 것도 한몫한다.) 이렇다 보니 손 아니지, 발이 바쁜 시기다. 이번 주말 오전에는 독감이 유행인 시기라 평소 편도가 약한 아이를 위해 병원을 가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진료를 봐주신 분이기에 진료 목적을 바로 캐치하고 빠르게 끝내주시는 덕에 독감 바이러스 소굴에서 최소한 시간을 보내고 처방받은 해열진통제를 받기 위해약국을 향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약을 설명해 주시던 약사님이 약을 주시다가 멈칫하셨다.
"어? 이상하다? 잠깐만요..."
하시더니 다시 처방전과 약을 살피신다.
"왜 그러세요?"
"아~ 동생약이 용량이 더 많게 되어서요. 병원에서 형이랑 동생을 착각한 것 같아요."
약사님은 옆에 계시던 직원분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걸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약사님, 그게 맞아요. 동생이 몸무게가 더 나가거든요"
그렇다. 우리 집은 1호보다 2호가 더 키와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 둘은 15개월 차이라 성장하는 내내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쌍둥이예요? 누가 형이야?" 소리를 외출할 때마다 수십 번씩 들으며 자랐지만 관심 있게 바라보면 1호가 항상 조금 더 컸다. 옷도 한 치수 정도는 차이가 났었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2호가 뒤돌면 "아~ 출출하다. 뭐 먹을 것 없어?"를 외치며 청소기처럼 집안 음식들을 다 쓸어 담더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12월인 현재, 2호는 1호보다 키도 '2cm' 크고 몸무게도 '5kg' 더 나간다. 당연히 형의 옷은 물론이고 새로 사 온 옷들도 2호가 먼저 입게 되어 1호는 요즘 매일 울상이다.
누가 형일까요?
속상해하는 1호를 보며 며칠 고민하던 우리 부부는 '키성장 클리닉'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았다. 이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 올 정도로 이름난 곳이라서 대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오픈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소문이 맞는지 굳게 닫힌 병원 현관문 앞은 이미 발 디딜 곳 없이 사람들이 가득했다. 20세기에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모두 모여 공연하는 '드림콘서트'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전날 밤부터 줄 서서 기다리던 그 광경을 21세기에 또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비좁은 복도에서 눈치싸움 하며 기다리다 병원의 문이 열리자마자 대기표를 뽑고, 접수를 하기까지 또 1시간이 흘렀다. 병원에는 추위와 신경전에 피로해질 걸 알았는지 병원에는 아이가 누워서 쉬거나 TV, 책 등을 볼 수 있는 공간, 간식등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공간 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별 걸 다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장 주사를 맞기 위한 검사를 하기 위해 장시간 링거를 꽂고 병원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그나마 여유 있었던 병원 로비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많은 아이가 단지 '키'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웠다.
우리는 다 달라서 소중한건데...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성장 부전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1. 뇌하수체 이상으로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경우, 엄마 자궁 내에서 성장이 지연된 경우(부당경량아), 또는 다른 동반된 질환(터너증후군*, 프라더-윌리증후군†, 누난증후군‡, 만성신부전증 등)으로 인해 성장이 지연된 경우 등 소아의 성장 부전(저신장증)을 가진 경우.
2. 특별한 성장 지연의 원인이 없고 출생 시 체중도 정상이며 성장호르몬 분비도 정상이지만 신장이 작은 경우(소아 특발성 저신장증)도 있다. 이때 해당 연령 및 성별의 평균 신장과 비교해 특정 기준보다 낮은 경우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어느 하나 빠지는 곳 없이 다들 티 없이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2번이 걱정이 되어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매년 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장 검사를 하는 아이도, 호르몬 주사를 맞는 아이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성장 장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립대병원에서 성장호르몬을 비급여로 처방받는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어 국립대병원이 벌어 들인 수익도 수십억 대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1호는 키와 몸무게 등 기본 검사를 마치고 손을 X-ray 사진을 찍어 뼈 사이의 간격을 보며 성장판에 관한 의사의 소견을 듣는 1차 진료를 했다. X-ray 사진과 아이의 비만도를 확인해서 피검사를 2차적으로 하는 아이도 있었고, 바로 성장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주사를 맞기 위한 검사를 하는 3차 검사는 이때 판가름이 난다. 다행히 1호는 뼈나이가 어려서 성장 가능성이 높아 주기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으로 진료를 마쳤는데도 7만 원을 내고 왔다.
병원을 다녀와서 기본 검사와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며 동네 엄마들과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의외로 성장클리닉을 다녀오거나 다니고 있는 지인들이 많았다. 다들 검사비가 그 정도면 싼 거라면서, 본인들의 검사 경험담을 꺼내어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부모세대보다 확실히 빨라진 성장 속도에 아이의 키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걱정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면서 x-ray 사진을 보는 의사들 마다 그 해석이 너무 다르다면서 한 군데만 가면 안 된다는 데에도 모두가 동의했다. 한 아이가 세 곳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모두 예상하는 성인이 되었을 때의 키가 달랐고, 한 곳은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고, 한 곳은 애매한 수치니 권장, 나머지는 잘 크고 있다며 패스를 외쳤단다. 마치 짠 듯이 "맞아, 그게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 같더라." 공통된 반응들을 보면서 나는 의아해지기 시작했고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뼈와 뼈 사이의 간격으로 최후의 키를 가늠할 수 있을까? 나는 다름 사람들 보다 팔과 손가락이 짧아 평균 5cm 정도 짧은 편인데 이런 내가 사진을 찍었으면 그 간격이 더 좁게 나와서 작은 키로 예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대중적으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정말 이 주사를 맞아서, 이 주사의 효과로 키카 컸다는 게 증명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 신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신문에는 아래와 같은 결론이 적혀있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학과 의사회장은 “사회적으로 키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며 “유전 질환이 없고 정상 범위에 해당되더라도 아이가 조금 작다 싶으면 보험 적용 없이도 많이 치료를 받게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관계자는 “키가 또래 중에서 하위 3%에 속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경우를 ‘특발성 저신장증’으로 정의하는데, 저신장증 질환이 없는 경우 성장호르몬 치료를 했을 때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라며 “국외 가이드라인에서도 허가 범위가 아닌 환자가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국립대병원은 성장호르몬제를 민간병원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병원은 그렇지 않았다”며 “성장호르몬제가 무분별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의심 많고 확신이 들지 않은 상태였기에, 누군가가 명백하게 효과에 대해 말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간을 돌려 1호에게 의사가 주사를 권했더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네"라고 대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의 몸에 유전자를 재 조합하여 만든 약물을 주기적으로 계속 넣는 것은 조심스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