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하루를 살아본 후기

방학 10일 차

by 선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드디어 왔다. 나의 휴가. 12월이 시작하면서부터 하루하루 지나감에 행복해하며 오늘이 빨리 오기만을 빌었다. 일 년에 며칠 없는 평일의 쉼을 혼자 지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갚을 수 있는 기회이니 기왕 지내야 하는 거 기분 좋게 보내자고 다짐한다. 어딜 갈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방학하자마자 가족행사로 바쁘기도 했고, 아이들도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특별하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기야.
뭐 해달라고 하기 없기!!
같이 하자고 하기 없기!!


늦잠을 자고 일어나 (그래봤자 아침 8시;;) 아침을 먹고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드라마 정주행을 하며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있고 싶었지만, 엄마로서 13년째 유지해 온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부르지 않고, 각자의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조금 슬펐지만 어찌하리오. 내가 선택한 엄마표고, 내가 유지해 온 집공부인 것을. 나 하루 편하자고 공든 탑을 무너뜨리긴 싫으니 이쯤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한 겨울에도 반팔입는 열혈남

오전에는 컴퓨터수업이 있어 같이 앉아 컴퓨터로 글을 쓰고, 1호가 수학공부를 할 때엔 옆에서 2호의 수학을 봐줬다. 점심을 하려던 것을 멈추고 같이 나가서 사 먹고, 독서를 시켜놓고 집안일을 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적어도 집안일은 하지 말자. 오늘은 엄연히 나의 휴가니까.




그렇게 하나 둘 아이들을 따라 지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아이의 일상을 체험하는 하루가 되었다. 하려는 의도가 없어서였을까? 아직 오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지친다. 무언가를 하고 나면 다음엔 뭐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고, 예상치 않게 생기는 변수에 일정이 꼬이면 할 일이 쌓이며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몸도 머리도 정말 바쁘다 보니 자연스레 편히 쉴 수 있는 시간 공간이 절실해졌다.

아, 아이들은 매일 이런 마음이었구나...


"엄마도 같이 하면 안 돼?"

"아. 주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동안 1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투정이 아니었다.

"엄마, 이번 주말에 아무것도 없지? 일요일엔 나도 좀 쉬자."

2호의 이야기가 아빠가 하는 말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 아이 뒤를 따라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옛날 '서태지 비밀결혼'이란 기사를 봤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준비했던 주말은 아이를 위해 계획하고 움직이는 엄마의 선물이었는데 그건 내 오해였는지도 모른다. 너희를 위해 계획한 여행이, 네가 좋아해서 준비했던 일정이 정말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오히려 부모를 따라가며 함께 하고 즐기는 행동에 더 큰 가치를 두어 같이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을 첫째가 중학을 앞둔 이제야 생각했다니!! 어리석고 부족하기만 한 엄마라서 미안하기만 하다. 이해받을 수 있다면 석고대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표를 한답시고 '자기주도학습'이란 멋진 단어로 포장하고는 학원보다 더 숨쉴틈 없이 엄마의 계획안에 아이를 가두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뇌를 깨우고 학교를 다녀와야 했고, 학교를 다녀와서는 간식을 먹으며 독서를 해야 했다. 배움 노트를 쓰고, 수학을 공부하면 영어영상을 틀어 주었다. 독서가, 영어 TV시청이 휴식이라 지칭하며 나름 쿨하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려는 나의 가르침이 철갑으로 변해 내 방식으로 아이의 다리에 달라붙어 철제 족갑으로 변한 모양이다.

나에게 독서가 휴식이니, 너희의 휴식도 독서가 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엄마표라 함께 떠들며 공감하고 응원할 동료가 없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혼자서 하는 일조차도 나는 동기를 찾아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서 이기적이게도 아이들에게는 이게 가장 효율적이라며 '혼자서', '알아서' 해 주길 바랬다.

"넌 학원을 안 다니니까."

"다른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으니까."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 쉬워서 금방 끝날 거야."

라며 끊임없이, 쉴 틈 없이 주어지는 할 일들이 대형학원 탑반 보다 더 숨이 막히고 힘이 들었을 테지. 탑반 아이들은 적어도 집이 쉬는 공간일 테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속상함과 미안함도 배의 크기를 자랑하던 아빠 개구리처럼 점점 커지다 펑! 터졌다.




"1호야, 너 매일 이렇게 지냈어?"

"이렇게가 뭔데?"

"하루 종일 너무 바쁜데?"

"응. 원래 이래. 그래도 오늘은 잘하면 1시간 놀 수 있을 것 같아. EBS강의 안 듣는 날이니까"

".....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오늘 1호 따라 지내보니 너무 힘든 일정이네.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 다시 계획해 보자."

"싫어. 어차피 할 일은 안 줄잖아. 지금처럼 안 하면 주말에도 해야 하잖아. 주말엔 아무것도 하기 싫단 말이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이게 아닌 건 확실한가? 나름대로 필요한 것만 한다고 열심히 배우고, 계획하고, 끌고 나간 건데. 대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며, 그들은 이 힘듦은 즐기는 건지 아니면 버티는 건지 궁금해졌다.


'엄마표'를 해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고 반영하지 않았음을,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단적으로 해 온 것 같아 그 점이 크게 걸릴 뿐이다. 공부, 독서, 휴식, 경험, 놀이 모두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오늘따라 유독 밝은 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