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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Dec 04. 2023

호빵이 새끼를 낳았다.

행복한 우리 집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호빵 2줄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이들 아침으로 먹이려 호빵을 사둔 기억이 있긴 한데, 2줄이나 사놨던가? 팥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아 호빵은 쟁여두지 않고, 먹고 싶을 때마다 한 줄씩 사 먹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려려니 하고는 찜기를 꺼내려 베란다로 나간다. 어라? 그곳에도 호빵 1줄이 '나 여기 있어'라며 찜기 위에서 준비하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꿈인가? 찜기에 호빵을 올려 찌는 동안, 이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2줄을 사놨다 치자. 그럼 저 남은 하나는 뭐지?' 정신없이 장을 보고, 세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3줄이나 사 올 리 없는 호빵을 바라보고 있는데,  1호가 거실로 눈 비비며 등장하더니  식탁 위 호빵을 보고 한 마디 한다.

넌, 누구니?

"어? 호빵이 새끼 낳았다!"

아. 아이의 현력에 또 내가 졌다.  모든지 2배로 만들어 주는 '신기한 독'까지는 생각해 봤는데  '출산'까지는 미쳐 생각을 못했다. 아이의 상상력에 엄지 척을 내밀며 감탄한다.

"1호야, 엄마가 어제 호빵 1줄 산 게 맞지?"

"응. 오늘 아침 따뜻하게 호빵 먹자고 엄마가 그랬잖아."

아이와 호빵의 출처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때  즈음 안방에서 신나게 코 골다 잠꼬대하는 남편의 소리가 들린다.

"웅얼웅얼...ㅂㅂ스여바...머그...웅얼웅얼..응? 알았지? 크커어억, 드르렁~"

"아빠가 사 왔나 보네. 이 호빵"

"2개나? 이거 유통기한 짧아서 매번 하나씩만 사는 거 아빠도 알 텐데?"

일단 다 쪄진 호빵과 우유를 먹이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나서 출근하려 일어난 남편에게 호빵의 출처에 대해 물었다.

"아~ 그거? 편의점에 커피 사러 갔는데 1+1으로 팔길래 사 왔지. 아침으로 먹고 가라고 아까 소리쳤는데 못 들었어?"

그렇게 엉뚱한 데에서만 마음이 통하는 우리 부부그날도, 그 다음 날도 호빵을 먹었다.




국민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이렇게 또 나이인증을 한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이야기를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게 생각난다.<짧아진 바지> 글이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옛날 어느 마을에 친구 사이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딸만 셋을 두고 있었다. 부자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식구들끼리 늘상 다투는 경우가 많아서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반면 가난한 친구의 집은 가난해도 항상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마을 사람들도 부자의 집안보다도 그의 친구의 집안을 더 으뜸으로 쳤다. 그래서 그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부자는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친구의 바지를 보니 짧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궁금해진 부자는 바지가 왜 이러냐면서 이런 바지를 입고도 왜 그렇게 즐겁냐고 질문했고, 친구는 전날 시장에서 바지를 하나 구매했는데 길이가 너무 길어서 식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한 뼘 정도를 줄여야겠다고 하자 전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아내는 물론 딸 셋이 모두 한 뼘씩 줄여놔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극받은 부자도 본인 가족을 실험하기 위해 귀갓길에 일부러 바지를 사서는 바지가 너무 길어서 입을 수가 없으니 한 뼘만 줄여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바지가 그대로인 것이었다. 부자는 왜 바지를 안 줄였냐고 따지자 네 명의 여자들은 서로 책임전가를 하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이 글을 읽고 정이 평화로워야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셨지만, 그 당시 나는 다른 생각으로 그 글을 받아들였다.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생긴 거라며 "바짓단 줄여놓았어" 이 한 마 했으면 이런 불상사는 안 생겼을 텐데 또 바지를 하나 사야 하게 되었다며 친구와 가난한 가족을 굳이 비판하며 키득거렸던 그때가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라서 웃고 싶었던 개그 본능이었는지 수업의 지루함을 이기려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동화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행복한 가정이 부러워서였지 싶다.




언젠가 비혼주의인 아들이 (12살이다.) "엄마, 아빠를 보면 결혼이라는 거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아이에게 다가갔을까. 아이가 바라본 우리'가정'은 어떤 모습, 어떤 느낌일까 물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의 대답에 미안함, 죄책감이 들 것 같았고, 책임감과 의무감이 한층 두껍게 자리 잡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어렸을 적 나는, '그 당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가부장적이지만 술 먹고 집에 오는 날에는 센베 과자며, 치킨이며 양손 가득 사랑을 담아 오던 아빠와 묵묵히 희생을 도맡아 내조하다 명절에 마시는 술 한 잔에 그간 켜켜이 쌓아 두었던 화를 쏟아내는 엄마. 그 사이에서 맏딸로서 양보와 눈치로 살아온 나와, 부모의 걱정이자 미래인 남동생. 남의 집 부럽지 않게 집 안에서는 부부싸움, 부녀싸움, 부자싸움, 남매싸움 할 수 있는 조별리그는 다 해보았고,  집 밖에서는 세상 평화로운 가족 코스프레도 솔찬히 해 보았다. 그런 보통의 삶에서 나는 어떤 가정을 꿈꾸며 결혼을 했던가. 뽀얗고 동그란 호빵을 바라보며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다.

 20대. 결혼을 한창 꿈꾸던 그 시절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는 늘' 남편 이상형'과 '내가 꾸려나갈 우리 가족'이었다. 다들 처음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불만들을 토해내면 "난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난 아빠 같은 사람 안 만날 거야."를 고정멘트 삼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그 상상은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며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부모의 모습을 기준 삼아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진화되었고, 현실에서 그동안 꿈꿔온 결혼생활을 넣으려 신혼땐 많이도 싸워댔다.

 나는 사업하는 아빠로 인해 매 년, 매 시즌, 롤러코스터를 타는 집안 형편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미래 남편의 직업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했다. (많이 벌지 못한다는 말을 뺐어야 했다. ) 매 번 일을 핑계로 휴일에도, 방학에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컸기에 쉬는 날이 정해진 남편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 좋을 것이라는 부푼 꿈도 전제로 깔려 있었다. 매 번 가정이 화목할 수는 없기에 싸우더라도 막장 드라마처럼 김치 싸대기 날리고, 비싼 도자기 던지는 그런 싸움 말고 좀 더 교양 있게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말과 글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부부가 되겠노라고 맥주잔을 부딪히며 큰소리 뻥뻥 쳤었던 그 때를 생각하니 이불킥이 절로 나온다. 내가 그리는 화목한 가정은, 가족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면서 책이나 뉴스, 일상 대화를 나누다가 이따금씩 여행을 자주 다니며 허울 없이 구성원 모두가 친구 같은 그런 모습이였다.

 지금 이 글을 읽고 헛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그 마음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공감한다. 쓰는 나조차도 지난날의 나를 비웃고 있으니 실컷 비웃어도 된다. 현실은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지만 그 걸로 모자라서 엄마인 나도 돈을 벌고 있고,  휴일에 남편이 집에 있다고 매 번 놀러 나가지는 않는다. 때리고, 던지며 싸우지는 않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아이가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내 예상에 없던 아이와 싸우는 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뉴스는 안 본 지 오래되었고, 매일 오는 신문은 유용하게 살림살이로 쓰이고 있으며, 하늘이 나에게 건네준 연년생 형제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우 수직적인 가정의 형태로 살고 있다. 이런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 싸는 이 아이가 "꾸려볼 만한 가정"으로 생각했다니 감사한 일이다. 대체 어떤 점이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그게 무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이 머릿속 우리 가족은 모두 웃으며 함께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아이의 그림을 상상하며 1호의 웃는 얼굴을 떠올려 본다. 태어나자마자 '해보' 소리를 들으며 자란 1호는 엄마와 눈만 맞아도, 아빠의 자는 모습만 봐도 꺄르르 웃는다. (대체 뭐가 웃긴지 매 번 모르겠다.) 그리곤 우리 네 명이 모두 함께 할 때마다 "다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를 남발하는 감수성도 풍부하고 표현도 잘하는 아이다. 그 때마다 누가 보면 온 가족이 모이는 게 오랜만인 줄 알 거라며, 이산가족이냐고 웃어넘겼는데,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에게 백수로 오해받을 정도로 남편도 나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자주, 오래 집에 있다.) 어쩌면 아이는 어른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퇴근길에 들린 편의점에서 가족의 아침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이, 아들의 표현력에 지지 않겠다며 보란듯이 읽고 쓰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건지, 12살 초딩은 다 느끼고는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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