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리고 연애
노력하고 있잖아, 그걸로 충분해.
사실 다 비밀이었다. 나만 알려고 했다. 내가 마음이 힘들다는 것.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는 것. 숨이 막혀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는 것까지.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중증의 "우울, 불안, 공황"이라는 병명을 얻고 약을 먹기 시작한 것도 다 숨겼다. 특히 나의 가족에게.
엄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은 알면 절대 안 되는 나만의 비밀로 평생 간직할 작정이다. 분명 아이들은 불안해할 것이고, 엄마와 남편은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할 것이 뻔하니까. 내가 약을 먹으러 병원에 간 이유는 내가 '살려고'가 아니다. 살아지는 동안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나서도 가족은 몰라야 한다.
병원을 다닌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아직도 나에게 맞는 약을 찾지 못해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마다 진료를 받고 약을 바꾸고 있다.
첫 번째 약은 구토증상이 너무 심했다. 일어나자마자, 식사를 하고 나서, 양치를 하다가도.. 심지어 기침을 하다가도 화장실로 달려갔다. 평소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서 종종 구토를 했었기에 아이들은 화장실에 있는 엄마를 걱정은 하지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남편 또한 며칠은 그려려니 하고 신경도 안 쓰더니 이번엔 좀 길어지는 듯 싶었는지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하자며 나를 끌고 내과를 향했다. 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위내시경을 하고 위염약을 받아왔다.
두 번째 약은 두통이 너무 심했다. 하루 종일 내 머리를 벨트로 묶어 한 칸씩 줄여가며 죄어오는 느낌이랄까.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다 보니 위가 모든 음식을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밥도 못 먹겠고, 속은 계속 쓰리고 메슥거렸다. 기운도 없어지면서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약은 계속 하루종일 졸렸다. 하루에 6시간 깨어있었는데, 그마저도 멍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하루종일 자고만 싶어서 틈만 나면 몸을 뉘었다. 며칠 밤을 새운 사람처럼 눕기만 하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약을 먹은 게 오늘 아침인지 어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 몇 주가 지속되자 가족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덩치에 안 맞게 체력도 약하고, 약을 달고 사는 여자라 어지간하게 아파하는 행동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경상도 남자까지 눈치를 챘다. 남편은 평소와 다른 모습에 걱정은 하는 듯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쌓인 설거지를 말없이 해놓고, 건조기에 있는 빨래들을 개어놓고 출근은 하는 것이 그만의 위로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고, 차라리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더 감사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프다며 외할머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이들도 걱정이 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SOS를 외친 것이다. 친정 엄마는 그날부터 죽이며, 누룽지며 2~3일에 한 번씩 내가 먹을 수 있는 끼니를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나는 가족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었다.
나에게 맞는 약은 대체 무엇일까? 사건은 네 번째 약에서 터졌다. 분홍색 물방울 모양의 예쁜 알약 하나가 나를 놀이공원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우울증 약은 자기 전에 먹는데,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책장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내 몸이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였다. 하나였던 화장실 조명이 여러 개로 분신술을 선보이더니 불빛을 현란하게 흔들며 나이트를 방불케 했다. 그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쿵! 하고 결국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변기와 세면대를 붙잡으려다 놓치는 바람에 소리가 크게 나서 남편이 자다가 깜짝 놀라 뛰어나온 것이다. 한 번 잠들면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사람인데, 진짜 소리가 크긴 컸나 보다. 내가 순간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빠, 너무 어지러워. 나 좀 일어나게 잡아줘."
그 순간 남편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 불이 켜져 있는 화장실에 가보니 마누라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허공에 손을 내 젓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도와 달라고 손을 뻗는데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애먼 곳에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순간 너무 무서웠다고 나중에서야 말해주어 그때 상황을 짐작케 했다.
남편은 나의 몸을 일으켜 세워 거실 소파에 나를 앉혔다. 그리곤 주방에 가서 마실 물을 떠 오는 새에 나는 그대로 누워 또 잠이 들었다. 잠을 자면서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나는 멀쩡하게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또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그런 나를 계속 쫓아다닐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하루종일 내 그림자 하기로 한 거야?"
"어. 그런데 또 자려고?"
"응. 2시간만 잘게. 시간 되면 좀 깨워줘."
"....."
남편이 말없이 내 옆에 누워 나를 꼬옥 안는다. 왜 그러냐며 불편하다고 팔을 뿌리치지만 이 남자가 아침부터 다리와 팔에 힘을 꽉 주고 나를 놓지 않는다.
"나 잘 꺼라니까? 하지 마, 아침 댓바람부터 왜 이래~"
라고 거부 하려는데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답답하다. 공황. 그 녀석이 또 찾아오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비키라며 밀어버리고는 비상약을 먹으러 거실로 뛰어 나갔다. 약을 빠르게 삼키고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다 열고서 벤치에 앉아 숨을 크게, 천천히 쉬기 시작했다. 나만의 공황 탈출법이다.
숨 쉬는 것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했던 마음도 눈 녹듯 사르르 풀린다. 어느새 남편은 내 옆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챈 내가 그를 바라보자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걱정하는 마음이 그의 눈과 손을 통해 느껴진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아니, 내 비밀은 애초부터 숨길 수 없는 거였다.
나... 사실.. 고백할 게 있어.
"먼저 말해 두겠는데. 이건 오빠 때문이 절대 아니야. 그리고 오빠가 자책하고 힘들어할까 봐 말 안 한 거야."
"....."
남편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울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다 꺼냈다. 나의 마음속에 있었던 짐들을 다 꺼내어 보여주며 내 몸 속의 수분을 눈물과 콧물로 모두 끄집어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울고 있는 나를 토닥이기만 했다.
"미안해. 나까지 짐이 되어서..."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냐."
남편은 그제야 마음속으로 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몰라줘서 미안하지. 스스로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으니까 됐어. 그게 가장 힘들고 중요한 거야.
약 먹고 있으니 금방 괜찮아지겠지.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 거야?"
그가 내 노력을 인정해 주며 진심으로 건네는 말에 무언가 가슴 속에 있던 큰 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왕 고백한 거 이 사람에게 아이처럼 기대어 편안해지고 싶어졌다.
개그맨 김재우가 최근 분리불안을 앓고 있다며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나와 고백을 하는 것을 보았다. "결혼 생활이 10년 이상 지나면서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짜 '아내 바보'가 된 것 같다"라고 털어놓는 모습에 무슨 연유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공감이 되었다. 오은영 박사는 실제로 분리불안은 주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인들도 분리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김재우에 행동에 대한 설명이 나까지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었다.
그날.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던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남편 바보'가 되었다. 수시로 남편에게 안아달라고 조르고, 밖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며 귀가할 때까지 기다렸다. 남편은 이런 내가 더 좋다며 흔쾌히 안아주고, 먼저 연락을 해 주었다. 연애하듯 전화와 메시지로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만나면 반가워하며 달려가 안기는 요즈음이 나도 행복하다.
나는 사랑으로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한다. -레프 톨스토이
Everything that I understand, I understand only because I love. -Leo Tolstoy
연애하던 시절,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