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모먼트

by 선이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행복이라는 건 늘 가까이 있다고 했다. 가족이 모두 평안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니 매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그런 말들이 그동안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매번 듣는 비슷한 말들이 부모님의 잔소리나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과 같은 것으로 필터링되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곤 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자가 나이 마흔을 일컬어 불혹(不惑)이라고 하며, 마흔이 되면 주변에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내 감정을 살펴보는 일이 잦아진다. 100세 시대에서 마흔이 인생의 정점일까. 최근 서점에서 마흔을 겨냥한 책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공자의 말을 시작으로 주변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를 살펴보며 미래를 준비하라 말한다. 나에 대한 성찰이 익숙하진 않지만, '순간의 행복'을 찾아보는 건 해 볼만했다. 그것이 내가 함께하는 가족뿐 아니라 가게의 이름 모를 점원이나 때가 되어 핀 꽃에게서도 느끼고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행복 찾기는 나의 일상이자 취미가 되었다.


나의 행복 일상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보면 마흔은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시기라고 나온다. 고통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으로 많은 사람이 출세, 부, 명예를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여긴다 했다. 이런 행복은 무게 중심이 아닌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밖에 있기에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며 더 괴로워질 것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인데, 이것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 어렵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만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괴로울 테지만, 이것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 부분이 우연하게도 요즘 내가 생각하고 행하며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과 일치해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나의 아이들 나이인 10대에는 친구들의 말과 눈빛 그리고 행동에 내 세상이 움직였고, 20대엔 직장 상사와 동료 그리고 나의 사회적 위치에 연연했다. 30대는 그동안 인정받길 원하고, 많은 걸 갖고자 했던 모든 것들과 함께 나 자신까지 놓아버린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무관심 해지고 무덤덤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만족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무료했고, 우울했으며, 의욕이 없었다.

그러다 마흔이 되었고, 아이들이 자라서 조금씩 내 시간이 생겼다. 누워만 있던 자유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며, 자연스레 나를 살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인생을 잡아갈 에너지와 이정표를 얻기 위해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작은 행복들을 모아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당당함과 품격을 가진 우아한 중년의 삶을 살고자 함이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에 이은경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선생님도 불혹의 여정을 함께 하고 계신다는 동질감에 반가이 하트를 눌렀다. 때아닌 폭설로 주차된 차를 어찌할 바 모르고 당황해하시는 선생님께 슈퍼맨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쓱쓱 치워주시고는 인사도 안 받으시고 가시던 경비아저씨. 그의 쿨함에 행복을 느끼시고는 많은 이들과 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글과 사진을 올리셨다. 그 마음은 팔로잉하는 많은 이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어 한 번 더 친절하고 더 웃는 하루가 되었다. (이 사실은 선생님의 댓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포함.) 행복이란 이렇게 소소하지만 강력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이은경 선생님의 피드 사진 @lee.eun.kyung.1221

눈만 마주치면 싸워대는 형제들과 밤샘 근무로 예민해진 남편을 데리고 신발과 옷을 사고, 햄버거도 함께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 싸우고 우는 아이들을 각각 불러 마음을 나누었던 순간이 좋았고, 힘들고 지친 남편이 주말이기에 오전이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려 애를 쓰는 모습에 고마웠다. 어느새 찾아온 새 학기를 맞아 준비된 파스텔톤의 옷과 가방들을 살피며 파스텔톤의 다채로운 색들과 귀여운 캐릭터에 미소 지었던 내 모습도 발견했다. 거기다 오후 늦자락에 읽은 '메리골드 마음사진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예쁜 말들로 행복을 그린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몽글몽글해진 마음이 참으로 좋았다. 이 순간의 행복들을 알아볼 수 있고, 담을 수 있기에 오늘의 나는 썩 괜찮은 오늘을 살았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행복은 모래알같이 작은 크기겠지만, 유난히도 반짝이는 알갱이라는 걸 안다. 매일 이렇게 행복을 찾다 보면, 언젠간 이 모래알들이 색색이 모여 나의 인생 모자이크 그림이 되리라. 그 그림을 보는 이들이 저녁 바람을 타고 기분 좋은 라벤더 향을 느끼듯 마음을 감싸 안아주길 꿈꿔본다.


여름에 가을을 그리지 말고 가을에 겨울을 그리지 말아요. 마지막 부탁입니다. 부디 오늘을 사세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세요. 먼 미래의 거창한 행복을 좇느라 오늘의 사소한 기쁨을 놓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요. 나 자신을 위해서. 삶은 여행입니다. 여행 온 듯 매일을 살길 바라요.
- 메리골드 마음사진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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