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맡는 변태

by 선이

'시골경찰 리턴즈 2' 최종회에서 김용만은 “사실 제가 냄새를 못 맡는다”며 몇 년 전 사고로 머리를 부딪힌 뒤 후각을 잃었다는 고백을 전한다. 시각 장애 어르신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자신의 숨겨뒀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어르신과 만남 후 김용만은 “나도 맡고 싶은 향이 있다. 무엇보다 그리운 건 와이프를 안았을 때의 향”이라는 장면엔 감정이 메마른 지 오래되었음에도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강한 향이 주는 자극이 싫어서 무색무취가 좋았던 때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사람에게 나는 채취가 참 좋아졌다. 신생아에게서만 나는 특유의 향이 그 시작점인데, 아기들의 베이비파우더 향과는 다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신생아를 만난 선배 엄마들은 이 향이 그립다며 신생아를 안고 킁킁거리기 일쑤다. 맡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이 향은 잉여양수와 태지가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엄마 뱃속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젖비린내가 섞인 아기의 향들이 그리운 추억의 향이라면, 요즘 내가 빠진 향은 가족들의 채취이다. 향 연구가 '한스 하트'가 스위스 대학에서 반려자 선택 시 코의 영향력을 실험한 사례를 보면, 사람마다 고유한 체취가 있는데, 여성은 자신과 매우 상이한 체취의 남성을 선호한다고 나타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땀냄새 어린 남편의 냄새가 좋다. 스킨, 로션조차 귀찮아서 잘 바르지 않아 다른 향과 섞이지 않은 그만이 가진 냄새. 약간은 퀴퀴한 그 냄새가 20년 가까이 함께 지낸 익숙함 때문인지 이제는 편안함을 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남편이 없을 때는 일부러 남편의 베개를 베곤 하는데 그런 나를 보면 남편은 딱 한마디 한다.

"변태냐?"

다른 것도 아니고 당신이 좋아서 본인의 향을 맡겠다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변태라니. 서운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하다. 괘씸한 마음에 다른 익숙하고 편안한 향을 찾아 헤매다 정착한 향기는 아들의 정수리 냄새다. 샴푸의 향과 섞인 그 냄새는 상큼보다는 시큼에 가깝다. 성장기가 되면서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갈수록 시큼해지는 게 못내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오렌지와 바닐라향을 섞인 느낌이 난다. 아이를 안을 때마다 정수리에 코를 박고 있는 엄마가 이상하고 불편하지만 엄마만의 포옹법이라 생각하는 아들은 늘 기꺼이 머리를 내어준다. 언젠간 이 상큼 달콤한 향이 시큼하고 퀴퀴한 홀아비 냄새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




향기香氣 (명사)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두 음절의 간단한 뜻을 가진 이 단어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향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다. 제사 때 피우는 향은 신을 부르기 위한 것인데, 향으로 신에게 노크하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후각은 중요한 센서로 작용하는데, 예를 들면 음식이 상했는지 알아보거나, 화재가 났을 때에도 코가 제일 먼저 그 사실을 발견한다. 후각은 미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후각을 잃으면 미각도 함께 잃고 미각을 잃으면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사라져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음식 맛을 혀로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혀에서 느껴지는 맛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후각을 통해 느낀다. 이런 이유들은 사실 초등학생들도 알법한 기초상식이지만, 그만큼 기본이 되는 중요한 역할임에는 분명하다.

후각, 즉 향기를 못 맡게 되면 앞서 이야기한 김용만의 말처럼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녀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배우자의 체취를 알 수 없다는 좌절은 깊은 상실감을 초래한다. 실제로 김용만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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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향기는 많은 기능을 한다. 향기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두려움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기업에서는 향기를 마케팅에 활용해 고객에게 매장의 이미지를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교보문고의 시그니처 향인 '책향'이 아닐까 싶다. 유칼립투스와 변백나무 향을 기반으로 만든 이 향은 종이방향제, 디퓨저 형태로 생산, 판매하면서 서점과 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책향'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향기는 기억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억 중 냄새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가서인지 지나가는 낯선 남자에게서 나의 첫사랑의 향수 향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과거로 돌아가 두근거린 거리곤 한다.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기억 덕분에 아는 맛이라서 더 끌리는 먹자골목에서 나는 음식 냄새는 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가? 아무리 뒤엉켜도 나도 모르게 음식들을 나열하여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군침을 흘린 적이 있다면, 그때엔 배고픔을 가라앉히며 신진대사도 활발하게 해주는 페퍼민트 껌을 씹어보자. 단 것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분명 줄어들 것이다.




향기를 뜻하는 Perfume은 Through를 뜻하는 per와 연기의 의미를 가진 Fume의 결합어이다. 연기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현재 내가 풍기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부드럽고 포근한 향으로 인향만리란 말처럼 만리까지 향기가 전달되는 향기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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