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결심했다.

나의 행복의 방향

by 선이

기다리고는 있지만, 기대하지는 않는다. 핸드폰을 하루종일 쥐고 있는 것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확인이 하고 싶어서일 뿐 또 다른 뜻은 없다. 속내는 응큼하게 다음 수순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하필 오늘이 주말이라 독박육아하느라 자아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고 해본다.) 아침에 읽은 책에서 쇼펜하우어가 '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야만 자신만의 행복의 방향이 비로소 정해진다'라고 한 말을 줄 치면서, 이렇게 만 하루도 되지 않아 그 문장이 내 선택에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코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마법사가 부럽다.)




처음부터 그랬다. 글쓰기를 시작하려 브런치 프로젝트에 등록을 할 때에도 이번처럼 귀신에 홀린 듯, 뭐라도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신청을 했다. 내가 가 들은 강의와 읽은 책의 70%를 차지하시는 작가셨고, 내 아이 교육에 제일 큰 영향력을 끼친 롤모델이셨다. (당연히 수치는 마음의 수치다.) 그런 분이 하시는 강의니, 브런치 작가가 되지 않아도 얻는 게 있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을 직접 뵙고 진심으로 감사와 응원을 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책을 사는 걸 좋아하지만, 한 권을 끝까지 읽은 건 몇 권 없다. 집 안은 제목만 봐도 알만한 책들이 벽마다 장식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서점의 책장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차이점을 찾자면 분야가 몇 개 없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기분이었고, 책을 책꽂이에 꽂아 나란히 정돈된 책장을 보면 나의 뇌가 활성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껍데기만 지성인인 나에게 작가테스트라니! 합격할 일이 만무했다. 내가 붙으면 초등학생인 우리 집 애들도 다 붙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에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냥 돈 아깝지 않게 시키는 것만 했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지만, 40여 년을 살며 몸에 뵌 습관을 버리지 못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성실하게 임했다. 그 성실이 결국 브런치 작가로 나를 등극시켰고, (물론 선생님과 매니저님, 동기 작가들의 덕이 훨씬 크다.) 지금까지 5개월간 매주 꾸준히 글을 쓰게 하고 있다. 무능력의 최고치를 달리고 있는 요즘인데 글만은 놓치지 않고 쓰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목표는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일기는커녕 가계부도 안 쓰는 인간이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고 170일 동안 80개의 글을 쓰다니! 연말 시상식에서 상상조차 못 하고 있다가 대상 수상을 하는 지현우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딱 이 상황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하며 생각 없이 다람쥐 챗바퀴를 대신 돌리고 있을 때, 또다시 이은경 선생님의 새로운 프로젝트 모집글이 올라왔다. 이름하야 <MY BOOK PROJECT>. 이번에도 들어본 적도 없고 있는지도 몰랐던 프로젝트다.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즐겨찾기로 지정된 선생님의 피드라서 알림이 울려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의 글을 차근차근 읽는다. 점점 솔깃해하는 내 마음에 머리는 어이가 없다.

"야, 마음? 제정신이야? 출판이 가당치나 해? 정신 차려!"

"아니.. 이것 봐. 평범한 사람이 지원하는 클래스라잖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도전하래."

"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음....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지만, 나 그동안 브런치북 주제 몇 개 있는데... 이걸로 안될까?"

"그건 일기지, 에세이냐?"

"그래도... 일단 신청만 해볼래. 내가 자격이 안되면 탈락되겠지. 합격하면 그때 고민해도 되잖아."

"그래. 어차피 불합격될 테니 미련 안 남게 지원해 보든가."

그렇게 마음의 소리가 이겨 지원을 하게 되었다. 동기들의 지원 소식과 합격, 출간 소식에 후회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배 아프기는 싫었다. 그들의 실력을 쿨하게 인정할 수 있게,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다. 항상 좋은 말만 해주는 동기들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바보처럼 일기만 쓰기는 싫었다. 뭐, 지금도 줏대 없이 주절주절 길게 쓰고는 있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격이 부족하고, 싫다곤 해도 글을 쓰고 있는데 출간의 꿈을 갖고 있는 게 정상 아닌가? 오히려 나처럼 꿈이 없는 게 문제 있는 건 아닐까? 하늘에서 음성으로라도 "잔말 말고 넌 이렇게 살아!" 하며 정해줬으면 진짜 그대로 잘할 수 있는데... 난 언제쯤 내 인생의 주체자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고등학교 때 희망 직업과 지원하고 싶은 대학을 쓸 때는 불혹이 지나서까지 내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내가 부푼 기대로 또박또박 적었던 그 대학을 졸업해서 희망했던 직업을 갖고는 막힘없이 고속도로를 달릴 줄만 알았다. 그래서. 이런 나 자신이. 내 모습이. 작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날씨도 내 마음을 아는지 요 며칠 내내 오락가락한다. 분명 해가 쨍하니 비쳤는데,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정리하고 창밖을 바라보면 어느새 흐려져있다. 검은 하늘과 창문에 빗방울이 맺힌 걸 보며 나의 우울은 또다시 씽크홀을 만나 땅 속으로 깊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오늘 오후에 합격자에겐 개인적으로 문자를 발송한다고 했는데 오후 5시가 되어도 핸드폰은 조용하다. 아무렴 그렇지. 나는 아니구나. 그럴 줄 알았다. 기대가 크지는 않았는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누가 합격을 했는지는 궁금했는데 개인연락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브런치 동기 단톡방에 들어가 본다. 우리 중엔 과연 누가 합격을 했을까? 나 빼고 다 된 건 아니겠지?


-글쓰기는 다 떨어졌나 봐요 ㅋㅋㅋ
-엥? 아직 발송 안된 거 아니에요? 발송했으면 인스타에 공지 올리셨을 것 같은데요.
-오늘 오후에 문자 온다고는 했는데...
-어? 저 지금 방금 왔어요 ㅠ.ㅠ


뭐지, 이 대화는? 이제야 합격문자가 온다고? 그때였다.

"띠리링" 핸드폰 창에 모르는 번호의 문자가 뜬다.

'혹시, 나도...?'

문자 소리에 속마음이 내비친다. 얼른 카톡창을 닫고 메시지 창을 켰다.

- [MY BOOK PROJECT] 합격안내.-

장문 메시지의 제목이었다. 배시시 미소가 오랜만에 지어져 입꼬리가 아프다. 역시 나는, 속없이 욕심 많은 아줌마였구나. 나도 결국엔 책으로 팔자 고치고 싶은 거였어.

그래 해보자. 브런치 작가처럼 안 돼도 뭔가 얻는 게 있겠지. 아니지, 아니지. 또 이래놓고 결국엔 출간하고 책에 사인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이제 그만 속물인 본모습을 꺼낼 때다. 솔직한 글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법이니, 내가 잘하는 얼굴에 철판 제일 두꺼운 걸로 깔고 속내를 드러내 보자.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번 기회에 책을 출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원하는 행복의 방향이에요.

P.S. '방금' 이렇게 결정했다는 것은 출판사 직원들과 선생님께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