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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Nov 15. 2020

세금, 양극화, 범죄의 상관관계

세금을 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평소에 이상하다고 여긴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세금'에 해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 물론 어느 누구도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걸 기뻐할 사람은 없겠지만, 머나먼 나라 브라질에서 살다 온 나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한국 사람들이 세금을 낼 때 불평하는 걸 듣고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한번 찾아보려 한다.




  한국 사람들이 세금 내기 싫을 때 주로 내뱉는 뻔한 레퍼토리가 있다.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세금이란 무엇인가? 세금은 국가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거주할 도시나 민락을 구성하는 도로, 항만, 철도, 상하수도, 배수시설, 전력, 가스, 쓰레기 처리시설, 기상청, 소방시설, 경찰, 검찰, 법원, 국회, 군대, 그리고 각종 시도별 정부 행정기관 및 공공의료시설, 공교육 기관, 그리고 금융 등 각종 분야의 공기업 및 기타 등등이 전부 포함된다. 이 모든게 바로 나라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들이다.


  이중 단 하나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은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원활하게 운영되는 국가다. 이 중 필수적인 몇 가지가 제공되지 않을 때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가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각종 공공 서비스들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매일 직접세나 간접세를 내고 있다. (국세, 지방세 등등 세금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지만 편의를 위해 앞으로 '세금'으로 통칭한다.) 우리가 세금 내기를 아까워하는 것은 이런 공공기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마치 공기나 바람처럼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세금을 더 적게 내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쉽게 단정 지어버리거나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정말로 태양이나 공기만큼이나 중요하다. 그게 없이는 그 누구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다.


  (여기서 잠깐, 정부가 정말 세금을 거둬서 제대로 쓰고 있는에 대해서는 논외로 한다. 종종 정부가 이해하기 힘든 잣대를 들이대며 비상식적인 세금을 엉뚱하게 부과하는 일도 분명 일어난다. 하지만 그건 세금 징수 자체의 당위성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할 문제이므로, 노선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다. 슈퍼에서 천 원짜리 과자를 사 먹을 때도 우리는 세금을 낸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만큼 내야 하느냐가 쟁점이 된다. 생활비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202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성인 한 사람이 문명인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용을 대략 150만 원으로 가정한다면, 월 순수입이 150만 원 이하인 사람에게는 세금을 최소화해주는 것이 옳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한 달에 순수입이 천만 원이 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위에 따라 150만 원 이하를 버는 사람이 내야 할 비용을 대신 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공공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만 놓고 보면, 저소득 노동자들은 돈을 잘 버는 부자들에게 전반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능력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고 가난한 자들을 먹여살리니, 경제적 능력이 충분치 않은 사람은 마음의 빚을 지고 부자들에게 굽신거려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나온다. 과연 이 논리가 맞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 저소득층(빈자)이 자본가(부자)들에게 사회적 빚을 지고 있다는 논리는 단지 부자들만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실질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부자는 빈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모든 빈자들도 간접세라는 형태로 세금을 낸다. 특히 간접세는 그 비율이 거의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부자라고 해서 빈자보다 특별히 더 많은 비율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단지 부자가 평소 지출이 훨씬 더 많으니 당연히 그에 따라서 내는 세금이 더 많아 보일 뿐이다.


  둘째,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기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오직 자신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저소득 노동자들이 제공해주는 서비스 없이는 본인의 경제활동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쉽게 간과해버린다.


  매일 경제활동을 위해 이용하는 도로, 교량, 철도, 통신 인프라를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인부, 대중교통 운전사, 거리와 빌딩의 환경미화원, 음식과 택배를 가져다주는 배달원, 불이 나면 달려와주는 소방관, 범죄자를 검거하는 경찰, 주민센터 직원 같은 일선의 말단 공무원. 이들은 거의 모두가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을 버는 노동자들이다.


  그 외에도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 쾌적한 공간과 식음료를 제공하는 카페, 식당 등등의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소상공인들과,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제공해주는 각종 다양한 서비스를 전부 싸그리 무시하고, 부자들이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높은 소득을 이뤄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초등학교로 돌아가서 사회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자본가나 경영자는 단순히 노동자를 고용하고 적절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이에 더해서 자신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노동자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줄 부가적인 책임 또한 당연히 지녀야 한다. 이는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합당한 원칙이며, 이를 부정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아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문명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피하는 건 명백한 무임승차 행위이므로 시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나 가정에서는 이걸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5가지 욕구 단계 이론에 따르면, 이런 공공 서비스는 주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는데 치중되어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안전의 욕구'는 스스로의 생명과 재산을 지킴으로서 안정적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다.


  대한민국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과 가장 높은 범죄 검거율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안전의 욕구를 (절대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상대적으로 아주 잘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상의 모든 국가 중에서 안전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부유함과 빈곤함, 사회적 직위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해줄 책임 또한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있다. 저소득자는 돈으로 그 책임을 질 수 없기에 본인의 노동력으로 갈음하고, 부자는 돈으로 그 책임을 대신 져주는 대신에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인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와 더 나아가 자아실현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부자가 노동자들을 위해 높은 세금과 임금까지 부담하면서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궤변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지극히 부족하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으니 그런 그릇된 주장을 대놓고 당당하게 남들 앞에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동력으로, 자본가는 세금 납부로 각자의 역할을 다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함께 만드는 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제 역할을 하기를 거부한다면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걸 막을 수 없다.




  202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평균 연봉 세전 9000만 원)의 실수령액은 월 600만 원이다. 이 정도의 고소득자는 수입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월수입 600만 원도 무척 많은 돈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 정도를 버는 사람들 중에서 본인의 소득과 납세율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의 연봉 1억 고소득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이다. 2021년 현재 서울의 30평대 아파트 평균가는 14억 원이다. 연봉 9천만 원의 직장인이 현실적으로 월급의 절반인 300만 원을 매달 꾸준히 저축한다고 해도, 무려 40년 동안 쉬지 않고 모아야 한다. 게다가 은행에 넣어둔 돈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매년 가치가 떨어지고, 그반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상위 10%에 속하는 억대 연봉자가 한평생을 걸쳐 꾸준히 저축을 해도 아파트 한 채조차 살 수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비참하고도 비정상적인 현실이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면 천문학적인 결혼식 비용과 양육비도 고려해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같은 각종 재테크는 대부분 손실을 입을 위험 부담이 항시 존재하고, 반대로 리스크가 적은 상품은 수익이 고만고만하다. 연봉이 1억 원대인 고소득자의 씀씀이가 검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한, 한국 사회에서 상위 0.1%를 제외한 99.9%의 사회인들은 애초에 본인의 소득 수준에 만족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러니 월급의 3분의 1이나 세금으로 떼어가는 정부가 야속할 수밖에 없고, 나라가 나한테 해준건 없고 뜯어가기만 한다고 욕하게 된다.


  하지만, 길고 긴 서론을 거쳐서 내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지금부터이다.




  사실 부자가 높은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범죄]이다. 범죄는 살인, 강도, 절도, 사기, 횡령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총기나 흉기를 이용한 강력범죄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 대신 한국은 횡령이나 배임, 사기 같은 금융범죄가 판을 치는 사기의 왕국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사기 범죄 건수는 무려 347,675건으로, 형사사건 중에서 1위이다. 비율로는 전체 범죄 중 21.9%를 차지한다. 한국에선 웬만해선 총이나 칼에 목숨을 잃는 일이 흔치 않지만, 누군가에게 사기 피해를 당할 위험은 항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부자들은 주택 보안에 대한 인식부터가 외국과 다르다. 해외에서는 종종 무장한 경호원이 상시 집을 지키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사설 보안 서비스란, 주로 비어 있는 시간에 주택에 침입하는 도둑을 막거나 추적하는 무인감시 시스템을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자기 집이나 신체가 강력범죄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범죄의 표적이 될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의 치안이 비교적 잘 유지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최소한의 사회복지제도와 기본교육의 기회가 보장되어 있고, 폐쇄회로 카메라 등의 보안 설비가 곳곳에 많이 설치된 덕택에 범죄자 검거율이 매우 높으며, 사회적 불평등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불평등이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총기 소지가 흔치 않다. 아직까지는.  덕 우리는 훌륭한 인프라와 서비스가 제공되는 사회에서 안전하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유한 자산이 전혀 없는 저소득자가 일자리를 잃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완전히 빈털터리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그는 삶을 스스로 마감할지 아니면 범죄를 저지를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을 택하는 편이 더 많아 보인다. 실제로 가족동반자살 사건들 허다하게 보도된다.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건으로 인해 사회복지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한때 높아졌었지만, 그것도 그저 한때였을 뿐이다. 여전히 법은 멀고 가난은 가깝다. 만일 우리나라 총기나 범죄조직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살보다는 범죄를 택했을 것이다.




  범죄의 속성을 한 번 따져보자. 범죄는 무척 가변적이다. 위험하다.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불안정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범죄의 화살은 먼저 자연스레 부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범죄를 저지르는데 따르는 위험을 기회비용으로 따져본다면, 한 번의 범죄 행위로 더 은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기왕이면 좀 더 부유한 사람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게 되는 게 당연하다. 더욱이 개인 경호 서비스가 흔치 않은 우리나라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15년간 거주했었던 브라질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평생 열심히 일해서 운좋게 부자가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갑자기 생면부지의 범죄자의 손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다분한 사회에서는 열심히 땀흘려 일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안전과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서 굳이 오늘을 희생하며 열심히 일하느니, 차라리 그날 벌어 그날 하루에만 충실하게 만족하면서 사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인 삶의 형태가 된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치안 상태가 심각하게 나쁜 중남미나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대체적으로 낮은 데에는 이런 변수가 분명히 크게 작용한다.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힘들게 일해서 노동의 대가를 받기보다는 총을 구해서 강도짓을 벌이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한 마디로 범죄는 가성비가 좋다. 효율성 따지기로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한국인들이 강력범죄를 덜 저지르는 이유는,  한국에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총은 다른 흉기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무기다. 사용자의 체격이나 성별, 연령 등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쉽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칼이나 둔기 같은 흉기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위력이 크게 달라지지만, 총은 그렇지 않다. 총구 앞에서는 노약자 건장한 청년이든, 재벌이든 극빈자든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한 발의 총알로 목숨을 잃다.


  만일 한국에서 총기 매매가 흔했더라면 이미 치안 위험국이 되고도 남았다. 한국인만큼 다혈질인 사람들이 이만큼 스스로 억누르면서 성실하게 지내는 나라도 없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나 시민정신이 발달된 나라라서 괜찮지 않냐는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일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안전한 이유로 꼽는 선진화된 시민의식, 발달된 민주주의 체제, 전국민 기초교육, 그런 달달한 건 모두 경제적 여유에서 나온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은 옳았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그런 배부른 가치 판단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세금 수입이 줄어든다 → 사회복지예산이 삭감되고 양극화가 확대된다 → 극빈자의 마지막 보루가 사라진다 → 그런 상황에서 만약 총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 강력범죄가 늘어난다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공식이다. 세수가 적은 개발도상국들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내일 노상강도를 마주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당신 앞에 흉기를 든 강도가 나타날 확률을 계속 높일 것이라는 자각은 있어야 한다. 본인이 직접 강력범죄를 겪어보지 못하면 이 말의 뜻이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에, 브라질에서 다섯 번의 강도를 당해본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꼭 전해주고픈 이야기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훌륭한 치안 상태는 세금 징수를 통해 이뤄지는 부의 재분배로 유지된다. 그것이 팩트다.


  납세 회피는 안전한 사회 유지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이며,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위험으로 몰고 가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사회 양극화를 막기 위해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고 있는가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는 한 국가의 정책이 가져야 할 철학과 방향성의 문제이자, 공교육을 통해 전 국민이 숙지하고 있어야 할 필수 개념이다.




  그런데 막상 치안 문제가 심각한 브라질은 세율이 거의 4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의 2배가 넘고,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나게 높은 세율이다. 그렇다고 높은 세율과 범죄율이 전혀 관계없다는 결론으로 가면 곤란하다. 브라질이 엄청난 세금을 걷는 이유는 정부가 매년 외국에 상환해야 하는 해외차관의 이자 지출, 너무 높게 책정된 노령연금의 경제적 부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국고에 마수를 뻗는 각종 횡령 비리와 부정부패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인들이 올바른 복지정책의 방향성을 고민할 여유는 거의 없다. 그럴 만한 충분한 재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진적으로 높게 부과되는 세금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경제 양극화의 완화여야 한다. 그런 철학이 없는 세금 징수는 그저 강제 수탈일 뿐이다.


  게다가,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변수 하나 존재한다.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진입하면 가까운 미래에 많은 노동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날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실업자들은 다른 산업으로 편입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효용도 수요도 없는 무용(無用, useless) 계급이 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고,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 육체노동만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전문지식과 고학력이 요구되는 회계사나 약사, 법조인 등의 전문직종까지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부자와 빈자가 나뉘어 서로 비난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가오는 새 시대에 온 힘을 다해 연대하고 협력해서 전력을 다해 준비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먹고 살 걱정이 전혀 없을 대기업 오너들이나 재벌들이, 혹여나 세금 내기 싫어서 회사를 해외로 옮겨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아예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그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다면 여태껏 굳이 한국에 계속 남아있었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평소 하는 걱정의 99%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했던가. 빈자가 부자 걱정해주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다.




  세금을 성실히 내는 것 외에도, 우리의 세금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과 시민의 역할이다. 우리는 세금을 많이 낸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런 역할부터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먼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상습 고액 체납자들의 명단을 여기에다 직접 캡처해서 올리고 싶지만, 그러면 명예훼손죄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한다. 참 웃기는 법이지만, 현행법이 그렇다니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성이 폭파된 고액 상습 체납자들이 누구인지를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서울시 홈페이지 링크로 갈음한다. 이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무임승차자, 매국노, 반사회적 범죄자들이므로.


  지금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는 누가 고액 체납자인지, 아래 링크에서 한 번 직접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https://news.seoul.go.kr/gov/defa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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