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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Jan 01. 2021

딸-딸-아들의 막내로 산다

철 지난 남아선호 사상의 유산

  나는 1남 2녀, 삼 남매  막내다.


  위로 누나만 둘을 둔 막내아들은 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인 동시에, 장남으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하는 모순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는 생각보다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막내'와 '장남' 사이의 괴리는 작지 않다.




  막내는 집안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가장 적은 책임을 지는 포지션이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이 짊어질 책임의 일부를 함께 나누기를 강요당하는 첫째 자녀와는 확연하게 다.


  그런데 내게 장남이라는 호칭은 장차 노부모를 부양하는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야 할 사람이자, 가정 내에서 사회적 성공을 해서 본보기가 되어야 하며, 그래서 궁극적으로 가문의 핏줄을 이어갈 의무를 가졌음을 상기시킨다. 막내 포지션과여러 모로 큰 차이가 있다.


  내가 7년 전에 한국에 돌아온 뒤에 새롭게 알게 된  하나 있다. 나처럼 딸 둘에 막내아들 하나로 구성된 삼 남매가 한국에 수없이 많는 사실이다. 내가 한국에 알 지 백 명도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 딸-딸-아들 삼 남매에 속하는 사람이 최소 이십여 명에 달한다.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비상식적인 상이다.


  특히 80~9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중에 이런 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반면에 2000년대 이후로 태어난 세대에서는 그렇게 많진 않아도 간간이 보이곤 했다. 비록 나의 협소한 인간관계 내에서만 확인된 보잘것없는 데이터이지만, 이로 격동의 80년대를 강타한 어마무시한 남아선호 사상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유추해볼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섬찟한 가설이 떠오른다. 만약 내 큰누나나 작은누나가 아들이었다면, 높은 확률로 나는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누나들의 삶은 막내에 비해 무척 고달다. 부모님이 외출할 때 어린 동생의 끼니를 챙겨야 하고, 학원에 데려다줘야 하고, 어쩌다가 맛있는 게 생겨도 동생 줄 것을 남겨놔야 하고,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는 동생에게 선의의 거짓말로 숨겨야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무척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큰누나는 장녀라는 이유로 자주 집안의 대소사를 떠맡아야 했었. 작은누나는 항상  챙겨주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데다, 평소에 관심을 많이 받지도 못하는 것에 항상 불만이 있었다. 히나 큰누나의 이름과 내 이름은 잘기억하시던 친척 어른들이 유독 작은누나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친할머니께서, 딸만 연달아 둘을 낳은 우리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심적 부담을 지게 하셨을지 충분히 알 만 하다. 자식의 성별을 산모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건 직접 자식을 낳아본 당신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아들 대신 딸을 낳았다고 며느리를 대놓고 괄시하고,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는 그 무지와 폭정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 어머니께서 종종 입버릇처럼 내게 해주시던 말씀이 있다.


너를 낳고 내 가슴에 품었을 때, 나는 정말로 세상 전부를 가진 느낌이었단다. 이 세상 전부를 다 준다고 해도 너와 바꾸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말씀을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나를 낳기 전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결혼 후에 딸만 달아 둘을 낳고 나서, 나를 낳기까지 약 3년의 시간 동안 혹시 셋째도 딸이면 어떡할까 하고 얼마나 숱한 밤들을 걱정과 근심으로 넘기셨을까? 세 번째 이가 마침내 아들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그 안도감과 희열은 아마 로또 1등 당첨만큼이나 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모든 걱정과 핍박이 과무엇을 위한 것이었까. 그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할 이유라는 게, 가문의 대를 잇는 아들을 낳는다는 게, 지금 보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허무한 것이었던가. 우리 할머니께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삼척 김 씨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일은 아마 내 세대에서 끊길 가능성이 높다.


  나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물려받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늘 모르고 치솟는 집값을 지켜보면서 이미 내 집 마련과 자녀양육 포기한 지 오래다. 굳이 이 험한 세상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결혼과 출산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찰 없이 그 남들 다 하니까 해야 한다, 애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은 내게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유사 이래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회 풍속과 인식이 바뀐 적이 있었던가.




  전국의 딸-딸-아들 가정을 만든 일등공신인 할아버님 할머님들, 오늘날까지 여전히 며느리에게 아들만을 요구하는 시부모님들이제는 한 번 제대로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게 아들, 아들 부르짖으시더니만 이제 아예 가문의 대가 끊기게 생겼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으셔서 만족스러우십니까? 그렇게 며느리를 닦달해서 낳은 손자의 미래에 관심은 있으십니까? 아무 의미 없는 철 지난 남아선호 사상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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