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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Aug 08. 2020

평범도, 이상도 아닌 그저 나 자신

나를 나답게 만들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였다. 여섯 살이 넘어가도록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 잘 열지 않았던 탓이다. 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심지어 네 살 즈음한글도 혼자서 깨치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웬만해선 도통 입을 열지 않고 하루 종일 까닭 모를 침묵을 지키는 거였다. 일찌감치 말문이 트여 재잘거리던 누나들과 극명하게 비교되면서, 부모님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90년대 초중반까지도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었다.  반의 남자아이들 중 여섯 명 이상은 여자 짝꿍이 부족해서 남자끼리 짝 앉아야만 했다. 만 둘을 연달아 낳았다가 결혼 7년 만에 겨우 얻은 장남이자 막내아들이 말을 제대로 안 한다는 건 심각한 걱정거리였다.




  사실 나는 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세상에는 언어 말고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 많았다.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굳이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니까. 자고 싶으면 누워서 눈을 감으면 되고, 놀고 싶으면 내 방으로 가면 된다. 배가 고프면 부엌으로 가면 되고, 싸고 싶으면 화장실로 가면 된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굳이 번거롭게 일일이 입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런 사실을 굳이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입을 열 설명하 귀찮아서였. 결국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은 뒤에야 부모님은 내가 평소에 과묵하게 지내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고, 정신적인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 나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말 한마디 벙긋하지 않고도 첫 주부터 사고를 다. 그 시절에모든 학교들이 월요일 아침마다 전교생모두 운동장에 불러 모아서 아침 조례 했었다. 조례가 끝나고 모두가 교실로 들어갈 때 나는 홀로 조용히 교문을 스윽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실종된 줄 알고 난리가 났는데, 내가 집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내가 몰래 집으로 돌아왔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일곱 살짜리 어린애들을 땡볕 아래 오랫동안 강제로 줄세워놓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런 일은 이후로도 몇 차례 더 있었고, 급기야 담임은 부모님에게 나를 1년 유급시키거나 특수학교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지능이나 사회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사고방식이 좀 특이할 뿐이라고 굳게 믿었던 부모님은 나 유급 동의하지 않다. 학교 측에서는 좀 더 지켜보다가 나중에 문제가 더 심해지면 그때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렇게 나는 다른 평범한 1학년 아이들처럼 가끔 교실에서 대소변을 지려버린다든지, 수업 내내 책상에만 엎드려 있다든지 하는 사소한 문제만을 일으키면서 무사히 2학년에 진학했다.


  나를 유급시키지 않 부모님의 결정결과적으로 옳았다. 다행히도 2학년부터는 학교라는 조직에 서서히 적응기 시작, 4학년에는 부반장에 뽑기도 했. 학교 생활을 잘하는 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순 없겠지만, 제아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틀 수 있다는 걸 증명 셈이다. 겉보기 너무나도 얌전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던 탓에 우등생 대접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내 머릿속은 항상 공부보다는 어딘가 특이한 상상과 사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삼십 대 후반에 이르렀, 내 특유의 사고방식 직도 그럭저럭 잘 보존하고 있다. 거기 우리 가족들의 공 다. 부모님과 누나들은 내가 종종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을 할 때마다 나를 무턱대고 나무라기보다는 먼저 그런 행동을  이유부터 참을성 있게 물어주었다. 을 듣고 난 뒤에내가 남들보다 몇 단계 더 깊 사유를 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이해하고 인정해줬다. 때마다  생각을 객관적으로 찬찬히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소한 일상의 대화들이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힘과 판단력을 얻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성격이나 생각을 타고난다. 그건 개성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보물이다.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건 한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개성을 공들여 빚어가는 작업이다. 타인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은 온전히 자만의 것이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면이 너무 많다고 억지로 억누르거나 주눅 들 필요도 없고, 반대로 자신이 남들에 비해 특출 난 개성도 없고 존재감이 부족하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어릴 적부터 나의 사고방식이 평범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틀린 건 아니라는 걸 지난 36년간의 의 궤적  증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태어때부터 죽는 날까지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다. 타인 시선과 판단에 휘둘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건 비극이다. 오직 단 한 번뿐인 각자의 인생을 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모든 사람들이말로 삶의 정한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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