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착하지 않는 공간에 대하여
하루 동안 머무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집에서 나와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정을 함께 상상해 볼게요. 현관을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때론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을 거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로비를 통과한 후 계단을 오르거나 램프를 따라 걷다 다시 복도를 지나고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머문다’고 말할 수 있는 장소는 몇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지나가는 중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여전히 머무름을 중심으로 건축을 이야기합니다. 집은 거주를 위해 설계되고, 사무실은 장시간 체류를 전제로 구성됩니다. 공간은 특정 사용자가 반복적으로 머무를 것이라는 가정 아래 배치됩니다. 구조는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은 명확하게, 사용자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존재로 상정됩니다.
이 가정은 오랫동안 유효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집에서 오래 살고, 같은 장소로 출근하며,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삶의 방식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이러한 삶의 리듬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장치였습니다. 머무름은 공간의 기본 조건이었고, 정착은 건축의 목표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의 시간 구조는 다릅니다. 하나의 장소에 오래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공간을 사용한 후, 이동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공간은 고정된 사용자보다 다양한 방문자를 맞이합니다. 사용 목적은 하루 안에서도 여러 번 바뀌고, 같은 공간이 전혀 다른 시간성을 갖게 됩니다. 이 변화는 건축의 질이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어긋남‘으로 명명할 수 있는 이 같은 특징은 특히 이동 공간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환승 통로, 로비, 계단, 복도, 문 앞의 작은 여백…
이 공간들은 누구도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의자도 없고, 시선이 머물 이유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 동안 이 공간을 통과하는 사람의 수는 그 어떤 방보다 많습니다. 머무르지 않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공간들입니다.
건축은 이 공간들을 대체로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중요한 공간을 연결하기 위한 통로, 기능을 보조하는 영역, 최소한의 면적으로 처리해도 되는 부분으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공간들이야말로 건축을 가장 자주 만나는 장소입니다. 건물의 인상이 특정 방이 아니라 로비나 계단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자, 이제 이러한 공간들에 대해 한번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눠볼까요? 머무르지 않는 공간, 정착을 전제로 하지 않는 건축, 지나감을 중심에 둔 공간을 주제로-
기존의 건축을 부정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건축의 언어로 다시 읽기 위한 시도로 말입니다.
머무름은 건축에서 오랫동안 미덕이었습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쉽게 낡지 않는 구조, 시간이 지나도 기능을 유지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단순히 기술적 요구가 아니라 가치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남는다는 것은 책임감 있는 태도였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신뢰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특히 주거 건축에서 강하게 작동했습니다. 집은 ‘사는 곳’이었고, 삶의 많은 시간이 축적되는 장소였습니다. 벽의 위치, 창의 크기, 방의 배치는 장기간 사용을 전제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용자는 바뀌지 않는 존재로 가정되었고, 공간은 그 사용자를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조직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주거 공간은 이 전제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집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공간의 용도는 빠르게 전환됩니다. 주거로 설계된 공간이 업무 공간이 되거나, 숙박 시설로 전환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같은 평면이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이 감당해야 할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사용자와 하나의 시간에만 봉사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용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통과합니다. 그럼에도 설계의 언어는 여전히 ‘누가 오래 머무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무름을 기준으로 한 설계는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동반합니다.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어디까지가 내부이고 어디부터가 외부인지, 누가 환영받는 사용자인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규정됩니다. 반면 머무르지 않는 공간은 이 경계를 느슨하게 만듭니다.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소유의 감각도 약해집니다. 대신 지나감이 허용되고, 잠시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 지점에서 머무르지 않는 건축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임시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회적 태도를 담은 공간으로 말입니다. 누군가를 붙잡지 않고, 배제하지도 않으며, 특정한 사용 방식만을 강요하지 않는 공간… 이러한 공간은 눈에 띄지 않지만, 도시의 일상적인 흐름을 지탱합니다.
머무르지 않는 공간은 이미 충분히 많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출입문과 방 사이의 짧은 복도, 계단참, 로비 한쪽의 빈 공간, 엘리베이터 앞의 대기 구역은 대체로 이름조차 갖지 못합니다. 평면도에서는 얇은 선으로 처리되고, 면적표에서는 최소한으로 계산됩니다. 그러나 실제 경험 속에서는 이 공간들이 반복적으로 몸을 통과합니다.
저는 어떤 건물을 기억할 때, 종종 특정 실보다 그 건물의 계단을 떠올립니다. 계단의 폭이 유난히 좁았는지, 손잡이가 차가웠는지, 계단실의 채광이나 조명의 빛 온도 느낌은 어떠했는지, 계단참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는지 같은 감각은 한동안 몸 구석구석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 기억은 의도적으로 저장된 것이 아니라, 공간을 지나는 몸에 자연스럽게 각인된 것입니다. 머무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경험한 공간입니다.
계단은 머무르지 않는 공간의 전형입니다. 누구도 계단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단은 이동의 리듬을 결정합니다. 계단의 높이와 깊이는 걸음의 속도를 바꾸고, 계단의 방향은 시선을 전환시킵니다. 어떤 계단은 빠르게 오르내리도록 만들고, 어떤 계단은 잠시 멈추게 합니다. 이는 설계되지 않은 우연이 아니라, 치수와 재료, 빛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복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도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경로이지만, 동시에 공간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장소입니다. 좁고 긴 복도는 긴장감을 만들고, 짧고 넓은 복도는 여유를 제공합니다. 창이 있는 복도와 없는 복도는 이동하는 사람의 자세를 다르게 만듭니다. 복도에서의 경험은 방에 들어가기 전 이미 형성됩니다.
로비는 머무름과 통과가 겹치는 공간입니다. 누군가는 잠시 기다리고, 누군가는 그대로 지나갑니다. 로비의 천장 높이, 바닥의 재질, 빛의 방향은 이 짧은 체류를 어떻게 인식하게 할지를 결정합니다. 어떤 로비는 지나치게 웅장해 사용자를 압도하고, 어떤 로비는 지나치게 비어 있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듭니다. 좋은 로비는 머무르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긴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모두 ‘지나감을 설계하는 공간’입니다.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요소가 작동합니다. 바닥의 감촉, 소리의 울림, 시야의 열림과 닫힘, 공기의 흐름은 몇 초 안에 사용자의 몸에 반응합니다. 이 짧은 반응이 공간의 인상을 만듭니다.
머무르지 않는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이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이 작동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오래 머무는 공간에서는 사용자가 적응할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과의 공간에서는 적응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첫인상이 곧 전체 경험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들은 오히려 더 섬세한 설계를 요구합니다.
머무르지 않는 건축은 종종 ‘대충 만들어진 공간’으로 오해됩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는 인식이 작동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머무르지 않는 공간은 가장 민감한 공간입니다. 사용자의 몸과 바로 맞닿고, 즉각적으로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바닥 재료 하나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거친 바닥은 속도를 늦추고, 매끄러운 바닥은 이동을 빠르게 만듭니다. 계단의 재료가 바뀌는 순간,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조절합니다. 천장이 낮아지면 몸은 수축하고,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올라갑니다. 이러한 변화는 몇 초 안에 이루어지지만, 경험은 분명합니다.
빛 역시 머무르지 않는 공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강한 직사광은 공간을 통과하도록 만들고, 확산된 빛은 잠시 머물게 합니다. 창이 없는 좁은 통로는 빠른 이동을 유도하고, 외부가 보이는 공간은 속도를 늦춥니다. 설계자는 이 차이를 통해 공간의 흐름을 조율할 수 있습니다.
머무르지 않는 건축에서 설계자는 사용자를 붙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디에서 속도를 늦추고, 어디에서 다시 흐르게 할지를 고민합니다. 이 조율은 명확한 지시가 아니라 미묘한 유도에 가깝습니다. 표지판보다 공간 자체가 방향을 알려주고, 규칙보다 감각이 행동을 이끕니다.
이러한 설계는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또 다른 방식의 통제입니다. 모든 행동을 규정하는 대신, 가능한 행동의 범위를 열어두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는 사용자를 신뢰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머무르지 않는 공간은 종종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 됩니다.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특정 사용자가 점유하기 어렵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특정한 자격이나 목적 없이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도시의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합니다.
저는 이 점에서 머무르지 않는 건축이 유형을 넘어 하나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붙잡지 않으려는 태도,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지나감을 허용하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는 형태보다 관계를,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합니다.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해서 사라짐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는 뜻입니다. 형태가 아니라 감각으로, 소유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습니다. 기억은 특정한 순간에만 떠오르지만, 그때마다 분명한 장면으로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