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의 적용과 해석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건축에 적용한 아주 짧은 글입니다.]
칸트로부터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 전반을 지배하였던 주체중심사상 혹은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반기로 구조주의가 나타났다. 구조주의자들은 주체중심사상 혹은 로고스중심주의를 합리적으로 비판한다. 주체성을 반대하면서도 합리주의를 계승하는 이중성을 갖는 것이 구조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기(탈) 구조주의의 경우, 구조주의가 계승한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감각에 대한 사유를 강조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쉬르는 랑그-파롤, 기표-기의, 통합체-계열체, 공시성-통시성과 같이 짝을 이루는 구조 요소들을 심층 분석하였다. 랑그는 특정 문화 내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문법의 구조를 말하며, 파롤은 개인의 발화 방식을 뜻한다. 기표는 단어가 갖는 소리 및 표현, 기의는 단어가 지시하는바, 즉 개념 요소라 할 수 있다. 기표-기의 관계는 임의적인데, 이는 언어가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건축에 있어 근대성은 1950년대 중반까지 거장들의 건축 작품들과 이론을 통하여 형성, 표현되어 왔다. 근대건축은 공간과 구조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하였으며, 기능주의 미학에 의지하였고, 그 정신적 바탕은 실용주의에 두었다. 이 같은 가치체계, 그 자체만 보면 '인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건축에 적용되었을 때는 달랐다. 무미건조하고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건축양식으로 나타났다. 근대건축은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형성된 지역문화를 담아내지 못했으며, 그에 따라 지역 정체성 상실, 건축의 보편화로 인한 건축의 의미 및 상징성 결여 등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동성과 다양성을 중시한 새로운 도시계획, 전체에 대한 부분적 형태의 중시, 고도로 산업화한 사회에 있어 소외된 인간성 회복을 주장하는 논쟁이 시대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구조주의는 형태와 공간에 대한 자기 상상력과 전통 건축의 선례에 내재한 불변의 표현적 요소들을 추구하여 새로운 인간적 표현 건축을 이루고자 한 건축가들의 노력과 함께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해, 특정한 문화 현상, 활동, 산물들을 자족적인 상호 관계들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기호체계, 혹은 사회제도로 간주하는 구조주의의 시각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 시각을 따르면 세계는 사물들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하기에 구조주의자들은 어떤 존재 혹은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전체의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 완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소는 변하더라도 그 배경에서 변하지 않는 관계를 인식하고 파악하려 한 것이다. 이에 구조주의적 시각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 정신의 영속적 구조를, 세계를 체계화하는 범주들과 형식들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조의 개념은 전체성을 특징으로 한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를 중시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규칙이나 틀을 탐색하여 이를 규격화, 조직화, 패턴화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조주의 특징은 지시어와 지시 대상 사이에는 안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낙관주의가 기반하고 있었는데, 일례로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은 이러한 구조주의가 갖는 낙관주의적 측면을 건축 기술화하여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아나 주체, 개인 사유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전체(구조)가 부분(개체)을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독선을 나타내는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후기(탈) 구조주의가 대두되었다.
후기(탈) 구조주의는 랑그-파롤, 기표-기의에 나타나는 지시어-지시 대상의 안정적 관계를 비판하며 지시어-지시 대상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해체하고자 하였다. 후기(탈) 구조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의 획일적, 선형적 진행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전통이라는 맥락 내에 존재하는 형태 의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다.
또한, 근대건축에서 배제한 역사성, 상징성, 장식성 등을 자유롭게 해석, 표현하며 토속적, 통속적, 유희적 표현을 부활시켰다. 이에 후기(탈) 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탈피하려고 했던 근대성에 저항하면서도, 구조주의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려 함으로써 전체적 구조보다는 개체의 존엄성, 자유를 존중하고 경직화된 사고, 학문의 과학화를 배격하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지향한다. 과거를 향수라는 낭만적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대신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절대적 진리, 혹은 중심, 근원의 횡포를 거부하고, 타자를 포용한다.
후기 바르트로 대표되는 언어의 구조를 뒤엎고자 한 탈구조주의자들은 일관된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 모든 제도와 담론들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여러 학자들 가운데 푸코는 스스로를 정상적 혹은 이성적이라 간주하는 지식이 어떻게 비정상이라 생각되는 지식을 소외시켜 왔는지를 구체적 역사를 통해 탐색하였다. 극단적인 예로 푸코는 제레미 벤섬의 사면감시탑(panopticon)을 제시한다. 공권력에 의한 제도적 폭력에 대한 푸코의 성찰은 비단 감옥뿐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기관으로 확장되어, 종국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데리다를 중심으로 한 해체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해체주의는 서구 형이상학의 기본 틀이 주체중심주의,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탈피를 중심으로 두고 있으며, 이는 지양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건축에 있어 해체주의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시도한다. 근대건축을 비판하는 후기(탈) 근대(포스트모더니즘) 건축 흐름과도 함께하는 해체주의는 시간적 계기를 포함하는 공간, 장식의 복원 등에 주목함으로써 근대건축의 획일성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해체주의 건축은 비정형적 건축을 추구하며 디지털 건축 경향과 함께 지나치게 조형성만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후기(탈)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 저항하였지만, 절대적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후기(탈)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는데, 1) 텍스트 자체를 중시한다는 점, 2)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별한다는 점, 3) 구조주의와 유사한 인식론적 입장 등이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