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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Aug 26. 2024

표면과 깊이에 대하여

반사하는 물과 치유하는 건축

"건강할수록 유연하다." 최근 어떤 강의에서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건강한 정도를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뻣뻣함은 몸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세계를 사는 개인에게 유연함이 쉽게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움직인다고 합니다. 움직임 그 자체가 '생'의 증거라고요. 살아있는 한 움직인다는 이 사실에 따르면 우리의 매일은 변화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햇살이, 구름이, 바람이 매 순간 다르니까요. 그러나 시시각각 바뀌는 햇살을, 구름을, 바람을 보고 느끼면서도 내 삶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마는 어리석은 저입니다.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변화 그 자체에 몸을 싣고 떠다니자 매일 다짐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삶의 방식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잘살아 보고 싶어서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일렁임을 매일 체감한다는 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요. 멀미를 앓습니다. 

안정된 일상이 주는 편안함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걸어 다니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가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사실인지 잊어버립니다. 함수가 잘못될 경우 가끔 속박감으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이란, 안정감으로 생활의 바탕에서 딛고 설 바닥이 됩니다. 물론 엄청난 책임감과 그 반대의 엄청난 무심함도 동시에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의 것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세계에서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세계는 물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의 세계.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하지 않게 오래 편하게 떠 있으려면 잘 생각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가끔은 또 생각합니다. 

Up where they walk, up where they run
Up where they stay all day in the sun
Wanderin' free,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저 위에서 사람들이 걷고 뛰는 곳
저 위 그들이 하루 종일 태양 아래 머무는 곳
자유롭게 다니며
나도 저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저 세계로 가고 싶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테마곡 'Part of Your World'에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10대 시절 이 노래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럴까요. 그러나 사실은 저뿐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우연의 세계, 일렁이는 물속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아가미를 찾아내 숨 쉬면서요.

어른거리는 물을 보면 나르키소스를 생각합니다. 반사되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전 상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너무 잘생긴 자기 모습에 반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더 깊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은 반사하면서도 흡인합니다. 그리고 반사하는 그 모습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물은 움직이며, 상은 그 움직임을 따라 변합니다.

수면. 표면. 경계에 있다는 것은 밖으로도, 안으로도 변화하는 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은 밝지만, 안은 어둡습니다. 어두운 것은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본다는 것은 궁금증을 해소하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 속으로, 혹은 나의 속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보다 보면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어집니다. 깊이 알고 싶다는 것은 저쪽 것을 내 것으로 알고 싶다는 정서, 공감을 향한 욕망, 더 나아가 동감을 향한 욕망, 동일화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오죽하면 영어에서 'to get under your skin'이라는 표현이 있을까요. 짜증 난다는 뜻을 가진 이 표현은 표현 그 자체로는 "피부 속으로 파고든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의 정확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매우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 대한 생각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들어가 느끼는 것. 공감하려 하다 보면 운 좋게 동감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소속되고 싶다는 욕망, 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에 함께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 같아지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아이덴티티. 내가 누구인지 역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존재의 욕망. 물을 보며 그러한 욕망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물의 신비함을 봅니다. 존재의 욕망에 깃든 생명력. 물에는 힘이 있습니다.

물의 신비로운 힘을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종종 마법사나 주술사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물을 통해 치유하거나 예언하며, 물의 신성한 힘을 이용해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믿어졌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물의 정화와 재생의 힘을 통해 사람들의 병을 고치거나, 예언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등 이들의 능력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이들은 종종 높은 존경을 받으며, 종교적 또는 사회적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 때문에 이들은 동시에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의 힘을 조종하는 능력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요소로 여겨졌으며, 이는 공동체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물과 관련된 신비로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의 힘을 조종하려 한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이나 종교적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 중에는 물의 신비로운 힘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물을 통해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해를 끼친다는 혐의를 받았고, 이에 따라 고문과 처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물의 신비로운 힘을 이해하고 조종하는 능력이 어떻게 두려움과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물과 광기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들은 주로 강, 바다, 연못 등에서 서식합니다. 헤시오도스는 오케아노스와 네레우스의 딸들을 대표적인 물의 님프로 묘사합니다. 이들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생명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차 부정적인 측면과 결부되어, 지나치게 어린 나이나 자연스럽지 않은 비정상적인 죽음의 경우 님프들의 소행으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휠라스와 님프들, 1896, 캔버스에 유채, 98.2 x 163.3 cm.

헤라클레스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소년 휠라스(Hylas)는 아르고 호의 모험 중 뮈시아(Mysia)에 들렀을 때 숲속 샘에서 물을 뜨다가 물의 님프들을 만나 빠져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헤라클레스는 아르고 호를 떠나 오랜 시간 동안 휠라스를 찾았으나, 결국 헛된 일이었습니다.

대낮에 님프를 본 사람은 누구나 정신착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은 님프들이 훔쳐 갔거나 죽였다고 믿어졌습니다. 님프는 인간에게 광기와 파괴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파멸을 초래하는 물의 님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데스를 찾아간 오르페우스와 소환되는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는 물의 님프였던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은 후 하데스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죽은 에우리디케를 넘겨주며 함께 가되 지상에 이를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 하데스의 금기를 어겨 아내를 되살리지 못하게 된 오르페우스는 절망과 슬픔에 빠져 그후로 여성을 멀리했습니다.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저승에서 에우리디케를 이끌고 나오는 오르페우스>, 1861년, 캔버스에 유채, 12.3×137.1 cm, 휴스턴 미술관

결국 그는, 그를 유혹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에 분노한 디오뉘소스의 여신도들의 광기에 갈기갈기 찢겨 죽습니다. 죽은 오르페우스의 머리만 노래를 부르며 바다로 떠내려가다 레스보스섬의 여인들에게 발견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래는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소재로 한 회화 작품입니다.]

고대 그리스 ca 440 B.C.
(좌) 장 델빌, 1893, (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 1900
 (좌) 구스타프 모로 작, 1865, (우) 유완 맥로드, 2003

바슐라르의 '물과 꿈'에서는 물이 지니는 상징성과 심리적 의미를 깊이 탐구합니다. 바슐라르는 물이 생명과 죽음, 정화와 파괴라는 이중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그는 물이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우리의 깊은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설명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비극적인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필리어의 죽음은 이러한 물의 이중적 성격을 완벽하게 드러냅니다.

영국 극 배우 머라이어 게일 - 오필리아 역
아, 어쩌면 좋아! 옛날을 보고 알고 있는 이 눈이 지금의 저 모습을 보아야 하다니!
O, woe is me, To have seen what I have seen, see what I see!
오필리어의 독백,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3막 1장

오필리어는 한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말합니다. 그녀는 햄릿이 미치고 고통받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햄릿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랑과 광기, 비극적인 죽음을 경험합니다. 오필리아는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강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장면은 많은 예술 작품에서 수동적인 죽음의 이미지, 아름답고도 슬픈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 1851-1852년, 캔버스에 유채, 76.2 cm × 111.8 cm (30.0 in × 44.0 in), 테이트 브리튼

오필리아가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녀의 삶과 고통, 광기는 물에 의해 정화되기도 하고 영원히 잠식되기도 합니다. 그녀의 죽음은 물의 부드러운 흐름과 맞물려, 그녀의 고통을 덮고 안식으로 이끄는 동시에, 그녀의 비극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단순한 생명의 끝이 아니라,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녀의 감정과 고통이 영원히 흐르는 상징적 순간으로 남게 됩니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물이라는 심리적 공간 속에서 그녀의 삶과 죽음이 재구성되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바슐라르는 물이 깊은 심리적 공간을 열어주는 매개체라고 말합니다. 물은 우리의 꿈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깊은 무의식 속의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오필리아의 죽음 장면은 이러한 물의 심리적 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가 물에 빠지는 순간,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꿈꾸던 것들이 모두 물속에 잠겨버리며, 그녀의 영혼은 물과 하나가 됩니다.


광기의 건축

정신병원 건축의 진화: 인류 역사 속의 미궁과 발전

정신착란과 정신병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감금, 치료, 병원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고대에는 정신적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종교적이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했으며, 그들을 감금하거나 유형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정신질환을 신체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분류 방식에 따르면, 체액의 균형이 기질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체질(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중 어느 하나가 과다하거나 모자라면 정신적인 균형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뇌의 기능 이상과 신체적인 질병이 정신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세에서는 정신적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마녀나 악마와 관련지어 매우 부정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사회에서 격리되거나 처형될 정도로 극단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마녀로 여겨진 여성에게 상처와 모욕을 주며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된 고문 도구
빗자루를 타는 마녀, 15세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기에는 정신병원이 설립되었으며, 초기에는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환자들을 수용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정신병원은 정도가 심각했는데, 그 비극적인 잔해에는 미국의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불편한 역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국가 자금 지원 정신병원은 극도로 과밀했고 20세기에는 종종 악몽 같은 환경에서 환자들을 수용했습니다. 1955년 항정신병 약제인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CPZ, 상표명: Thorazine, Largactil 등)이 도입되면서 이러한 시설은 대량으로 폐쇄되었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폐쇄되었지만 철거되지 않은 이러한 정신병원이 "폐허 포르노"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건물들은 과거에는 정신 질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나, 현재는 그 유령 같은 존재와 함께 사진작가들의 탐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매트 반 데어 벨데(Matt Van der Velde)는 사진집 ‘버려진 정신병원(Abandoned Asylums)’에서 이러한 정신병원 건축의 초기 시기를 포착하여 우리에게 과거의 환경을 상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윤리적 치료와 건축의 변혁

-1800년대 정신병원 설계의 변화와 사회적 인식의 발전

1800년대 중반 이전에는 정신 질환자 치료에서 다양한 질병이 위험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당시 국가가 지원하는 정신과 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불우한 정신 질환자들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구빈원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비참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전문적인 치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18세기의 "미친 사람들"은 결국 자신과 사회에 대한 위험으로 여겨져 감옥이나 사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여러 방향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퀘이커교의 영향으로 정신과에서 윤리적 치료 운동이 대중화되었고, 이는 환자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치료와 규칙적인 일상을 옹호했습니다. 윤리적 치료가 성공을 거두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상은 ‘환경 결정론’이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생활 환경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으로, 건축이 더 인간화된 심리 치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축 환경의 모든 요소는 정신 질환자에게 잠재적으로 치유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고, 정신병원은 환자가 결국 치유되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전담 정신병원이 미국에 새로 생겨났기 때문에 최초의 디자인 중 일부는 영국의 요크 리트리트 센터(York Retreat Centre)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디자인은 맥락과 예산에 따라 조정되었습니다.

요크 리트리트 센터 투시도, Haverford College, Haverford, PA.

빅토리아인들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정신 질환의 주요 원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힘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도시 환경에서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은 이러한 현대적 압박을 감당할 수 없고 결국 미치광이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실행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은 환자를 도시에서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뿐이었고, 최초의 전용 정신병원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지어졌습니다. 여기에는 1880년이 되어서야 의학계에서 폐기된 '미아즈마(Miasma)' 혹은 '장기설(瘴氣設)'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이 이론은 흑사병 등 질병의 발병 원인이 미아즈마(고대 그리스어: μίασμα, "오염")라 불리는 ‘나쁜 공기’에 있다는 주장으로 질병이 정체되고 더러운 공기를 통해 퍼진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정신병원 건축설계에서는 환기가 우선시되었습니다. 이는 입지상으로도 밀도가 높고 오염된 도시는 정신병원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850년대부터 현대까지

1850년대에 교육자이자 로비스트인 도로시어 딕스(Dorothea Dix)가 주정부 자금 지원 정신과 기관을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미국의 정신병원 건축은 고유한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스토리 커크브라이드(Thomas Story Kirkbride, 1809–1883)가 1854년에 ‘정신병원 건설, 조직 및 일반 배치에 관하여(On the Construction, Organization and General Arrangements of Hospitals for the Insane)’를 출판한 후 이 문제는 사회 내에서 확실하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설계에 대한 일련의 지침이 생겨났고, 이는 그 이후 정신병원 설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커크브라이드 정신병원 계획안

미국 곳곳에 커크브라이드가 설계한 일련의 정신병원은 현관, 큐폴라, 기둥과 같은 웅장한 고전적 건축 요소를 통합하여 상류와 하류 계층의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적으로 유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외에도 건물이 시민의 자부심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병원은 불우한 사람들을 향한 지역 사회의 관대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에 기여하는, 자선적이고 종교(기독교)적인 노력으로 여겨졌습니다.

커크브라이드는 외부와 별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장 잘 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선형계획"을 고안했는데, 이는 환자를 성별과 증상에 따라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계층적 병동에 배치하고, 가장 중증인 환자는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방해가 가장 적은 곳에 배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커크브라이드 설계, Mt Pleasant State Hospital (1865년 완공, 2015년 폐쇄)

건물은 부지 전체에 걸쳐 뻗어 있어 모든 실이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접하게 하여 치료 과정에서 환기와 자연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가장 호화롭게 꾸며진 공간은 환자가 방문하는 가족과 어울릴 수 있는 응접실과 예배당이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정신병원을 인간적인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 특징들은 흡음 기능이 있는 카펫, 자연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창문, 신중하게 디자인된 몰딩과 장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커크브라이드 설계, 1865년 완공한 Mt Pleasant State Hospital 실내 사진
커크브라이드 설계, 1853년 완공한 Taunton State Hospital 실내 사진
커크브라이드 정신병원, 사진 Christopher Payne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신병원의 기능과 방식은 현대적인 정신건강 치료의 원리와 기준에 맞추어 진화했습니다. 정신병의 이해와 치료 방법의 발전은 정신의학과 심리치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에는 정신병원은 환자들에게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치료를 제공하며, 정신건강 치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대 정신건강 건축의 변화

후지모토 소우의 정신장애아동치료센터

오늘날 정신건강 치료와 관련된 공간 설계는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대 일본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가 설계한 정신장애아동치료센터는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정신 장애 아동들이 함께 생활하며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장소입니다. 이 센터는 큰 집처럼, 작은 도시처럼 느껴지며, 집의 따뜻함과 도시의 다양성을 결합해 풍성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합니다.

후지모토 소우의 설계는 엄격하고 계획된 디자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지만, 마치 계획 밖에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측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의도치 않은 요소들이 공간에 모호함을 더해줍니다. 상자들이 무작위로 배치된 공간 사이에는 불규칙한 길이 형성되어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형태로 설계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풍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정신장애아동치료센터, 사진 후지모토 소우 아키텍츠

이러한 설계는 아이들이 무언가 뒤에서 숨어 있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뒤에서 쉬기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는 자유로움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공간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으며, 많은 생활 가능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아이들의 정신 건강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키테마 아키텍츠(Arkitema Architects)의 바일레 정신병원 

2017년 2월 덴마크 바일레에 문을 연 새 정신병원은 신체 구속이 50% 감소한 치유 건축으로 인정받아 'European Healthcare Design Awards 2018' 정신건강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병원은 아키테마 아키텍츠가 설계한 공공-민간 파트너십 프로젝트로, 침상 91개, 소아 외래, 정신과 ER, ECT를 갖춘 정신건강 병원입니다. 외래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어, 집중적이고 복잡한 행동 상태를 가진 환자의 치료를 지원합니다.

디자인의 주요 초점은 신체 활동을 장려하고 강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에 맞추어졌습니다. 잘 고안된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건물 전체에 충분한 조명, 자연과 야외 공간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ER 접수와 소아정신과는 외부를 향하게 배치하였고, 입원 병동은 내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1층은 행정과 환자 수송을 위한 순환구조로 구분됩니다. 병원은 숲으로 덮인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작은 정사각형 석조 건물 단위로 자연을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확장시킵니다. 건물은 작은 단위규모로 나뉘어져 있으며, 풍경과 어울립니다.


건축가는 자연광과 인공광에 중점을 두어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유리 패널과 내부 안뜰이 충분한 일광을 제공하며, 24시간 컬러 광선 요법이 환자와 직원의 회복을 지원합니다.

현대 정신건강 치료 공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이는 사회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안된 개념이지만, 철저한 계획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통해 실현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신 건강 치료에서 인간적이고 따뜻한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줍니다.


물은 모든 것이 태어나는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되지만, 그 깊이와 폭발적인 에너지로 인해 종종 광기와 불안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이는 정신병원의 건축적 진화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 정신 병원은 종종 고립과 배제의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그 건축은 환자들을 격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정신 병원은 이러한 접근 방식을 버리고, 환자들을 치유하고 사회적으로 통합시키는 공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정신병원의 건축적 진화를 살펴보는 것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치료 방법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결국 정신건강을 존중하고 치유하는 데 건축이 가지는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최초의 공간들은 거친 파도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로 정신질환자를 둘러싸기도 했지만, 이제는 물이 가진 평화롭고 회복적인 측면이 건축적 요소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현대 건축가들은 자연광, 자연 소재, 그리고 환자들의 심리적 요구를 반영한 디자인을 통해 치료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이 단순히 공간의 형태를 넘어, 환자들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lohafree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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