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정 Jan 18. 2024

상상의 내리막길

내려가본다.

피라미드를 상상하며.


거기 사막 위에 거대한 암석과 같은 오래된 시간의 덩어리가 있다. 건물의 색이 땅의 색과 닮은 곳.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실밥을 뽑는 날, 감사하게도 나의 롤모델이신 어머님께서 친히 멀리 병원까지 나와주셨다. 나의 선생님.


핀셋으로 실밥을 뽑으시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난해에 이집트 피라미드에 가보았다고 하셨다. 몸집이 커서 들어가진 못하셨다고 했다.


눈앞에 있는 그 거대한 시간 덩어리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 덩어리를 젖히고 들어가 옛사람이 만들어 놓은 통로를 따라 움직이며. 바닥을 밟으며. 걸으며. 관찰하며. 차곡차곡 그 모양으로 덩이진 시간을 만지는 느낌이 궁금하다. 그 덩어리의 내부는 현재일까. 과거일까.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라고 하는 기억이 만든 거대한 덩어리를 언어라는 망치를 들고 깨뜨려보려 애를 쓰는 느낌.


그날 돌아와서 아마도 거기.

그리움의 뿌리.

그런 것에서 등을 돌려야지 생각했다가, 아니,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다 캐내어야지, 도려내야지 생각했다.


피해 가는 글

휘청이는 글

뿌리가 얕은 글

잔뿌리로 가득한 글


하다만 생각


느려지는 걸음걸이


생각의 문을 열면 언제나 걸음 빠르게 먼저 흘러나오는 부정의 말과 습관들. 이 모든 것의 반대말을 끄적이면서 난 괜찮다. 난 좋다. 새김질을 계속한다.


다가가는 글

바로 서는 글

깊이 내리는 글

굵게 파고드는 글


끝까지 하는 생각


꾸준한 걸음걸이



난 괜찮다.


난 좋다.


한두달 회복하는 동안 많이 걸으라고 하셨다.

산책을 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