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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물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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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Apr 22. 2024

낙원의 전경을 만든 기술: 궁극적 사치로서 물의 공간

유럽에 전해진 이슬람 정원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중세 이슬람 문화의 고전적 정원 시스템이 어떻게 유럽에 적용될 수 있었는지, 르네상스 이후 크게 발전하게 되는 초기 분수 디자인 및 조각, 그리고 궁전과 빌라 정원에 어떻게 도입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비잔틴 시대 교회 유적(6세기)에 남아 있는 모자이크.

서양 문명에서 물을 유도하는 기술은 공학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기술 발전은 특히 중세 이후 아랍 및 비잔틴 공학 영향으로 발전이 가속화되었습니다. 7세기부터 아랍인들은 서아시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해안 전체, 스페인의 많은 지역을 점차 점령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중해 전역에 페르시아와 비잔틴 정원의 특징이 지중해 전역은 물론 이베리아 반도까지 퍼지게 됩니다.


낙원의 전경 – 잃어버린 9세기 도시 메디나 아자하라의 분수

코란에 묘사된 파라다이스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 정원은 강과 분수가 흐르고, 과일과 꽃이 풍성하게 자랍니다. 이는 무슬림 문명에서 왕실 정원이 모델링 된 방식입니다.

이제 그런 정원의 유적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서쪽 농지에는 메디나 아자하라라는 잃어버린 9세기 도시가 있습니다. 9백 년 동안 그곳은 내전 중인 1010년에 발견되기 전까지는 잊힌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알안달루스의 정점에 있는 이슬람 문명을 보여주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약 950년에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를 위해 지어진 이 도시는 궁전, 모스크, 주택가, 대리석으로 된 목욕탕이 있는 산허리에 펼쳐져 있습니다. 정원은 특히 살펴볼 만합니다. 포장된 산책로가 있는 직사각형의 구획, 수영장이 공급하는 관개 수로, 정사각형 침대에서 자란 식물이 특징인 파라다이스 정원의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초기에 잘 보존된 예입니다.

분수는 많은 정원과 개방된 공간에 대한 중심점을 형성하며, 때로는 로마의 석기로 만들어지거나 장식적인 잎 디자인을 가진 대리석으로 조각됩니다. 이 도시는 납 파이프가 건물, 정원 및 분수로 물을 가져오는 용도로 변경된 로마 수로를 통해 풍부한 물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코르도바 메디나 아자하라의 잃어버린 도시 항공사진


9세기 바그다드 바누 무사 형제의 분수

다른 발전 중에서도 기계 공학은 이슬람 문명의 특징입니다. 시계, 양수기 등 신기한 기계들이 발명되었지요. 분수는 일찍이 9세기에 혁신적으로 바뀝니다.

특별히 분수와 관련해서는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는데, 당시 바그다드에 살면서 수학, 천문학, 역학 분야에서 종사했던 바누 무사 형제들(The Banu Musa brothers)입니다. 이들은 850년에 출판된 책인 "기발한 장치의 책"을 통해 이러한 기계에 대한 지식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 책은 발명품 100개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는데, 그중 일부는 그리스와 로마인의 발견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바누 무사 형제들
바누 무사 형제들의 책에 수록된 분수 설계도

일부는 워터 제트를 특정 모양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는 분수를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책은 백합, 방패, 창 등 다양한 모양의 노즐을 사용하여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형제는 모양을 더 정교한 구성으로 결합하거나 물에서 유도할 수 있는 수력의 균형을 통해 모양을 다른 모양으로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바누 무사 형제의 독창적인 분수 모양

궁극적 사치로서 물의 공간

이 정원들의 가장 특징은 '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막 거주자들에게 '물'은 궁극적인 사치입니다. 사막 거주자들에게 있어 물은 식물이 자라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공기를 식히고 흐를 때는 잔잔한 소리로 귀를 만족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에 여러 모로 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원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수공간, 파이프, 도로 및 웅덩이 등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 이슬람 문명에서는 엔지니어들이 로마, 그리스, 페르시아 구조물을 수리, 확장 및 개선하여 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물은 일반적으로 대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저수공간에 모아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설계된 분수는 물을 계속 흐르게 했고 농업 관개 수로를 닮은 좁은 수로에 의해 공급되었습니다. 물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수공간의 깊이는 얕았지만 파란색 타일을 깔아 겉보기에 깊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

분수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시스템에는 기교가 필요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의 정원에서 발견된 수로를 다수 발굴했는데, 토기나 납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으며, 몇몇 중요한 프로젝트에서는 구리 파이프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파이프가 연결되기 쉽도록 약간의 쐐기 모양으로 짧게 만들어졌습니다. 파이프 연결부의 누수를 줄이기 위해 리넨과 석회로 밀봉한 곳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 덕분에 알람브라 궁전의 사자의 정원에 있는 복잡한 분수가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사자의 정원

여기에는 동그란 분수 둘레로 열두 개의 흰색 대리석 사자가 서 있는데, 각각의 입에서 물이 나와 정원을 가로지르며 네 방향으로 흐르는 얕은 수로로 흐릅니다. 중앙에는 파이프가 있으며, 이 파이프는 물의 수위를 유지하면서 계속 물을 공급합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사자의 정원 스케치

이와 같은 장치들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같은 이슬람 정원을 우아하게 꾸며주는 역할을 합니다. 형식상으로는 헬레니즘식 열주 안뜰과 유사했습니다. 정원은 그늘을 제공하고 뜨거운 바람을 차단하며 보석으로 장식된 사적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하늘을 반영하는 물은 광활한 느낌을 주고 가벼움과 밝음,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선사했습니다. 스페인 코르도바의 무어인 칼리프 영토에는 과달키비르 계곡에 50,000채의 빌라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모두 그러한 정원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정원을 만드는 가장 위대한 시기는 14세기였습니다. 정복자 티무르(1336년-1405년)가 세운 왕국의 수도 사마르칸트(Samarkand) 인근에는 11개에 달하는 왕실 정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귀족들에 속한 다른 정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슬람풍 정원

정원에는 건축 차원에서 전체 계획 내에 건축적으로 구상된 정원이 있었던 반면, 더 광범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티무리드 정원과 그 파생물인 인도의 무굴 정원의 경우, 물, 푸른 들, 나무, 꽃으로 가득하여 오히려 건물이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이들 건물들은 임시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자리한 것이었지만, 공간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정원에 종속되면서 마치 사냥터에 필요에 따라 잠시 펼쳐지는 텐트 공간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또한, 탑이 있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중앙의 궁전, 규칙적으로 배치된 길, 그리고 물탱크 등과 같이 엄격한 레이아웃을 따라 디자인의 정원도 있었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무어 술탄의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에 있는 파티오 드 라 아세키아(Patio de la Acequia).
페르시아 정원에서의 오락과 소풍을 묘사하는 15세기 작품

거대한 정원에서는 사슴과 꿩을 사육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규칙적인 점 패턴(정방형이나 직사각형의 가운데와 각 모서리에 하나씩)으로 심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슬람 정원에서는 어떤 정원에서든 꽃을 아낌없이 사용했으며, 정원 카펫과 임시 가림막으로 사용되는 직물걸이도 꽃무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러한 이슬람 정원들은 돌아온 십자군에 의해 다시 한번 도입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르네상스의 분수들과 군주들이 거주하는 궁의 거대한 정원들로 발전합니다.


역사를 인생에 비유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경쾌하게 성장, 발전하는 때도 있지만 때론 멈추고 돌아보며 천천히 가는 때도 있습니다. 후퇴하는 때도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시간을 역행할 수 없지만, 만약 한다고 해도 쌓아온 기억까지 사라지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라도 흘러간 시간 속 경험과 관계의 기억은 쌓여만 갑니다. 기억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어떤 병에 걸려도, 집안 어딘가에 떨어뜨려 있는 줄은 알지만 당장 찾지 못하게 된 작은 반지처럼-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역행하는 것. 뭐, 소위 말해 잘 나가던 과거의 어떤 때에 비해 못나 보일 수 있는 지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꼭 현명해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퇴행이나 후퇴한다... 그렇게 말하기엔 좀 억울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으니 순간들은 연결, 또 연결되어 인과관계가 있고 흘러간 시간에 성장이나 발전, 잠시 멈춤이나 후퇴 같은 형태와 가치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만, 보기에 따라 지금은 지금대로, 그때는 그때대로- 완전한 모습이지도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린아이의 일상을 어른의 일상과 비교하면서 참 비효율적으로 성취 없이 산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석기시대의 어떤 것과 르네상스 시대의 어떤 것이 다 지난 오늘에서 돌아볼 때 어느 게 다른 어느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하얀 바탕화면 모니터 앞에 만들어지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각기 다른 수많은 그때들의 모습을 비교하기보다, 그땐 그랬고 이땐 이랬구나-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 나에 대해서도, 다른 이에 대해서도 좀 더 여유가 있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하면 청소년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돌아보면 지금의 나와 사뭇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시작하는 때 같아서요. 다섯 살의 나는 기억에는 남아 있어도 그게 진짜 나였나 싶지만, 10대의 나는 지금 나와는 많이 달라도 나의 시작 같은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현대와 많이 다르지만 지금의 모습과 뭔가 비슷한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단 생각을 해보며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시골의 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봄은 달콤 나른하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 이 즈음은 잠시잠깐 온 도시를 투명한 연분홍으로 물들였다 사라지는 벚꽃만큼 짧은 하루이틀이라고 생각했는데, 봄봄.

연녹의 새싹들과 한참을 통통하게 차오르는 꽃망울들. 따스한 햇살과 때때로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은근하게 퍼지는 쿰쿰한 흙내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상쾌한 새벽 공기와 나른한 오후 햇살의 따스함. 해 질 녘 때론 진한 주홍빛으로, 때론 은은한 연보랏빛으로 물드는 하늘. 어둠이 내리면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 키를 낮추면 겨우 보이는 자그마한 풀꽃들이 가진 제각각의 얼굴까지. 봄이 이토록 순진하고 쑥스럽고 매력이 많은 때인지는 여태 몰랐습니다.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실력이 모자라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보드랍고 다정하고 나직한 계절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프리다이빙과 물의 건축 이야기를 전합니다.

  

[알로하 프리다이브]

- 인스타그램: @alohafreedive

- 알로하프리다이브 홈페이지: https://www.kimwolf.com/free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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