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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Apr 30. 2024

지치지 않고 마주하기

상담주간이다.


학생들 부모님과 전화를 하든, 대면을 하든, ZOOM으로 만나든. 충분히 대화하는 주간-

신입생의 경우, 무조건 ZOOM으로 만난다. 학생과 학부모, 교장과 담임교사가 약속한 시간에 접속하여 학생이 준비한 진로진학발표를 듣고 대화를 나눈다.


나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학교에 선생님을 뵈러 오셨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와 아빠. 학교에 와도 엄마가 오셨을 텐데, 엄마의 모습은 기억이 잘 안 나고 아빠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학교에서 본 아빠의 모습을 기억하는 건 두 장면 정도 있다.

한 번은 5월이었던 것 같다. 어린이날이었던가. 스승의 날이었던가. 선생님 요청인지 추천인지 아빠가 우리 반에서 직접 50분 정도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죄송하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가 집에서 이 수업을 준비하던 장면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두 번째로 기억하는 장면은 아빠가 내가 집에 두고 온 책을 비롯하여 온갖 잡동사니를 다 박아두던 학교 사물함 열쇠를 갖다 주시던 모습이다. 그날 난 학교에 아침 7시쯤 학교에 도착했던 것 같은데, 밤 11시,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때라 열쇠가 없으면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자물쇠를 끊어버리면 되겠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집에 전화를 했고, 아버지께서 출근길에 학교에 들려 갖다 주셨던 기억. 엄마 아빠도 지금 나처럼 담임선생님과 나에 관하여 상담을 하셨겠지? 담임선생님은 나에 대해 뭐라고 하셨을까 궁금하다.


내 학생은 열두 명. 신입생이 그중 반 이상이다. 신입생 학부모 상담을 무조건 ZOOM으로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신입생 상담에 교장은 무조건 참석한다. 때문에 그가 수십 명의 신입생 상담에 다 참석하기 위해선 상담시간을 정확히 할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ZOOM이 딱이다. 학부모에게도 이 방법이 좋다. 일부는 주중 업무시간에 시간을 빼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엔 밤 8시, 9시에 상담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교사 입장에선 야간업무이지만, 학부모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투덜댈 수 없다.


30분 동안 진행되는 상담에서, 학생은 몇 주 앞서 준비한 진로진학 발표자료를 화면으로 공유하여 발표를 시작한다. 각 수업 블록에서 어떤 계획을 두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전공과 별도로 올해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계획들도 공유한다. 10대, 20대, 30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말하고 나면 발표 끝.

발표가 끝나면 학부모님들의 피드백을 듣기 전에 내가 학생 생활은 어떤지,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등을 짧게 말씀드린다. 그리곤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학생을 앞(혹은 옆)에 두고 학생에 관하여 브리핑을 드릴 때엔 순간적으로 지난 3, 4월- 두 달간의 시간이 동영상 10배속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지나간다. 웃고 있고 지쳐 있고 장난치고 있고 졸고 있고 먹고 있고 뭔가를 읽고 있고 다가오고 있고 멀어지고 있고 걷고 있고 울고 있고 쳐져 있고 다시 웃고 있고-


내가 본 열두 명의 그 녀석.


/안다/고 할 수 있나.


/본다/는 맞으려나.


'제가 본 OOO는 말이에요...'


말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마음이 웅얼거린다. 교사 이민정은 고민한다. 생각의 흐름에 거름망을 채우고 쏟아져 나오는 웅얼댐에 적절한 단어를 입힌다. 학부모 듣기에 좋은 말로만 선택하진 않는다. 사실을 평가나 감정 없이 최대한 사실대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교사 이민정 아닌 인간 이민정도 동의할 수 있는 표현들을 찾는다. 어렵다. 이 모든 생각이 학생 발표가 끝나고 내가 입을 떼기 전까지의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학부모님들을 대하는 건 처음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을 집중적으로 한 시기에 만나다 보니 공통점을 발견한다. “부모이지만 아이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겸손(?)의 말씀을 한다는 점이다.

겸손... 겸손.

생각해 보면 겸손이 아닐 수도 있겠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히 내가 부모님들보다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긴 하니까-.


그래도 /안다/고 할 수 있나 또 물어본다. 나 자신에게.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잘 아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제삼자이기도 한 내 눈은 객관적인가. 대답하기 어렵다.


지난 목요일 저녁 11시까지 자기주도학습 시간 당직이었다. 목요일까지 일하는 나는 집에 갈 수 있는 목요일을 기다리는데, 당직일이 걸리면 솔직히 싫다. 그래도 감정을 섞지 않는 요령을 터득했는데, 나란 사람이 인간 이민정의 에고를 주장하지 않고, 교사 역할을 수행하는 이민정 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이지만 내가 아닌 것. 역할극을 하는 느낌. 이걸 기억하면 힘든 건 스르르 없어진다.

11시에 당직을 마치고 자고 난 뒤 아침에 집에 갈까 생각했다가 밤 12시에 집에 가기로 결정하고 세 시간을 운전해서 새벽 3시에 도착했다. 그러고 익숙한 공간에서 맞은 금요일 아침!! 너무 행복했다.

그랬는데, 목요일부터 힘들어하던 학생 어머니께서 금, 토, 일 내내 아이 문제로 연락을 하셨다. 업무시간이 아니기에 개인시간을 챙길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행동하기를 선택할 것인가.

난 고민하다가 학생 어머니 마음의 편에 서기로 했다. 대화 중엔 학생 어머니의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느낀다. 학교를 원망하다가, 그래도 학생 마음을 걱정하는 내게 고맙다고 하다가, 자기 아이가 마음 아프고 다른 학생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다가, 자기 아이가 잘못을 했으니 다른 학생들이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하다가- 마음이 커다란 발란스볼 위에서 균형을 잡기를 하는 것 같다. 나도 같이 움직여본다.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달리기를 생각한다. 일찍부터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결승점 끝까지 같은 속도로 가기 힘들다. 초반 구간에 몸이 전에 없이 가볍고 신나게 느껴져도 조심해야 한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고, 호흡을 보며 마음 앞에 선다. 때론 전화기 너머, 때론 카메라 너머, 때론 내 앞 책상 너비만큼의 거리 너머 있는 마음 앞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이 어딘지, 결승점이 어딘진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내 마음도 안전한 곳에서 지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매일 마음 앞에 선다.



- 오늘 아침 달리다가 본 애기똥풀. 이번에 부산에 갔을 때 어머님께 배운 들꽃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조개꽃이다.) 어머님께서 줄기를 뜯으면 애기 똥 같은 노란 물이 나오는데, 그래서 애기똥풀이라 불린다고 알려주셨다.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뜯어보고 나오는 노란 물을 보고 신기해하며 몇 줄기 데리고 왔다. 하루 종일 방 안에 있으면 얘가 심심하고 외로울 것 같아서 연구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더니, 이걸 본 학생들이 모두 "애기똥풀이네요" 그랬다. "어, 맞아. 이름을 아네?! 그럼 왜 애기똥풀인지도 알아?"

잘난 체를 해보려고 물었더니 "그럼요 알죠. 뜯으면 노란 물 나와서 그렇잖아요." 한다.

세상에 이 나이가 되도록 나만 몰랐나. 나만 낯선 곳에 여행 온 느낌.

세상 만물에 이름 없는 것이 없는 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한 나는, 아주 낮은 곳에 피는 자그마한 들꽃의 이름을 아는 이들의 삶을 선망하고 그 앎을 존경한다. 들꽃 이름을 아는 학생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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