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일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준비과정에서 마무리까지 차례차례 정리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 외에도 아버지 고희연의을 함께 하는 자리로 만들기 위해 리마인드 웨딩을 마치고, 아버지가 평소 술 한잔 기울일 때마다 하시는 이야기들을 하객들과 나누었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가훈을 적어가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필자 : 아버지, 우리 집 가훈이 뭐야?
아버지 : 믿음, 소망, 사랑이지
필자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 우리 가족이 서로 믿고 사랑하자는 것이지.
그 후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둘째네 가훈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중간만 가라'이고, 우리 집 가훈은 '절대로 세 가지를 하지 마라'입니다. 아버지도 살아오면서 새긴 좋은 말을 가훈으로 가지고 계시고, 필자도 둘째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말을 가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마 막내도 가족을 꾸리면 어떤 말을 가훈으로 삼을지 궁금합니다.
연어가 태어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듯이 아버지는 어릴 적 자란 강릉 옥계의 산골짜기를 좋아하십니다. 항상 강이 흐르는 곳에서 '나는 자연이다'처럼 살고 싶다고 하시지만 어머니는 절대로 그렇게 못 살겠다고 합니다.
아버지 : 내가 옥계에 봐 둔 땅이 있어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옆에 동굴이 있어서 여름에도 시원해
어머니 : 나는 못 살아! 나이 들면 몸이 아픈 데.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사누
필자 : 아버지 별장 같은 거 하나 지어서 여름 한 철 다녀오시는 것으로 하시지요. 손주들도 산골짜기에 별장 있으면 놀러 다니기도 좋잖아요.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분들이 왜 혼자 사시는 지를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곳에 사시는 것은 힘들더라도 별장이라도 지어서 가끔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고희연 전에 막내를 결혼시켜려고 하였지만, 막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희연이 끝난 후에도 아버지는 막내 보고 '여자를 데려와라', '결혼 날짜를 잡아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생각하시고, 자식들은 아직 건강하다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태극기는 들지 않으셨으나 보수 성향이 강하신 강원도 분이십니다. 박정희가 이 나라를 이만큼 살게 만들어 놓았다 믿으시고, 빨갱이와 좌파를 엄청 싫어하십니다. 문제는 아들 삼 형제 모두가 아버지와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 한잔 기울이시더라도 옆에서 맞장구를 쳐줄 사람이 없으니 아버지가 홀로 외롭기만 합니다.
칠순 잔치에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나이 60에 은퇴를 하신 어떤 할아버지가 '곧 죽겠지'하고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 90세가 되었더랍니다. 90세 생일에 지난 3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너무 후회가 되어서 나이 90세에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나이 백 살에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버지 인생은 70부터입니다. '낼이면 죽겠지' 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사시고, 보고 싶은 거 보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