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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Feb 02. 2019

17. IT 엔지니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40대 엔지니어들이 그리는 미래   

   가끔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엔지니어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잠시 벗어날 수 있고, 남자들의 수다가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술자리의 안주는 정치에서 가십까지, 그리고 엔지니어들의 일상입니다. 엔지니어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30대 엔지니어는 낙관적인 미래를, 40대 엔지니어는 비관적인 미래를 그립니다. 아마도 30대 엔지니어들은 배울 것이 많고, 40대 엔지니어들은 추억거리가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50대 IT 엔지니어의 길은 한국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입니다. 엔지니어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40대를 전후로 영업이나 다른 직군으로 전환하였습니다. 40대 엔지니어들이 바라보는 자신들의 미래는 이렇습니다.


"야간작업이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진다." 
"기술은 짧고, 영업은 길다. 영업으로 갈 거면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한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기승전 닭집이나 커피집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서 내가 알면 이미 낡은 것이다. 평생 공부만 하다 끝난다"


   그래도 나이 많은 엔지니어들의 희망은 남북경협과 통일입니다. 미 개발 지역인 북한이 개발을 시작하면 수많은 남한의 엔지니어들이 다시 필요할 것이고, 자신이 하기 싫다고 느낄 때 은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40대의 엔지니어의 선택지는 적습니다.  



마흔 병 : 불혹의 나이, 끊임없이 흔들리다

   공자님은 남자 나이 마흔은 불혹이라 하여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40대 엔지니어들은 갈대 마냥 흔들립니다. 세상과 IT 기술이 빠르게 변하지만 내가 멈춰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은 그대로지만 내가 변하기 때문일까요?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부릅니다. 군대에서 말년 병장들이 걸린다는 말년병과 40대 전후의 나이에 걸린다는 마흔 병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40대의 사춘기라 불러볼까요? 마흔 병은 무기력증을 동반하며 생각이 많고 과묵해집니다. 사춘기나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지만, 인생의 큰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마흔 병이 심하게 걸린 대표적인 남자는 폴 고갱입니다. 40대 초반에 가족을 버리고 타히티로 날아가서 화가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엔지니어를 할 수 있을 까?

   40 대 엔지니어들은 언제까지 엔지니어를 할 수 있을지를 자문합니다. 엔지니어가 기승전 닭튀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IT의 태동기가 1980년대 초이고, IT 엔지니어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시점은 ADSL 상용화와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된 1990년대입니다. IT 태동기의 엔지니어들은 이미 다른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급격히 증가한 IT 엔지니어들이 40 대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20년 차가 이상의 IT 엔지니어들이 처음 가는 길이기에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40대 엔지니어는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40대 엔지니어가 많습니다. 지금은 50대 엔지니어가 거의 없지만, 10년 후에는 50대 엔지니어가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오래 살 것이고
생각보다 더 오래 일할 것이다.



   하지만 50대 엔지니어의 길은 본인의 역량 강화와 외부 환경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IT업계는 평생 고용이 아닌 사오정과 오륙도가 익숙합니다. 업계가 젊어서 50대 엔지니어의 길을 가본 사람이 거의 없고, 나이 많은 엔지니어의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하는 분위기도 없습니다. 지금 가는 50 대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실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나 회사가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제1 순위의 명예퇴직 대상자가 됩니다. 엔지니어가 구조 조정과 같은 외부 환경 요인은 통제할 수 없지만,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일은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엔지니어를 할 수 있을까?'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만든 질문입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50대 엔지니어의 길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여도 기승전 치킨이 아닌 엔지니어라는 타이틀로 은퇴하는 엔지니어들이 한 명 두 명 늘 것입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40대 엔지니어들이 그 길을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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