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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Jan 29. 2019

14. IT 기업의 일상화된 구조조정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늘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있습니다. 구조조정, 명예퇴직, 정리해고, 희망퇴직, 다운사이징, 조기 퇴직. IT는 다른 산업에 비해 너무 자주 빈번하게 이런 단어들을 접합니다. IT는 너무 빨리 성장하면서 거품이 꺼지고 다시 거품이 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직원 해고와 감원이 매년 일어나는 이벤트가 되었지만,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매년 주위의 사람들이 떠나고 송별회를 하다 보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을 실감합니다.


   기업은 환경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구조를 가지기 위해 고정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합니다. 고정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마지막 선택은 명예퇴직을 통한 인건비 절감입니다. 구조 조정은 회사의 재무적 부담을 줄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많은 외국계 기업들은 저성과자를 퇴출하는 의도로 활용합니다. 외국계 기업들은 하위 5~10%의 직원을 정리 해고하고 다시 뽑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직 내 긴장감과 경쟁을 유도하여 생산성 향상을 유도합니다. 경영에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저성과자 퇴출은 한 번 즈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네 차례야



 

   IMF 이후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이라는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평생직업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잠시 머무르는 곳이므로 기본적인 일만 해내면 됩니다. 직원은 언제든지 퇴사할 수 있고, 회사는 언제든지 정리 해고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노동법 상 해고는 쉽지 않습니다만 희망 퇴직금이나 회유책을 통해 정리해고는 진행됩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은 언제든지 칼날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직원들의 불안감은 직원 간 경쟁과 협업을 저해합니다. 팀원들 간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에는 팀보다는 개인을 우선하게 됩니다. 직원들은 사내 정치와 정보 획득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합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고, 정보를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들 간의 경쟁도 촉발됩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구조 조정 버전이 돌아다닙니다. 소문이 소문을 낳아 이야기만 남고, 사람은 사라집니다. 업무보다 가장 빠른 구조조정 뉴스가 중요합니다. 어떤 직원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직원들의 불안감은 기업에 대한 애사심을 극도로 저하시킵니다. IT 업계는 평생 직업의 개념이 자리 잡은 곳이 많아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직을 선택합니다. IT 업계가 노조가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기업은 회사를 퇴직한 후 재입사를 하는 것이 진급과 보수에 매우 유리하다고 조언할 정도입니다. 회사에는 신입사원이 오래 다닌 분들이 반드시 있고, 그들이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의 문제 - 업무 숙련도 저하

  구조조정 시기에 이런 문제점들은 당연히 발생합니다. 문제는 일상화된 구조 조정은 1년 또는 2년 단위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경영 교과서는 이런 문제는 짧은 시간 내에 조용히 마무리 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길고 시끄럽게 진행됩니다. 반복적으로 시끄럽게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모든 문제점을 가장 크게 증폭시킵니다. 


   첫 번째로 직원들의 전체적인 업무 숙련도의 저하입니다. IT 업계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제품들을 다룹니다. 어제의 지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됩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조금만 게을리하여도 쉽게 뒤쳐집니다. 지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고, 지식을 발 빠르게 흡수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IT 업계에서 엔지니어들은 어느 정도 경력만 갖추면 실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농담도 합니다. 이런 농담은 늙을수록 엔지니어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경력이 적은 엔지니어가 기술은 따라와도 인맥은 따라올 수 없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IT업계에서 기술의 숙련도가 중요하지 않은 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필자는 20년 정도 엔지니어 생활을 하니 어떻게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지 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년 경험의 엔지니어보다 말 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초급 및 중급 IT 엔지니어는 지식을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만, 오랜 경험과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신제품에 대한 통찰력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은 시간과 경험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많은 구조조정의 칼날은 오랜 경험을 가진 직원과 실력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갑니다. 기업은 기술력 확보는 강조해도 기술력이 축적된 사람은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십수 년간 키워온 인재를 한 두 가지 단점을 보고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재 확보는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만큼 내부에서 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IT 기업들은 인재 육성은 등한시하고 외부 인재 영입에 골몰하기도 합니다. 


   과거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장인 정신과 탁월한 직업 숙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신 고용제 때문입니다. 망가진 하드웨어는 새로 만들면 되지만, 시간과 경험의 소프트웨어는 하루아침에 충족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조기 퇴직은 직업 숙련도가 높은 직원을 잃어버립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의 문제 - 뛰어난 인재 확보의 어려움 

   기업의 일상화된 구조조정은 저성과자를 감축하고, 외부의 뛰어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무능력한 직원과 조직의 부적응자를 골라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론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뛰어난 인재만 남아 기업이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80/20 원칙이 있습니다. 개인이 달성한 업무 성과는 업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서 이루 지며, 20%의 인구가 80%의 돈을 가지고 있으며, 20%의 근로자가 기업의 80%의 업무를 한다는 등의 다양한 통계 결과를 바탕으로 한 법칙입니다. 파레토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의 20%에서 발생한다는 통계입니다.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된 조직이라도 20%의 직원이 80%의 업무를 진행한다는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80%의 직원이 도와주므로 20%의 직원이 뛰어난 성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쥐실험에서 10개 집단을 만들어 먹이를 구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일정한 비율로 업무를 분장하고 힘의 질서를 갖추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두머리 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쥐, 먹이를 가지 와서 빼앗기는 쥐 등입니다. 각 집단의 우두머리만 모아서 한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같은 비율로 먹이를 구하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구조조정은 결코 원하는 인재를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능력한 직원을 골라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은 정치력이 모든 것에 우선하게 한다.  

   기업은 구조 조정은 무능력자 또는 저 성과자를 퇴출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희망퇴직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매니저들이 저성과자가 없다면 팀에 피해가 최소가 되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타사로 이직이 예정된 직원들은 천우 일우의 기회로 조기퇴직 패키지를 받습니다. 해고하는 사람과 해고되는 사람이 모두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도 난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실력이 뛰어난 지원일 수록 회사에 실망하는 정도가 크며, 이 들은 빠른 시일 내에 다음 직장을 구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따라서, 미련 없이 조기퇴직 패키지를 받음으로써 나름의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관리자 입장에서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개인의 선택이 단호하므로 받아들입니다. 


   기업이 처음부터 설계했던 퇴출자는 삼순 위입니다. 구조조정의 범위가 크지 못하면 일 순위와 이 순위로 모두 채울 것입니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기업의 역선택을 유도합니다. 또한, 선택된 직원이 정말 저 성과자인지 불필요한 존재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몇몇 관리자들에 의한 판단일 뿐입니다. 쉽게 악용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부족한 시스템의 한계와 관리자의 자의적인 판단은 사내 정치가 힘을 발휘하도록 합니다. 조직의 정치력은 업무 추진을 위한 중요한 능력이지만, 구조조정 단계에 정치력은 매우 변질됩니다. 일상화된 구조조정 단계의 기업은 정치력이 모든 능력에 우선합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일상화된 구조조정이 점점 기업들로 퍼져나가는 듯합니다. 매년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구조조정의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44년)이 떠오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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