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종교적 질문이 아니다.
만일 내가 24시간 후에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까? 막상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답은 단순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속 깊숙이 억눌리고 뒤틀렸던 욕망을 끄집어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억눌린 감정들을 토해냅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생각합니다. 약탈, 강간, 방화, 납치, 등등... 놀랍게도 많은 남자들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상관없이 섹스와 약탈을 떠올립니다. 지구의 종말을 다룬 영화들은 항상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약탈과 방화 그리고 지구 종말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진실을 감추는 정부를 비춥니다. 인간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은 삶을 계속 이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잠시 패닉에 빠졌다가도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것입니다. 물론, 자신에게 금지된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오랜 세월 인간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매우 소수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도 모래도 내년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지금 오늘을 보냅니다. 내일이 없다면 지금은 고통스럽고 슬플 것입니다. 내일이 없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섹스와 같은 쾌락도 짧은 순간일 뿐입니다. 현자 타임이 오면 다시 고통스럽고 슬플 것입니다. "내일이 없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19세기 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간 천재 수학자 갈로아의 삶을 잠시 보겠습니다.
갈로아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천재 수학자입니다. 그는 10대에 수학의 오랜 난제였던 5차 이상의 고등 다항식에 일반 해를 구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밝였습니다. 이과정에서 수열을 수학적 조건에 따라 묶는 방법에 대한 그룹 이론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갈로아는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파리 과학 아카데미로 보냈으나 심사위원이 논문 원고를 분실하였습니다. 다시 제출한 논문은 푸리에 교수가 집으로 가지고 가다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적인 수학 능력을 생전에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갈로아는 죽기 한 달 전 술집 작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와 얽힌 사소한 사건으로 권총 결투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젊은 혈기에 결투를 피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습니다. 1832년 5월 31일에 복부에 총상을 입고 20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공동묘지에 묻힌 그의 무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고 기념비만 남아 있습니다.
갈로아는 결투 신청을 받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이 묵던 술집의 작부와 아름다운 사랑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였을까요? 지금도 인류가 갈로아의 수학적 업적에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수학 논문을 정리하였습니다. 친구 슈발리에게 수학 논문을 편지로 보냈고, 14년 후 프랑스 수학자 리우빌이 그의 편지에 쓰인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역사적에서 사라졌던 갈로아가 수학 업적을 인정받아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진행한 수많은 일 중에 내일도 모래도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생각해 봅니다. 내일 죽는다고 원초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문밖을 나서는 것밖에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직장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합니다.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고 저녁에 하교합니다. 가정주부는 아침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저녁을 준비합니다. 우리는 내일도 모래도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바로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불행한 일, 하기 싫은 일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도, 그리고 힘든 일도 참습니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자신의 마지막 생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출근도 등교도 식사 준비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면서 간혹 인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것을 가끔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시작해서 오늘 끝낼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서 십수 년을 공부하고, 세계 여행하고 싶어서 십수 년 돈을 모으고, 작가가 되기 위해 십수 년을 글을 씁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스치듯 바라보면,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일 조금조금씩 삶의 방향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밖에 없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온 가장들은 마지막 순간에 약탈과 방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곁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죽음보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걱정합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을 쓰고 지웠던 원고를 마무리합니다.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가보지 못한 오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의 죽음 보다
마무리하지 못한 나의 인생의 목표가 더 안타깝다.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원초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이유는 딱히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그 무엇인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있더라도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작했더라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하루를 생각해 봅니다. 하루 종일 원초적인 욕구만을 해결하다 죽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도 부족한 시간이라면 너무 원대한 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루를 확장해 보면, 하루가 남은 것이나 1년이 남은 것이나 10년이 남은 것이나 100년이 남은 것이나 똑같습니다. 생존을 위해 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의 일부는 인생의 꿈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 여유가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매일매일 바쁜 나날 속에서 잠시 인생의 목표를 챙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내일 죽는다면 당신을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을 때, 그것이 자신의 목숨보다 간절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후회 없는 인생을 살다가 죽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수면욕, 식욕, 성욕에 집착하다가 사는 것도 후회 없는 인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를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어제 못 먹은 밥도, 며칠 전 밤샘 작업을 하느라 못 잔 잠도, 몇 년전 헤어진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삶의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다다르려는 곳을 매일매일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목표에 다다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간절합니다. 인생에 걸쳐 꼭 해내고 싶은 그 무엇인가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생존만 하다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생존만 하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