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인하트 Aug 10. 2021

인생은 가끔 덜컹거린다.

포르쉐

   포르쉐를 사야겠다. 포르쉐를 사야겠다. 아끼면 똥된다. 아반떼만 십수년을 타다가 사라질 수는 없다. 포르쉐를 타야겠다. 인생이 덜컹거릴 때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던 포르쉐가 머리속을 맴돕니다.  


포르쉐를 사자




   지난 6월 말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5년 만에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수면마취로 진행하였습니다. 수면 마취에서 깨자 건강 검진 상담 의사는 유암종 사진을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직장에서 직장 유암종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대학 병원에서 재검진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설명하였습니다.  


   필자는 건조하게 이야기하는 의사의 입술을 자세히 바라보았습니다. 감정이 없는 말들 속에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질병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않고 빙글빙글 돌려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서 확답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필자 : 암인가요?

의사 : 유암종은 매우 다양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3차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아보세요. 내시경 사진과 동영상을 CD에 담아드리겠습니다.  

필자 : 어떤 과로 가야 하나요?

의사 : 소화기과요.


   필자는 매년 건강 검진을 하는 방식대로 치과에 들러 스케일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였습니다. 의사의 권고대로 집에서 가까운 상계 백병원의 소화기 센터에 예약을 잡았습니다. 직장 동료에게 큰 용종이 발견되어 재검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몇몇 동료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필자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친한 장 이사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장 이사 : 정확히 결론날 때까지 평소처럼 생활하는 것입니다.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필자 : 하하, 좀 쉬려고 했더니 일을 부려먹는 수작 아닌가?

   

   장 이사의 말을 웃으면서 받았습니다. 듣고 보니 맡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약속된 술자리와 미팅을 그대로 진행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또 아무것도 아녔습니다. 인터넷에 직장 유암종에 대한 글들이 많았지만 자세히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잘 설명해주실 것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7월 9일 상계 백병원 소화기병 센터에서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진을 보자마자 직장 유암종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신경내분비계 종양이라고도 합니다. 


의사 : 90% 확실히 직장 유암종입니다. 1cm 이하는 간단하게 내시경 절제술로 떼어내지만, 환자분의 것은 1cm 보다 조금 더 큽니다. 내시경 절제술이 환자에게 좋습니다. 내시경 절제술로 유암종을 떼어낼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좀 크게 떼어낼 것입니다. 주변을 넓게..

필자 : 위험한가요?

의사 : 절제술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암종의 상태가 안 좋을 경우 직장 근육까지 떨어질 수 있고, 가끔 천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유암종으로 병원을 찾고 제가 내시경 절제술 전문입니다. 

필자 : 집사람에게는 간단한 시술이라고만 하였습니다. 

의사 : 보호자 분에게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보호자 분과 함께 내원하세요. 정확히 알고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검사는 절제 후 1주일 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암'이라는 단어를 매우 아꼈습니다. 암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환자가 엉뚱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의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암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의사와 간단하게 상의 후에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7월 30일 상계 백병원에서 2박 3일간 입원하였습니다. 내시경 절제술은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끝났습니다. 의사는 시술이 매우 잘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음식을 잘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필자는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특히, '아끼다가 똥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십수 년째 아반떼를 타고 다니면서 새 차를 사지 않았습니다. 바보같이 암 진단을 받는다면 포르셰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포르셰를 사서 좋고, 암 진단을 받지 않으면 건강해서 좋습니다.


   결국, 포르셰를 살 일은 없었습니다. 조직검사에서 악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신경내분비계 종양은 40대 후반의 필자에게 잠시 뒤를 돌아볼 기회를 주었습니다. 병이나 사고는 필자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병이 나에게 오기 전에 항상 건강할 줄만 알았습니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지나갔지만,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인생이 예기치 않게 뜻 한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굴곡을 만나서 인생이 잠시 덜컹거립니다. 인생은 이렇게 덜컹거리면서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직장 유암종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망각이 있기에 미래를 보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포르쉐를 사야겠습니다. 아반떼만 타다가 끝날 수는 없습니다.  


   언제가는 포르쉐를 사야겠다



유암종 또는 신경내분비계 종양 관련 내용

   필자는 인터넷에서 유암종 관련 여러 자료를 뒤졌습니다. 직장 유암종은 조기에 발견하여 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직장 유암종의 내시경 절제 : 효능과 추적 임상 경과"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었습니다. 

작은 직장 유암종을 내시경으로 절제하고 절제한 종양이 음성이면
단기 재발의 발생 빈도는 낮다


   논문에서 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한 직장 유암종 환자  255명을 추적 관찰하였고, 절제한 종양이 양성인 경우는 18.4%이고, 나머지는 음성이었습니다. 음성 환자 중에서 추적 관찰을 시행한 54명의 환자들은 모두 재발이 없었습니다.  좀 더 자세한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