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은 말하고 선은 속삭인다

지금이 사라지기 전에

by lineteller

1940년 무렵 내가 사는 동네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일본인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동네 꽃할머니의 말이다. 1945년 해방되던 해 일곱 살이었다는 할머니는 그날이 어제인 것처럼 80년 전 얘기를 한다. 큰길 가에서 만나는 날에는 여기는 누구네 쌀가게, 여기는 사와무라네 문방구(문구의 품질이 그렇게 좋았다고 덧붙이며), 옷 가게, 자전거 가게가 있던 자리를 하나씩 가리키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꽃할머니의 얘기는 실감 나지만 정작 돌아서면 어린 시절 종이컵에 구멍을 뚫어 연결한 실을 통해 얘기를 나누고 난 뒤처럼 희미해진다. 혼자만 기억하는 어제, 여전히 보내지 못한 과거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 꽃할머니 집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과 만난다. 봉황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트막한 산. 낮다고 무시하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드물지 않고 깊지 않은 산세에 곰굴마저 숨어 있다는 신비한 산. 봉황산의 남쪽 초입 언덕에는 1920년 대에 지어져서 세무서장 관사로 썼다는 집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무서장 정도 되면 제법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을 텐데 지금 남아있는 모습만 봐서는 본토에서 출세하지 못한 귀족 자제나 인텔리가 그때만 해도 기회의 땅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을 조선에 부임했던 게 아닐까 싶다. 소문에 비해 험한 풍토, 가혹한 날씨로 제법 고생했으리라.

일제_세무서장 관사였다는.jpg 일제 강점기 세무서장 관사였다는 집

꽃할머니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야반도주해 사라진 일본인 얘기도 자주 한다. 살림살이며 큰 짐들은 가져갈 수 없으니 이웃에 사는 조선인들에게 주고 간 사람도 많았다며 악한 감정보다 쫓겨가는 사람들의 고달픔까지 얘기해주려고 한다. 그들도 사람이었다고, 모두가 악인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아직 화해하지 못한 이웃의 손을 양손에 붙들고 맞잡게 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자기 삶의 일부였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당한 이들의 억울함을 다독이고 떠난 이들의 황망함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세무서장 관사였다는 집은 북서풍은 봉황산이 막아주고 범람하는 제민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높은 자리에 정남향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1900년대 내내 대부분의 집이 초가집이거나 일본인 공무원, 사무원이 사는 적산 가옥이었다고 전한다. 그런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이 집은 얼마나 큰 집인가.

사실 이 집을 그릴 때만 해도 누군가 이 땅을 사서 금세 집을 헐고 새집을 지을 줄 알았다. 예상을 비웃듯 그 자리에서 한 살 더 먹고 앉아있다. 생각해 보면 세무서장 관사가 있었으면 근처에 경찰서장, 법원장, 총독부 지부장 같은 사람들 관사도 근처에 모여있었을 텐데 다 헐려서 사라진 걸까. 남아 있는 게 없으니 기억할 수도 없다. 기억할 게 없으니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는다.


선들은 속삭인다. 작게, 나지막하게, 저희들끼리 귀엣말을 하다 흩어진다. 그런데 선이 둘이 모이고 셋이 모이면 면이 된다. 면은 말한다. 내 귀에 들릴만큼 크고 생생하게, 그날을 이야기한다. 아직 잊기에는 이르다고, 기억하라고 쉬지 않고 말을 건다. 그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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