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

언젠가 우리 다시 여기에서

by lineteller

매년 늦가을이면 어딘가에서 무리 지어 날아오는 기러기를 본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멀리서 온다는 건 안다. 기러기는 큰 새다. 새는 하늘을 난다. 가깝게는 수백 미터에서 멀게는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기도 한다. 그런 새를 날게 하는 깃털은 새의 무게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가볍다. 깃털 한 장을 보자. 얼마나 하찮은가. 작고 가볍다. 그들은 어떻게 그 먼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까. 아직 추위가 다 가시기 전 떠나는 기러기들은 시린 바람을 어떻게 이길까.

새의 깃털은 손으로 만든 벽돌 같다. 비슷한 모양이지만 저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아니다. 오히려 정밀한 계산을 구현한 과학이나 공학의 정수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한 장씩 맞물려 이어졌을 때 완전하게 기능하는 로봇이나 복잡한 기계 부품에 가깝지 않은가. 고요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이름 모르는 새에게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있다. 한참이나 바라봐도 날갯짓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방향을 바꾸고 빙글빙글 돌고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자유자재였다. 베테랑 조종사처럼 날개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움직이는 새를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엉망진창. 대신 벽돌이나 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한 장은 하찮아도 여러 장이 모여 벽 하나 혹은 건물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소재를 그리는 게 좋았다.

홈 바운드.png 홈바운드_공주 2019

홈바운드가 사라진 지금 가장 아쉬운 걸 얘기해 보라고 하면 '있을 때 더 많이 가지 못한' 아쉬움을 풀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자주 갈 생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할 수는 없겠다.

좋아서 자주 가거나 자주 가다 보니 좋아지는 경우 말고도 좋아하지만 자주 가지는 않는다거나 자주 가지는 않지만 좋아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적으면서 스스로도 이상한 말 같은데 그게 진심이라 어쩔 수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약간 거리를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거나 가끔 가도 변함이 없다거나 하는 데에서 생기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싫은 이유보다 좋은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왜일까.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는 일에서 이유를 찾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복잡하고 미묘한 어떤 조화가 있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그냥 별 이유가 없어도 좋은 느낌인 건데 이유가 없다고 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거짓말이나 변덕처럼 받아들여질까 봐 겁이나는 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아쉬움으로 남겨두는 일. 선을 그리며 늘 겪는 익숙한 일이다. 극복하거나 이겨내거나 더 잘하려고 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벽돌이나 타일은 어떻게 생겼는가. 거의 네모다. 네모에 약간 음영이 있거나 평평하게 줄눈으로 구분되거나 변수가 많지 않다. 때로 벽돌과 타일은 구분하기 어렵다. 멀리서 보거나 화질이 선명하지 않은 사진에서 둘은 곧잘 뒤섞이는 것이다. 섞여 보이는 건 섞여 보이게 그린다. 섞여 보이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채우고 쌓는다. 집을 짓거나 담장을 쌓는 사람들처럼 아래에서 위로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다른 쪽으로 촘촘하거나 성기게 그려나간다. 지금 생각이지만 어쩌면 내가 홈바운드를 좋아했던 건 건물의 소재와 분위기가 사장님의 태도나 응대 방식과 잘 어울려서가 아닐까 싶다. 반듯하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쌓아 올릴 만큼의 시간과 경험이 묻어나는 분위기 말이다.

홈바운드_안

1층에는 테이블 두 개와 합판으로 된 긴 의자. 2층은 방 하나에 하나 혹은 두 개를 둬서 네 개. 효율이나 수익의 극대화를 욕심내지 않는다는 명확한 메시지. 복잡하고 번화한 대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home bound) 사람들의 편안함이 있었다. 안에서 내다보면 건너편에 목욕탕 보였다. 드물게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노인들이다. 하긴 목욕을 누가 한낮에 하나. 새벽같이 다녀가거나 저녁에 들르겠지. 40년 넘게 영업했다는 목욕탕은 누군가에게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린 날, 처음 아빠나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서던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함께였다면 목욕탕에서 만난 이웃에게 한창 자란 손주들을 은근히 자랑하는 상황이 왠지 모르지만 부끄러워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온탕에 들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문 모를 가려움에 시달리다가 나중에야 가벼운 화상 탓이었음을 알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미워했을지도.

홈바운드를 알게 된 건 상상하기를 그만둔 후였다. 눈에 보이는 건 일감으로 몰려드는 책 속에 가득 찬 글자와 작성해야 하는 문구 혹은 문장과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던 실수가 두렵던 나날이었다. 누군가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던데 선 속으로, 시선 속으로 도망치는 방법을 알게 된 후에는 그 말을 부정하게 됐다. 내가 도망쳐서 찾아가고자 하는 곳은 낙원이 아니었다. 낙원은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았다. 다만 한숨 쉬어갈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의자 하나를 찾아 잠시 쉬는 게 그렇게 힘이 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에 쫓기고 있던 걸까.

똑같은 모양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날갯짓으로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본다. 사람의 눈에 구분되려고 하지도 않고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높이 나는 새들. 새들이 향하는 곳은 고향일까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이방일까. 먼 길을 날아가려고 가벼운 깃털을 달고 벽돌보다 단단한 날개를 펼쳐 떠나고 돌아오는 새들. 어쩌면 나는 매일 새로운 홈바운드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사람들과 돌아왔다 떠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매일 이어지고 나날이 쌓여가면서 멀리서 보면 별 것 없는 그런 시간을 더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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