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면 사이 그 어디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이렇게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될 줄 몰랐다. 적어도 20번 넘게 이사를 했다고 하면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드물지 않았다. 짧게는 두 달, 길어도 3년을 한곳에서 지내지 못했다. 심할 때는 한 집 건너 다음 집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불과 7년 전에는 동네 고물상 아저씨에게 리어카를 빌려서 이사한 적도 있다. 반년 정도만 쉬다 가야지 하고 구한 집이 너무 추워서 이사를 고민할 무렵이다. 짐 대부분은 서울에 두고 왔기에 책 몇 권, 테이블 하나, 작은 냉장고, 옷이며 이불 조금이 전부였다.
새로 이사한 집은 대저택이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대저택이니 뭐니 호들갑이냐'하겠지만 다섯 평 집에 살다가 50평 집으로 이사하면 그런 기분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층 집인 줄 알았다가 삼층에는 다락이 있고 작지 않은 지하실까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영화를 많이 안 봤는데도 집안 어딘가에 환영하기 힘든 사람이 숨어 살거나 아무도 없는 게 분명한데도 어디선가 인기척이 난다거나 하는 상상이 자꾸 떠올랐다.
이 집에서는 다섯 달을 살았다. 네 달이었던가. 확실하지 않지만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집을 구해 나왔다. 여기서 살게 된 건 기이한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사실 나는 천변이 가깝고 방세가 싸서 구한 집에 큰 불만이 없었다. 그 가격이면 그러려니 했으니까. 문제는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제기했다. '너무 춥다', '너무 불편하다', '집으로 임대할 수 있는 건물이 맞느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만한 환경조차 적응해 버리는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주변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그 시기에 알게 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집 있으면 소개해 달라'라고 했던 게 시작이다. 여기저기 얘기를 하고 다니는데 이삼일 됐을까, '아는 분에게 집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기로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 가보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설마 공짜로?'
의심스러웠다. 세상에 자기 집을 무상으로 쓰라고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선사업가도 그러기 힘들지 싶었다. 그런데 있었다. 그런 집도 그런 사람도. 당사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무상 임대를 받았다는 분은 '원하면 들어와서 살라'고 했다. 심지어 보증금은 물론 월세도 없었다. 그냥 살면서 나오는 난방비와 전기 요금만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사집 센터에 맡기기엔 너무 초라하고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하기엔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고 해서 결국 떠올린 것이 고물상 아저씨다. 비용은 박카스 한 상자와 이 만원이 들었다. 모든 짐이 한 리어카에 다 실렸다. 그것도 놀라웠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2층 방 한 칸을 쓰기로 했다. 집이 너무 넓어서 보일러를 따뜻할 만큼 돌리면 가스비가 많이 나올까 봐 난로도 하나 샀다. 난로를 샀지만 너무 많이 틀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 아껴서 틀었다. 직전에 살던 집도 2층이었다. 다만 같은 건 2층에 살게 됐다는 것뿐 다른 건 다 달랐다.
천변 집 1층은 유령 사무실이었다. 임대는 되어있지만 지역에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주소지 기능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2층은 가건물이었다. 홑창에 얇은 샌드위치 패널로 둘러쳐진 다섯 평 남짓한 '창고'. 나중에 다른 일이 생겨서 계약서를 자세히 보고서야 2층은 주거용으로 임대할 수 없는 창고였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잘 지냈기에 이번 집도 문제없을 줄 알았다.
첫 달은 모험하는 기분으로 지냈다. 3층 다락과 지하실에서 커다란 기름탱크를 발견했다. 도대체 기름이 얼마나 들어갈지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였다. 다락에 있는 기름 탱크가 더 작았는데 그것도 길이가 3미터 정도에 지름도 1.2미터가 넘었다. 원기둥 부피 공식을 적용해 보면 대충 나오겠지만 아무튼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다음 달이 됐다. 하루는 집을 소개해 준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스요금이 나왔다는 요지였다. 금액이 무려 30만 원. 웬만하면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나와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살짝 절망할 뻔했다. 그렇게 춥게 지냈는데 그만큼 나오면 따뜻하게 지냈다면 도대체 얼마가 나왔을 거냔 말이다. 갑자기 작고 춥던 옛집이 그리워졌다. 그러고도 세 달은 더 살다 나왔다. 그 일이 없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불편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이다. 원래 집주인이던 의사 선생님이 가끔 집을 둘러보러 다녀가신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집주인이 누구랑 같이 사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집주인은 더 자주 집을 보러 왔다. 기분 탓일지 몰라도 나는 점점 불편해졌다. 결국 네 달이었나 다섯 달만에 그 집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 후 무상 임대를 받았던, 나에게 대저택에서의 삶을 경험하게 해 준 분도 그 집을 떠났다.
지금은 집을 비워줘야 하는 걱정이나,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일 없이 안정된 주거 생활을 누리고 있다. 대신 흰 종이 위에서 선과 면 사이에서 길을 잃는 일이 늘었을 뿐이다. 마지막 몇 번의 이사 경험은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겼다. '어디서 살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같은 질문부터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가 드는가', '얼마나 넓은 집 혹은 어느 정도 작은 집이 적당한가' 같은 현실 문제까지. 사실 나는 지금껏 살았던 집들이 나름 적당하고, 그럭저럭 적응할만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적어도 집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은 적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는 거지만 삐뚤빼뚫한 선도 참을만하고, 반대로 그린 구도조차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있던 이유가 그런 적응력 아니었을까 싶다. 거의 모든 적응은 약간의 시간과 다시 약간의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자를 대고 그린 반듯한 선보다 숨 쉬다 흐트러진 선이 더 내 삶 같은 건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