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만드는 저자의 블라인드
글쓰기의 익명성이라고 하고 싶었다가 아니다 싶다. 요즘 자꾸 글쓰기가 대두되고 물론 화두가 된 지는 몇십 년이 넘었지만 글은 결국 쓰기 과정이라기보다 독자에게 보이는 완성체, 결과물, 글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동안 내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손가락이 키보드를 치다가 잘못 쳐서 지우고 그런 과정은 전혀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뉴미디어 시대에 행간을 읽는다는 것이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사실 그 정도까지는 읽을 필요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글도 읽기에 벅찬 시댄데.
친한 후배 하나가 브런치 작가라고 했다. 반가워서 그럼 알려달라고 나도 읽어보고 싶다고, 숨은 행간은 그러니까 나도 읽어줄 테니 너도 나를 구독해달라 하는 꼰대스러운 품앗이를 품고 던졌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아는 사람이 읽는 거 싫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만 쓰는 글이거든요."
망치로 땅 맞은 것 같았다. 우와 신세기적 잘난 체와 개무시 스킬이네 싶으면서 은근히 부러웠다. 나처럼 독자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면에 깔고 있는 젊음이 가진 건방진 자신감이 능력 같아 보였다. 다니는 직장과 무관한 글을 쓰기에 직장 관계자가 보고 혹시 꼰지를까봐 걱정된다 같은 건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멋져 보인다. 역시 90년생은 온다. 그리고 왔다.
반성한다. 난 내 글을 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지나가는 누구라도 어쨌든 많이 봐주기만을 빌고 또 빌어 구걸하는 사람인데 글로 밥 먹는 것도 아닌 후배는 저렇게 당차게 익명성을 강화하면서도 나름 잘 나가는 듯 보이니 나는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글의 익명성이 저렇게 멋있는 것이다. 멋있는 익명성을 추구하지 않은 멋없는 나의 글쓰기 아니 글을 반성한다.
하기는 나 역시 나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런치 독자 말고는 거의 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읽는 것이니 의도치 않는 익명성이 있긴 하다. 누가 봐줄까만 그래도 한밤에 누군가 라이킷 했다는 알림이 뜰 때 기적을 믿게 된다.
익명성 참 좋다. 여기에 뭐든 써놔도 당장 나를 특정하여 무언가를 빌미로 잡아가두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그러나 한편으로 익명성 참 서글프다. 내가 낸데 하는 것이 글이고 자기를 팔아 남을 사는 것이 글인데 그걸 왜 굳이 가리고 감추며 봐라 하는 걸까. 나는 자신 있게 내 이름 드러내고 많이 봐주시오 하고 싶은데.
수천 년 전의 동굴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는 익명성의 최정점이다. 익명성 덕분에 그 글이 살아남았고 결국 시대를 초월하는 명문이 되었다. 저자의 블라인드가 보장되어야 진심이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익명성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다. 나도 익명성을 좀 가져볼까. 저 아는 분들 모른 체 좀 해주세요. 저 곧 책도 나오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 책이라고 생각하고 좀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