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중 Oct 07. 2020

첫날밤, 데뷔의 설렘, 두려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쓴다

천신만고 우여곡절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너무 기뻐서 당황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처음에 떨어졌을 때는 내가 떨어지다니, 감히 나를 떨어뜨리다니 그런 마음이 더 커서 삐친 마음에 안 한다고 돌아섰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깝기도 하고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어디 가서 글 못쓴다는 소리 안 듣고 살았는데 브런치에 떨어지다니 싶었다. 첫사랑에 차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재도전에 절치부심한다고 생각했으나 속마음은 사실 될대로 돼라 였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가석방에 10년마다 도전하는 브룩스는 면접에서 성실하게 살며 반성하겠다는 모범답안을 낼 때마다 미역국을 먹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가석방을 포기하며 될 대로 돼라 발언을 하는 순간 석방된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브런치 재도전에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역할을 한 배우 모건 프리맨을 벤치마킹했고 결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합격의 기쁨에 밤을 새우며 선배 작가들의 기출문제를 훑어보다가 뭐라도 하루 한 개는 꼭 올렸는데 대박이 났다는 경험담을 보고는 역시 그걸 지금 따라쟁이 하는 중이다. 물론 지금은 과한 욕심이 끼었으니 이 도전은 브룩스의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지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퇴근하고 아이와 놀아주라는 마누라의 잔소리에 놀아줄 방법을 아무것도 모르는 한심한 나는 그저 아이를 안고 그냥 같이 거실 매트를 뒹굴었다. 할 말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그냥 우리 똘똘이 너무너무 사랑해 만 반복하며 안고 데굴데굴 구르며 입을 맞추고 배를 문질러댔다. 그게 나의 무식한 아빠 사랑이다. 포유류니까 적어도 안아 주고 좋은 말 해주는 게 나쁘지는 않겠지. 생활의 필요와 부족함의 공급은 오롯이 엄마 몫이니까 나는 그냥 아이에게 내 하고 싶은 헛소리만 해대는 게으른 아빠다. 뭐 어때 사랑한다는데 예쁘다는데 너무 좋다는데 귀엽다는데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말들이잖은가.




그렇게 데굴데굴을 꼴랑 십여분 할까 말까 하고는 아내가 차려주는(정확히는 아이에게 차려주며 나보고 숟가락만 들고 같이 먹으라고 하는) 밥상을 받아 맛나게 비운다. 오늘은 아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는 불고기였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인생, 서럽지 않다. 아내의 불고기는 오롯이 아이 입맛에 맞춘 거라 단짠단짠의 향연이라 누구나 호불호 별로 안 갈리는 초딩맛 불고기이다. 그래서 좋다. 아이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한다. 아내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럼 됐지. 그게 소확행이지. 


집 앞 식육점에서 고기를 1~2만 원 치 사다가 불고기 해 먹으면 두 끼 정도는 풍요롭다. 그래서 다시 내일 출근할 힘을 얻는다. 내일도 놀아주라고 하면 그냥 아이를 안고 데굴데굴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울 것이고 그래도 하나 쓰고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데뷔했고 첫날밤을 보냈고 두려움이 섞인 설렘을 즐기게 되었다. 내일 또 보자 브런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