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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Oct 12. 2020

낙동강으로 만들어진 사람

강을 마시고 강에서 놀고 강으로 산다 - 4대 강에 대한 현실적 고찰


  대구에 살기에 낙동강은 생활이다. 당장 수돗물을 틀면 낙동강이 흐른다. 집도 마침 낙동강에서 멀지 않다. 차  몰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강을 만난다. 바로 4대 강 사업으로 환골탈태한 낙동강 사문진의 강정보이다. 강정보에는 낙동강의 시그니처라고 하는 지역 명물이 있다. ‘디아크(The ARC)’라고 하는 예술성을 지닌 건축물이다. 떨어지는 물방울이나 고래 형상 등 다양하게 보이는 곡선으로 된 건축물은 직각 일변도인 보통 건물과는 다른 유선형의 독특한 형상으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밤이 되어 초록, 분홍, 보라 등 색색으로 변하는 조명을 받으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 안에는 미술 전시관과 체험관 등이 들어서 문화의 길을 넓히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도 있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게다가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강을 한눈에 내려다보면 가슴이 확 트이며 호연지기가 실감이 난다.


  4대 강 개발 사업으로 낙동강이 넓어졌다.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논란이야 얼마든지 있고 무엇이 정확히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이 넓어져서 제대로 된 강으로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환경 문제를 말하지만 예전에는 강 유역에 쓰레기가 훨씬 더 많았고 말도 못하게 지저분했다. 사실 몇몇 유역은 강물보다 모래가 더 많고 물도 얕아 제대로 된 강인가 싶은 곳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강의 어디든 눈에 시원하게 가득 차고 비라도 좀 내린 다음 날이면 콸콸콸 흐르는 물줄기가 스펙터클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마치 나일강의 범람 같다. 그 넓은 강이 만든 유역은 드넓은 광장이 되었다. 강정보 광장은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정평이 나 있다. 어쨌거나 강을 넓히고 손보는 공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구는 어디 놀 만한 제대로 된 관광지가 하도 없어서 이것 하나만 해도 큰 위안이 된다. 대구 사는 사람은 다 공감할 현실이다.



  낙동강이라는 거대한 강이 없었다면, 또한 그 강을 넓히지 않았다면 이렇게 넓은 광장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강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강물보다 모래가 너무 많았고 군데군데 지저분했다. 굽이마다 강 같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볼품없었다. 그런데 그 강이 휘돌아나가는 굽이에 거대한 물길을 내고 유역이 넓어져 멋진 관광지가 되었다. 강정보의 상징으로 디아크가 생겼고, 주변으로 자전거길이 시원하게 가로지른다. 워낙 광장이 넓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탈것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지금은 명물이 된 카트, 왕발이라고 부르는 바퀴가 큰 모터사이클, 전동 킥보드 등 동력이 있는 것들을 빌려 타는 명소가 되었다.



  물론 광장에서 아이들의 자전거나 킥보드, 인라인스케이트 등 레저스포츠도 활발하게 즐길 수 있다. 드넓은 잔디밭도 있어 시민들이 강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고 텐트를 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강정보의 명물인 즉석에서 끓인 라면을 맛보고, 닭꼬치로 먹방을 찍을 수도 있다. 시원하고 상쾌한 강바람이 불 때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연을 날리며 웃음을 나눌 수 있다.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활기차게 강정보는 사시사철 산책로가 되며 휴양지가 되고 맛집이자 운동 장소가 된다. 진짜로 대구에 이만한 곳이 드물다.



  낙동강은 대구시민의 젖줄이다. 우리는 낙동강을 마시고 낙동강을 느끼며 산다. 강정보에 갈 때마다 강이 있어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대한 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천혜의 광장과 시원한 자전거길, 더위를 식힐 바람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놀릴 넓은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한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어디에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답답했다. 그래서 코로나 19가 조금 수그러들어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대구시민들은 앞다투어 강정보를 찾았다. 텐트를 치고 한낮의 더위를 피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여가를 보냈다. 하늘에는 색색의 연이 날았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상쾌한 바람을 맞았다. 눈부신 햇살이 있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고 선선한 저녁을 즐겼다. 강의 분위기와 강의 냄새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강정보에서 사람들은 드넓은 강의 품에 안겼다.



  “아빠, 내일도 강정보에 가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주말마다 강정보에 가자고 조른다. 거기서 텐트를 치고 강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아빠가 기분이 좋으면 닭꼬치나 라면 정도는 사줄 것 같으니 가는 게 무조건 득일 것이다. 막내도 강정보가 그저 좋단다. 아빠와 연을 날리고 킥보드를 타고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니 마냥 신날 것이다. 두 녀석이 굳이 조르지 않아도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강정보에 갈 것이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연을 날리며 잠시나마 자연의 품에 안길 것이다. 디아크 전망대에 올라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늘 곁에 있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과 고마움을 생각지 못하는 낙동강 어귀를 바라보며, 저렇게 의구하게 나를 위해 흘러주는 강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강바람이 폐 속에 스미어 들어 나의 온몸 구석구석에 상쾌함이 퍼져갈 것이다.




  옛 시인의 말을 빌려 나를 키워준 건 팔 할이 낙동강일지도 모른다. 낙동강을 마시고 낙동강으로 몸과 마음을 씻고, 낙동강 바람으로 마음을 달래 왔다. 강정보에 가면 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나의 갈증을 채워주는 낙동강 물이 몸의 70퍼센트를 차지한 나는, 낙동강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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