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L가 M 사이즈가 되면 더 건강해지나요?

자기 혐오 없이 비만을 벗어나는 방법

by 운동지도자 앤지


우리 스튜디오에는 외국인 회원분들이 많다.


국적 만큼이나 회원님들의 성향도, 라이프스타일도, 몸도 다양하기 때문에 외국인 회원님들을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다. 그들은 나의 세상을 더 넓혀준다.


작년 9월, 한 외국인 회원님이 우리 스튜디오를 찾아주셨다. 신발을 벗고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는 연신 'Sorry'라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한데, 탈의실이 어디인줄 알 수 있을까?
미안한데, 화장실을 사용해도 될까?
내가 운동을 거의 안해봐서, 미안.
미안,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하네.


A는 운동을 배우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100kg가 넘는 비만으로 걸을 때 발과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결심했지만, 선뜻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센터에 등록하기 두려웠다고 했다.


우리 센터도 몇 달을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보다가 분위기가 따뜻하고 본인처럼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것 같아서 용기내어 찾아왔다고 이야기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긴장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조금은 걱정되는 눈치였다.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에게 사회는 가혹하다. 그 사람의 유전적 형질, 자라온 환경, 심리적인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쉽게 그들이 게을러서 과체중이 되었다고 비난한다.


상대적으로 비만인 사람이 많이 없는 한국은 특히나 더 그렇다. 백인에 비만인 그녀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눈길을 받았을지 생각하면 위축되어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기초적인 체력과 움직임을 체크하기 위해 그녀에게 한발로 서기, 스쿼트, 롤다운, 흉추회전 같은 간단한 동작들을 시켜보았다.


그녀는 한발서기 같은 기본적인 동작을 하면서도 자신없어했고, 실제로 한발로 서서 반대다리를 들고 있는 것도 꽤나 힘겨워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얼마나 못하는 수준이야?
나보다 못하는 사람… 본 적 없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타고난 체형이나 생활습관에 따라서 누구에겐 엄청 쉬운 동작이 다른 사람에겐 어렵기도 해. 너에게 쉬운 동작이 다른 사람에게 엄청 어려운 경우도 있어.


그러니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니가 얼마나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가 오늘 너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그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거야. 너가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운동을 시작할 때, 그녀는 나에게 자신과 운동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센터에서는 운동영상을 얼굴을 가리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것에 허락을 구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동의한 회원들의 영상만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있다.)


얼굴은 나와도 되지만, 자신의 몸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나와 운동을 시작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녀와의 세션이 매번 기대됐다.


우리의 세션은 늘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로 시작해 ‘한 번 해볼게’ 를 지나 ‘맙소사 내가 이걸 해내다니’로 끝났다.

그렇게 운동에 재미를 붙히면서 3개월이 지난 후엔 레슨을 주 3회로 늘리게 되었다. 처음엔 의자에서 천천히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던 그녀가 1년이 지나자 점프스쿼트를 하고, 케틀벨스윙을 하고 푸시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 사이 그녀는 30키로 가까이를 감량했고, 가벼워진 몸으로 더 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다. 어제 그녀가 하는 케틀벨 스윙 동작이 너무 아름다워서 촬영해서 카톡으로 보내줬더니,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 내가 인스타에 내 운동영상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이제 올려도 좋아! 나는 상관없어.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그녀가 체중 감량을 한 건 운동 때문은 아닐것이다. 운동은 다양한 질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가 더 ‘건강’해질 수 있게 도와주지만, 결국 식단과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은 내 몸에 대해 더 이해하고 내 몸과 나를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운동으로 만든 건강한 몸을 조금 더 유지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조금 더 많이 활동하고,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고, 몸에 나쁜 음식들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이 건강의 선순환이 복리처럼 쌓이면 어느새 살이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선순환의 해피엔딩은 내가 드디어 내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A는 체질량 지수로 보면 여전히 과체중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더 이상 대사질환이 없고, 관절이 아픈 곳도 없다. 그리고 본인의 몸에 대해, 본인의 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체질량 지수만으로 그 사람의 건강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와 똑같은 몸무게의 과체중이더라도,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운동은 전혀하지 않고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자주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 A와 똑같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은 체질량지수보다 더 많은 걸 포함한다.


다이어트를 한 모든 회원이 다 A 같아지는 건 아니다.


B 회원 역시 무릎 통증 때문에 센터를 방문했다. B는 과체중이었지만, 비만의 단계는 아니었다. 또한 본인의 외모에 큰 불만도 없었으며 체중 감량의 목적도 외모가 아닌 오직 무릎 통증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체중감량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운동과 식단을 병행했다. 식단을 할 때 내가 그녀에게 강조했던 건 음식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두가지를 그녀에게 강조했다.


평생을 지속할 수 있는 식단이 아니라면, 시도하지 말 것 : 탄수화물을 안먹거나, 고기만 먹거나, 칼로리를 제한하는 식의 식단은 오래 지속할 수 없고 결국 지쳐서 포기하면 다시 요요가 오게 된다


배고프게 먹지 말 것 : 허기는 폭식을 불러온다. 섬유질과 단백질을 충분히 먹고 천천히 먹어서 매 끼니마다 포만감을 느껴야한다. 양을 갑자기 줄이거나 절식하는 방향으로 살을 빼서는 안된다.



이렇게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B는 5개월간 15kg를 감량하게 되었다.


당뇨 전단계였던 혈당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가족력이었던 심장질환도 좋아졌다. 마지못해 하던 운동에도 재미를 붙힌 듯 보여서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B의 이야기는 A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했다


처음에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M 사이즈의 옷을 입게 됐다며 기뻐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못알아봤다고 칭찬하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소개팅을 주선해주거나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그녀는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틱톡이나 인스타에서 운동하는 여성들의 콘텐츠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들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기 싫어, 저 돼지 좀 봐.
내 팔 좀 봐. 왜이렇게 덜렁거리지?
나는 너무 뚱뚱해


수업할 때 이런 말들을 숨쉬듯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살이 찔까봐 두려워했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서 본인의 몸무게를 확인하고, 더 이상 살이 빠지지 않는 것에 불안해했다. 체중이 아닌 체성분이 중요한 거라고, 매일 몸무게를 재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고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최근 들어 유독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운동을 버거워해서 어떻게 먹고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보여준 사진들을 보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운동과 식습관을 넘어서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졌다. 그녀는 살이 찔까봐 두려워서 음식을 통제하고 있었다.


빵이나 밥은 전혀 먹지 않고 샐러드만 먹고 있었다. 부족하게 먹으니 군것질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해졌고, 그렇게 군것질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죄책감이 뒤따랐다. 그리고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음식 섭취를 더 줄이고 있었다.


그녀의 건강수치들은 모두 그녀가 건강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몸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있다보니 피트니스 현장에서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을 마주할 때, 자주 복잡한 심경이 되곤 한다.


비만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몸무게가 늘어나면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가 증가하기 때문에 무릎이나 허리에 가는 부담도 늘어난다. 때문에,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있는데 과체중인 분들이 있다면 가장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체중을 감소시키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말을 전할 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의 말이 이미 사회적 낙인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두 번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미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에게 살을 빼라는 말은 더 심한 자기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또한 B의 사례처럼, 외모에 대한 새로운 강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비만을 벗어나려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몸을 도구가 아닌 친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많은 자기혐오의 말을 와다다다 쏟아내곤 스튜디오를 떠났다. 나는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B, 오늘 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어. 너는 네가 뚱뚱하고 돼지같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해. 너는 아마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거야. 남에게 무례해서 하지 못하는 말이라면, 스스로에게도 하면 안되지 않을까? 남을 존중하는 만큼 너의 몸도 존중했으면 좋겠어.
네 몸도 너의 일부야. 나는 네가 몸을 쓰다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라 친구나 반려자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친구가 네 도움이 필요할 때, 조금 우울해있을 때 친구를 다른 친구로 교체하지 않잖아. 네 몸에게 뭔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그걸 들어주지 않는다고 윽박지르고 화내는 건 네 몸을 존중하지 않는 거야. 아픈 친구나 가족을 돌보듯이 몸을 돌봐줘. 몸이 회복할 수 있게 충분히 자고, 충분히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지 살펴봐줘.
살을 빼기 위해 음식을 줄이는 건, 몸을 벌주고 몸과 싸우는 거야. 몸무게를 줄이려고 하기 전에, 몸무게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몸무게가 줄면 어떤 문제가 해결될거라 생각하는건지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봤으면 좋겠어.


그녀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문자를 보냈는데, 다행히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며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하지만, 그녀가 내일부터 본인의 몸을 다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기비하를 멈추고 본인의 몸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건강검진에서 받아드는 숫자가 건강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운동을 하고, 탄단지를 맞춘 식단을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는다. 내가 내 몸과 전쟁 중이라면 그 습관도 언젠간 무너지게 된다.


모두가 한 번쯤 질문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내 몸에게 어떤 친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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