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때도 추구미는 필요하다
남편과 대전 장태산에 갔다. 장태산엔 초입의 메타세콰이어 길로 유명한 자연휴양림이 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렸고, 일요일인 오늘도 부슬비가 내렸다. 비에 젖어 나뭇잎은 더 쨍한 연두빛이고, 은근하게 안개가 끼어 더 운치있었다. 메타세콰이어 길 초입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그 앞을 지나다 동시에 멈춰 섰다. 김치전 냄새였다. 메뉴판에는 가래떡, 김치전과 함께 막걸리도 있었다. 한옥을 닮은 외관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파란 테이블과 빨간 의자,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고 깔깔깔 웃고 계신 60대 아주머니 두 분까지. 우리는 홀린듯이 카드를 꺼낸 뒤 계산대로 향하다가 멈칫, 사장님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사장님은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각잡힌 회색 반팔 셔츠에 테가 가는 금속 안경을 쓰고 귀에 에어팟을 꽂은 채 표정 없는 얼굴로 김치전을 서빙하는 그 분의 외모는 전집 주인이라기보단 9호선 급행 지하철에서 마주칠 법한 테헤란로 직장인 같았다. 남편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왜 주문하지 않는지 묻지 않고 함께 식당을 지나쳤다.
왠지 김치전은 연배가 있고 사투리가 구수한 어르신이 만들어주는 게 맛있을 것 같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세련되고 깔끔한 외모의 직원이 신뢰도를 높인다. 물론 고정관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TPO라고 할수도 있지 않을까?
유튜브에서 본 세계 대회 우승 경력의 바리스타가 카페투어를 하는 영상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장면이 있다. 그는 투어를 하던 중 동행에게 상대방의 커피도 맛보고 싶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왜? 너랑 나랑 같은 커피를 시켰잖아?”라며 의아해 한다. 그러자 바리스타가 이렇게 답한다. "네 노란색 컵이 더 예뻐서. 나는 시각이 맛에도 분명히 영향을 준다고 믿는 사람이거든." 요즘엔 플레이팅이 요리에 일부인 것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외형도 서비스의 일부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프로의 자세?
예전에는 이런 말을 시대에 뒤쳐진 빻은 소리 취급했다. 특히나 여성의 꾸밈노동이 많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외모 가꾸는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더 큰 반발심이 들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예뻐지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런데 20대 후반이 되고 보니 내실을 다지고 역량을 길러야 할 시기에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했단 생각이 들었다. 외모를 가꾸던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더 깊이 탐구하는 데 시간을 썼다면 얼마나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
20대 후반에는 꾸미는 데는 거의 시간을 쓰지 않았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머리 말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숏컷을 고수했다. 쇼핑도 스트레스였다. 일년에 한 두 번, 큰 맘을 먹고 미뤄둔 빨래를 해치우듯 옷을 사곤 했다.
그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고른 직업이 필라테스 강사였다.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필라테스 강사라 말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SNL 같은 코미디 프로에 필라테스 강사는 늘 한 가지 이미지로 소비된다.
모델처럼 키가 크고, 적당히 토닝된 몸매에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 딱 붙는 옷을 입는 사람. 예쁘긴 한데 머리가 좋을 것 같진 않은 사람. 그 이미지가 싫었다. 나는 이 직업이 정말로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찾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내 엉덩이가 예뻐서, 나 같은 복근을 갖고 싶어서, 나처럼 마르고 싶어서 나와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저 편한 운동복을 입고 출근했다. 보풀이 일어난 레깅스를 입을 때도 있었고, 물빠진 티셔츠를 입고 출근할때도 있었다.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회원에게 더 좋은 운동을 가르칠 수 있게 공부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건 30대가 되면서였다. 문제는 친한 친구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으면서 시작됐다. 조금 알고 지내던 지인이 아니라 오랜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이때만큼은 대충 입고 가고 싶지 않았다. 친구의 결혼식을 대하는 내 마음이 잘 드러났으면 했다.
그런데 내 옷장엔 말 그대로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또 너무 오래 꾸미지 않았다보니,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이 어떤 것이고 어느 브랜드에 가야 적절한 가격에 그 옷을 살 수 있는지 몰랐다. 메이크업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몇 년간 외모 가꾸기를 등한시했더니, TPO도 맞출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때 깨달았다.
외모를 가꾼다는 건 예뻐지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추구미를 아는 것에 가깝다. 원하는 때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보여줄 줄 아는 것이다.
학부모가 4살짜리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땐, 따뜻하고 너그러워보이는 선생님을 찾게 된다. 하지만 함께 일 할 컨설턴트나 애널리스트를 찾을 때 이런 이미지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자신감 있고 조금은 냉정해보이는 사람과 더 일하고 싶을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면, 나 역시 브랜드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부다. 새롭고 힙한 감성의 호텔을 예약했는데 직원이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신라호텔 리셉션 데스크에 티셔츠를 입은 스텝이 있다면?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다.
문득 고민하게 됐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추구미는 무엇인지.
처음 오는 회원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지. 내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방해하고 있진 않은지. 그렇게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운동강사인 만큼 밝고 건강해보였으면 좋겠다.
소통이 중요한 직업인 만큼 내향인인 사람도 다가가기 편안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신뢰가 가는 깔끔한 이미지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미지에 맞춰서 조금씩 내 외모를 바꿔나갔다. 숏컷이었던 머리는 조금 길러서 단정한 칼단발로 바꾸고, 새까맣고 답답했던 머리색은 따뜻한 갈색으로 염색했다. 여전히 화장은 하지 않지만 눈썹결을 다듬고 피부도 관리한다. 얼굴에서 건강하고 깔끔한 이미지가 느껴지도록 노력한다. 옷을 입을 때도 운동복과 일상복이 섞인 디자인의 옷들에 셔츠를 매치해 원하는 분위기를 낸다.
영화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의 명장면이 생각난다. 패션지의 편집장 미란다가 디렉터와 함께 심각한 얼굴로 화보에 쓸 갈색 벨트를 고르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 앤드리아가 실소를 터트리는 장면이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패션은 허례허식이라 생각하는 앤드리아에겐 별 것도 아닌 벨트로 심각한 논쟁을 벌이는 게 우스웠을 것이다.
20대의 나는 앤드리아에 공감했다. 꾸밈은 본질을 가리는 소모적인 노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미란다에 공감한다. 외모는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도구다. 말 한마디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게 해준다. 꾸밈은 업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본질을 강조하고 부각시킬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에어팟을 낀 세련된 사장님의 김치전은 아마도 맛있었을 테다. 어쩌면 더 일관된 맛을 내거나 청결에 더 신경을 쓰고 계실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냄새가 좋았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 김치전을 먹었어야 맞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을 항상 그렇게 논리와 딱 들어맞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그 가게를 지나쳤다. 김치전을 굽는 사장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일할 때도 추구미가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