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운동중독

여기에도 해피엔딩은 있을까?

by 운동지도자 앤지

강사로 일하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다. 아파서, 살고 싶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는 게 즐거워서 오늘은 뭘 배울까 눈을 반짝이며 들어오는 회원을 만나면 강사로서 참 보람차다.


A도 그런 회원이었다. 운동을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월요일엔 그룹 필라테스, 화요일엔 웨이트, 수요일엔 필라테스와 웨이트, 목요일과 금요일엔 나와 운동을 했다. 그리고 매일 클라이밍을 했다. 주말엔 하이킹까지.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운동에 대한 열정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우울해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A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았다. 직업이 치과의사였기 때문에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중량운동이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서 꾸준히 해왔지만 몇 번의 부상 이후 예전만큼의 중량을 들지 못했다.


“난 내가 점점 약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나. 예전엔 80kg로 백스쿼트를 했는데 이젠 50kg도 힘들다고. 자존심 상해.”


A는 자신의 몸이 약해빠졌다며 푸념했다.


“내 몸은 drama queen이야. 별 것도 안 했는데 무릎 뒷쪽부터 사타구니까지 불붙는 듯한 통증이 있어서 잠에 못 든 적도 있어. 그러고 나면 운동 강도를 더 낮춰서 해. 어디까지 낮아질 건지 모르겠어.”


A는 자신의 몸이 나약하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부상에는 패턴이 있었다.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다가 몸이 견딜 수 없는 통증 신호를 보내면 하루이틀 멈춘다. 그리고 강도를 낮춰서 며칠 운동을 하다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예전의 운동 강도로 돌아간다.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무리하게 되고 통증이 심해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며 몸은 서서히 소진되고 있었다.


우리 몸은 운동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강해지지 않는다.


운동을 할 땐 몸에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강도가 높을수록 그 스트레스는 커진다. 운동 후 충분한 휴식과 영양분 섭취가 있다면 몸은 기특하게도 스트레스를 극복해 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몸은 운동이 주는 스트레스에 적응하고 근육과 뼈는 고강도 운동을 견딜만큼 강해진다. 핵심은 충분한 휴식이다. 몸이 버틸 수 있을만큼의 스트레스를 주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어야 한다.


나는 A에게 지금보다 조금만 더 몸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면 몸이 분명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첫 수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A의 움직임에는 뚜렷한 보상패턴이 있었고, 그 부분을 개선하자 수업 다음 날 통증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나와의 수업에서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며 말해준 대로 자기 몸의 반응에 좀 더 귀기울여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음 수업에 A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클라이밍을 하다 손에 힘이 빠져 꼭대기에서 떨어졌고 무릎이 꺾였다는 것이다. 퉁퉁 부은 무릎은 걸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있다고 했다.


“이 다리를 이끌고 나를 찾아올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야하는 거 아니야?”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뭐라도 좋으니 무릎을 쓰지 않는 운동을 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앉거나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만 가볍게 진행하고 A를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에서는 최소 한 달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A는 악덕업주처럼 몸에게 3일의 휴가 후에 다시 운동으로 복귀하기를 주문했다. 나흘째 되던 날, 그녀는 다시 클라이밍을 나갔다.


우리의 수업은 매주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1. 무릎 기능회복을 위한 운동을 한다 .

2. 통증이 줄어든다.

3. 클라이밍을 하다 또 낙상사고를 당한다. (부상당한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부상 가능성이 높다)

4. 통증이 다시 심해진다.


수없이 많은 회유와 협박과 부탁에도 그녀는 바뀌지 않았다. 이 과정을 매주 반복하던 어느 날 그녀는 손목에도 붕대를 감고 들어왔다. 다리가 힘을 못 써서 손목을 무리해서 썼더니 손목에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긴 것이다.


“통증이 심해서 오늘 병원에 출근하지 못했어. 의사가 손목을 다치다니, 이러다 직장에서 잘리는 거 아닌가 몰라.”


A도 이번엔 정말 경각심이 들었다며 당분간은 정말로!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무리가 되는 일에서 클라이밍은 제외됐다) 그러나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녀의 운동에 대한 집착은 클라이밍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날 A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5월에 한강에서 트라이슬론 페스티벌이 열려. 누구나 자기 속도로 완주할 수 있대. 수영 300m, 러닝 5km, 싸이클링 10km이어서 철인3종경기 같은 것도 아니고 정말 가볍게 할 수 있는 수준이야. 나 이 대회 참가하고 싶어.”


오 신이시여. 걷는 것도 통증이 있는데 갑자기 수영에 달리기에 싸이클링을 하겠다고? 게다가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달 남짓.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운동이겠지만, 수영도 러닝도 싸이클링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부상자가 세 가지를 동시에 하겠다는 건 무릎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A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이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스스로 느껴보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수영장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300m 수영을 해보라고 했다. 또 러닝머신에서 1km만 느린 속도로 달려보게 시켰다. 결과는 처참했다. 걷기에 가까운 속도로 뛰었지만 뛰기 시작한 순간부터 무릎이 화끈거렸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간신히 1km를 달렸다고 했다. 수영은…? 알고보니 A는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알려준 개헤엄으로 우리집 수영장에서 수영해본 게 다였거든. 이대로 한강에서 수영했으면 난 익사했을거야.” A가 말했다. 그리고 급히 덧붙였다. “그래도 한 달이 남았으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지경이 되니, A와의 수업시간이 무서워졌다. 오늘은 또 무슨 충격적인 소식을 가져올까.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있잖아. 내가 바레 강사 교육과정을 신청했어. 해외에서 마스터 강사가 와서 가르쳐주는 거라서 5일동안 하루 8시간씩 수업을 들어야 해. 근데 그게 트라이슬론 페스티벌이랑 같은 주에 진행되는 거여서…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내가 둘 다 할 수 있을까?”


바레는 발레와 필라테스가 결합된 운동으로 발레 바를 잡고 하는 근력운동이다. 원래도 강도가 높은데 강사가 되는 코스는 당연히 일반회원들이 하는 것보다도 난이도가 높을 터였다.


“아니, 못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주눅이 들어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힘들긴 하겠지? 그치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 이 정도 퀄리티의 바레 교육을 들을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나는 기가 차서 되물었다. “너 올해만 살 거야? 왜 이렇게 올해 안에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지금 네가 하는 건 자해와 다를 바 없어. 운동 목적이 무릎 건강과 골다공증 예방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너는 몸을 갈아넣고 있잖아. 네 몸의 입장에서 너 같은 애인이 있다고 생각해봐.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때리고 미안해하고 하루 잘 해주고, 또 상처주고 다음 날 와서 잘못했다고 빌고. 네가 하고 있는 게 그거잖아”


A는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사실… 요즘 생각이 많아. 한국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자유를 느끼고 있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 매일 새롭게 깨달아. 그런데 11월이면 다시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잖아. 난 시간이 없어.”


A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 한국보다 양성평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여자로서 의사가 되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왔을 것이다. 스스로 이 일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의대에 들어간 뒤로도 너무 바빠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그러다 1년간 한국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주 4회만 출근하면 되었고, 출퇴근도 진료시간에 따라 자유로운 편이었다.


일로 빽빽했던 하루에 기분 좋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을 새로운 취미를 찾고 친구를 만나고 문화를 경험하는 걸로 채워나갔다. 그럴수록 그 틈을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매여서 일만하는 삶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더 잔인한 진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자유는 1년이었다. 1년이 지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는데,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러니 1년 안에 최대한 많이 경험을 해야 했다.


계속 되는 고민이 불쑥불쑥 찾아와 불안할 때 A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운동과 운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 뿐이었다. 몸이 고통스러워도 운동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다. 손목과 무릎을 다친 채 센터를 방문한 날도 그녀는 모르핀 주사를 찾는 환자처럼 애원했다. “제발, 나한테 어떤 운동이라도 시켜줘. 이대로 집에 가면 우울해서 죽어버릴거야.”


운동중독. 그녀의 상태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그랬다.

알콜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보다는 낫지만 어떤 단어든 뒤에 중독이 붙으면 그건 절대 스스로에게 이롭지 않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옆나라인 아랍에미레이트에서도 바레 지도자 과정이 많이 열린다는 사실과 바레에도 협회마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니 우선은 한국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바레 수업을 들어보는 걸 추천했다. 듣다 보면 내가 원하는 티칭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고, 그때 자격증을 취득해도 늦지 않다고.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바로 수업을 하지 않으면 배운 내용은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그러니 정말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자격증을 취득해도 늦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바레 자격증 과정은 환불받도록 A를 설득하고 그날의 수업을 끝냈다.


어떻게 A가 운동중독을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는 몇가지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첫째. 운동의 목적(Purpose)과 목표(Goal) 구분해보기

목표와 목적을 혼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목적이 내가 이 일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라면, 목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다. 목적(Purpose)은 변하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목표(Goal)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A의 목적은 30년 뒤에도 무릎 통증 없이 활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웨이트를 하고 올 해 5km 마라톤에 출전하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하지만 무릎을 다친 상태에서 목표를 달성하려하면 무릎은 더 망가지게 된다. 목적과 멀어지는 것이다.


나는 운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지금의 목표들이 목적에 맞는지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겨보자고 했다.

A도 자신이 목적과 목표를 혼용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이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둘째. 스스로를 운동 선수라고 생각하기

A는 부상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핑계거리 같다고 했다. 사실은 할 수 있는데 두려워서 부상을 핑계 삼는 것 같다는 거다. A는 부상을 이겨내고 해내는 것만이 스스로의 끈기를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A에게 ‘스스로 운동선수라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네가 운동선수라고 생각해봐.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무릎이 부러졌어. 진통제를 먹고 시합에 출전하면 출전은 할 수 있겠지만, 좋은 기록을 내기는 어렵겠지. 게다가 경기 중에 무리하게 되면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어.
넌 앞으로 은퇴가 30년도 넘게 남았어. 너라면 그 경기에 출전할 것 같아? 구단, 코치, 감독은 너에게 경기에 출전하라고 이야기할까? 30년 동안 꾸준히 경기에 나가기 위해 어떤 결정이 맞는지 생각해보면, 결정이 조금 쉽지 않을까?


그리고 A에게 그날의 운동종류, 운동루틴, 운동의 강도, 통증 정도를 캘린더 앱에 기록하도록 했다. 기록을 보고 그날의 운동이 과했는지 적정했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조절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이야기가 ‘그녀는 운동중독을 고치고 몸과 행복한 관계를 되찾았답니다~’로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장에서 그런 해피엔딩의 순간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만성통증도 운동중독도 몸에 대한 혐오도. 깨끗히 나아서 다시는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건강할 땐 내 몸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내가 약해진 순간에 감기 바이러스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아프게 한다.


내가 바라는 건 회원들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거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고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있다.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내가 아플 때 스스로 나를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이나 불안감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다. 다시 스스로를 고쳐낼 수 있다.


A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으면 한다. 그 경험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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