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잘하려면 달려야 한다

by 운동지도자 앤지

학창시절 나는 체력장을 하면 반에서 오래 달리기 기록이 꼴찌인 학생이었다. 정말 달리기를 못 했다. 달리기를 싫어해서 못 했는지, 못 해서 싫어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느리면서 꼴사납게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헉헉대는 내 모습도 싫었고 서로 협조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도 싫었다.


노력하는데 못 하는 것보다 포기해서 못 하는 게 덜 비참해보였다. 그렇게 오래달리기 대신 걷기를 선택했고 매번 꼴찌로 들어왔다.


달리기만 못 했던 게 아니다. 중학교 체육시간, 배드민턴을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분명 공을 보고 치는데 내가 휘두른 라켓은 계속 허공을 갈랐다. 그러다 드디어 라켓이 공에 맞은 순간! 공은 앞이 아닌 뒤를 향해 넘어갔다. 체육 선생님이 소리쳤다. “너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안 쳐? 집중해!”


배드민턴을 치는 체육시간이 돌아오면 마음에 돌덩이가 얹힌 듯 무거웠다. 운동을 못 하는 본인의 모습을 명랑하게 웃어 넘기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달리기도 배드민턴도 잘하고 싶었다. 잘 하고 싶은데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못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건 너무 상처였다.


결국 체육을 싫어하기로 결심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모든 신체활동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식사 후 삼십 분 정도 운동장을 걸으며 친구와 수다 떠는 일 외에 어떤 신체활동도 하지 않고 보냈다. 10대는 인생에서 가장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시기였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이 세상에 배드민턴, 피구, 달리기 말고도 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몇몇 운동에는 생각보다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웨이트 트레이닝, 요가, 필라테스, 수영 등을 즐기면서 30대가 됐다. 30대의 내가 운동을 가르친다고 하면 10대의 나를 알던 모두가 깜짝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친해진 운동과 다시 멀어질 위기에 놓인 건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러닝 붐 때문이었다.


내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찾는 회원 중에도 러너인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달리는 것 같은데, 명색이 운동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뛰어야하지 않을까? 지금은 예전이랑 다르게 버피도 스쿼트도 런지도 잘 하니까 잘 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자발적 러닝을 시작했다.


잘 뛰는 사람은 정말 우아하게 달린다. 발은 지면에 닿자마자 엉덩이 쪽으로 착 감기고 가슴은 쭉 펴져있고 팔다리는 일정한 리듬으로 부드럽게 움직인다. 아가미가 달린 듯 호흡도 편안하다.


그런 러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집 근처 공원을 뛰기 시작한 지 3분도 안되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내 팔과 다리는 부러진 목각 인형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몸은 계속 왼쪽으로 기울고, 상체는 뒤로 젖혀져있는데 목은 거북이처럼 앞으로 빠져있고 호흡은 볼썽사납게 헐떡댔다. 죽어라 발을 구르는데도 계속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1km를 뛰고 헉헉대며 멈춰섰다. 페이스는 7분 10초.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건강분야 인플루언서들은 5km나 10km를 5분대의 페이스로 주파한 기록을 스토리에 인증하곤 했다. 난 7분대로 1km만 뛰어도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5km를 안 쉬고 5분대로 뛸 수 있지? 이거 트루먼쇼 아니야? 무엇보다 창피했다. 물론 내가 달리기를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 강사인데 이렇게 못 뛰는 게 말이 되나. 그동안 운동을 잘못해왔던 걸까.


그렇게 첫 번째 달리기가 끝났다. 달리기에 대한 허들은 더 높아진 채로.




그때부터 달리기 퍼포먼스를 좋게 하는 온갖 기능성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무너지는 몸을 세우기 위해 사이드 플랭크를 하고, 한 발 밸런스를 개선하기 위해 싱글 레그 데드리프트를 하고, 점핑 스쿼트와 같은 점프 훈련들도 진행했다.


훈련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씩 달려봤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1km만 지나면 숨이 찼고 좌우밸런스는 엉망이었다.


문득 10대의 내가 떠올랐다. 이대로 달리기 보다 걷기를 선택하면서 상처받지 않으려 러닝을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운동 선생님인 지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의아하단 듯이 답했다.


쌤, 잘 뛰려면 일단 많이 뛰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트레이닝에는 특이성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몸은 해 본 움직임만 잘할 수 있게 된다. 역도를 잘 한다고 해서 달리기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달려야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체력장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로 들어오던 사람이다. 성인이 돼서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한들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잘 달리기란 불가능하다.


러닝을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내가 달리기에 형편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내 체력과 심폐지구력이라면 3km는 수월하게 뛸 수 있어야 한다든지, 그래도 km당 6분대로는 속도를 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흡하기 편한 속도를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뛰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통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달리고 페이스를 확인해보니 8분대. 심박수도 150 미만이었다. 빠르게 걷기와 다름 없는 속도였지만, 4km를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3km쯤 뛰고 나면 생기던 왼쪽 무릎의 통증도 없었다.


달릴 때 왼쪽 무릎이 불안해서 런지를 하고 사이드 플랭크를 하며 난리를 쳤던 내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편하지 않은 속도로 달리면서 편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거다. 몸이 하는 말을 듣고 달리기 시작하니 무릎 통증은 씻은듯이 나았다.


작년 여름부터 매주 3번은 달렸다. 내 목표는 그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고, 주로 출근하기 전 아침에 달렸다. 시간이 없는 날은 1km만 뛰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5km를 달려도 더 달리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2km만에 다리가 무거워지는 날도 있었다. 그날의 내 몸이 원하는 만큼만 달렸다.


6개월 정도 됐을 무렵, 7km를 6분 후반대의 속도로 달려도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게 됐다. 몸에 힘이 빠지니 달리는 자세도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는 뛸 때마다 진흙탕에서 뛰는 것처럼 발이 바닥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스프링이 받쳐주는 것처럼 통통 가볍게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1km에 한 번씩 얼마나 달렸는지 체크하던 내가 달리는 것도 잊고 1시간짜리 팟캐스트를 들으며 깔깔거릴 수 있게 됐다.




문득 10km 마라톤에 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느리더라도 내 페이스로 달리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10km 마라톤을 완주했다. 페이스는 6분 40초. 달리기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메달과 함께 그날의 완주기록을 찍어 스토리에 올렸다. 이 메달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못하는 내 모습을 견디며 이뤄낸 최초의 성과였다. 남들의 페이스는 신경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정한 페이스대로 달려서 이뤄낸 기록이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빠짐없이 즐긴 최초의 경험이었다.


배우고 싶은 걸 너무 못 해서 재미가 없거나 자존심이 상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태라면, 내 달리기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결국 중요한 건 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절대 잘 할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과 타인의 시선을 잠시 잊고 그냥 하자. 옛 시인의 말처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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